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메르켈 독일 총리를 통해 본 ‘모성적 정치’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직을 2021년까지만 수행하겠다고 발표하자 독일의 청소년들이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라며 당혹해하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이 뉴스가 오히려 나는 당혹스러웠다. 여성 총리의 장기집권은 메르켈이 처음이 아니다. 소위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악명 또한 드높은 마거릿 대처도 메르켈보다 겨우 2년 짧은 11년 반을 집권했다. 하지만 대처가 물러났을 때 영국 청소년들이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는 소식은 들은 일이 없다. 장기집권 말고도 메르켈의 어떤 점이 독일의 청소년들에게 ‘여성’ 총리로 그토록 각인되었을까. 박근혜 탄핵 당시 유령처럼 떠돌던 저주, “앞으로 여성 대통령은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 떠오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여성적 리더십’의 중요성
메르켈 평전을 쓴 매슈 크보트럽은 메르켈을 만든 것은 “운명과 기질”이라고, 시인 노발리스의 말을 인용해 평가했다. 온화하고 참을성 있는 메르켈 총리의 최후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업적은 10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지지자들에 반해. 이 업적은 메르켈이 성장하면서 지녀온 가치관과 이상에 기인한 바였다. 메르켈은 독일이 강한 이유는 인도주의적이고 사해동포주의적인 사상을 지니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했다.
물론 그가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되기까지 정치인으로서 거둔 성공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유로존의 위기에서 유럽을 구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는 등의 외교적 수완은 충실한 동료들과 협력하며 침착성을 발휘한 결실이었고, 이러한 메르켈에 대해 독일인들이 신뢰를 보여준 것이 메르켈 총리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만한 것, 은퇴를 선언하게 만든 정치적 몰락을 야기했지만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 바로 난민 수용이다. 2015년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 앞에서 국경을 고수하자는 회의를 하러 모였을 때, 메르켈은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메르켈이 동독 출신이고 여성인 것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크게 거론되진 않지만, 독일에서 임신중절 합법화를 이뤄낸 당사자가 바로 메르켈이었다.
동북아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입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메르켈이 보여준 여성적 리더십을 새삼 생각해 보고 있다. 일단은 현명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지도력이 먼저다. 그러나 그 아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인류애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면, 독일의 청소년들이 ‘여성 총리’라는 말을 절대적인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대처가 죽었을 때 많은 영국인들이 축제를 벌였다. 같은 신념이라도 강자의 승리를 추구하는 신념과 약자의 생명을 돌보고자 하는 신념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온기가 이토록 다르다. 정치는 냉혹한 것이고 국가의 생존은 그 무엇에 우선해서 추구되어야 할 외교적 목표임에 틀림없지만, 엄청난 살상을 피해 쏟아져 나오는 난민들 앞에서 보여준 메르켈의 용기만큼 독일을 오래 살게 하는 것이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모성적 정치라고 할 것이며, 모성이라는 말이 가장 긍정적으로 쓰인 사례라고 기억할 것 같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돌봄과 살림의 여성적 원리를 실천하는 정치야말로 국가를 살게 한다는 것을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