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메이지유신 150주년이 갖는 의미

2018-11-09     박영철 편집국장

지난 10월23일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150주년 기념행사로 떠들썩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일본의 사정은 별로 좋지 않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허덕이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중국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마침내 아시아의 최강국이면서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성공해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진입했고 아시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일본인들이 메이지유신에 향수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메이지유신은 1868년의 일이다. 메이지유신은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사실 일본보다 피해자인 한국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는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첫 번째는 100주년인 1968년인데 이때는 우리가 나라도 가난하고 반일감정이 심해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150주년인 올해는 우리 국력이 1968년보다는 커지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들고 적폐청산, 남북화해 이슈에 꽂힌 탓에 또 그냥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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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은 한국인의 일본 이해 시금석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우리 사회가 보인 반응은 우려스럽다. 우리가 메이지유신에 대해 갖는 인식의 수준이 몹시 낮기 때문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시절에 조선이 문물은 앞섰으나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운이 좋아 빨리 개국을 했고 그 결과 강대국이 됐다는 정도가 한국인의 인식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메이지유신 이전의 일본은 무사가 다스린 나라로 알려졌지만 학문이 발달했다. 유학만 해도 19세기 들어 조선을 따라잡았고 문맹률은 조선보다 낮았다. 일본의 풍속을 그린 우키요에(浮世繪)가 19세기 유럽에 수출된 일본 도자기들의 포장지로 쓰였고, 그것이 인상파에 깊은 영감을 줬다는 것은 서양미술사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무식한 칼잡이들이 다스리는 미개국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었다. 19세기 조선인들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을 대했으니 결과가 좋을 수 없었다.

올 들어 남북과 미·중을 중심으로 4자 관계가 숨가쁘게 전개되면서 우리가 잊어버린 사실이 하나 있다. 일본의 군비확장이 그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슬금슬금 군사력을 키워왔다. 이제 이른바 ‘평화헌법’만 고치면 일본의 재무장은 거침없이 전개된다. 언제가 되든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시작하면 미국은 한국을 일본이 관리하게 할 공산이 크다. 중국 역시 한반도가 경쟁국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건드릴 생각을 못하게 최소한의 군사력은 갖춰놔야 한다. 그러나 남북 화해 모드에 취해 ‘평화주의자’만 득세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크게 두 번 당했다. 한 번은 임진왜란, 한 번은 경술국치다. 처음은 그렇다손 쳐도 두 번째부터는 당하는 놈이 바보다. 우리는 두 번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우리를 괴롭혀온 나라고, 이 나라가 다시 군사력을 급속히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