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인하 압박에 ‘사면초가’ 된 카드업계

정부 “수수료 추가 인하 필요” vs 카드업계 “인하 여력 없다”

2018-11-05     원태영 시사저널e. 기자

국내 카드업계가 최근 수수료 인하 등의 이슈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계속되는 수수료 인하 압박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진 모양새다. 금융 당국은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문제 삼으며 추가 수수료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카드사들은 매년 수익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의 수수료 인하는 어렵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카드 수수료 인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행보가 우선 주목된다. 정부는 최근 본격적인 카드 수수료 인하 압박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내년에 1조원 이상의 카드 수수료 인하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최소 1조원 이상 인하 방침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는 3년 전인 2015년 조정 당시 수수료 절감 추정액 670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여서 카드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소 자영업자 단체들은 10월2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전국투쟁위원회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순익 감소에도 카드 수수료 인하 요구 거세

카드사들에 대한 수수료 인하 요구는 이번만이 아니다. 카드 수수료는 지난 2007년 ‘신용카드 체계 합리화 방안’이 나온 이후 최근까지 11차례나 인하됐다. 2012년부터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3년마다 수수료를 재산정하기로 했지만 우대수수료율 등은 감독규정 변경만으로 바꿀 수 있어, 사실상 수수료는 수시로 인하돼 왔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수수료율 0.8%가 적용되는 영세가맹점 기준을 ‘연간 매출액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1.3%를 적용받는 중소가맹점 기준을 ‘연간 매출액 2억〜3억원’에서 ‘3억〜5억원’으로 완화한 바 있다. 지난 7월에는 밴 수수료 산정방식을 기존 정액제에서 결제금액에 비례해 부과하는 방식인 정률제로 개편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밴 수수료 정률제 적용으로 평균 결제금액이 2만4000원인 소액결제 업체의 수수료율이 평균 2.22%에서 2.00%로 인하될 것으로 추산했다. 기존 2.5%인 카드 수수료 상한도 2.3%로 0.2%포인트 인하했다.

아울러 내년부터 지불결제사업자(PG)와 결제대행 계약을 맺은 온라인 사업자와 개인택시 사업자가 연매출에 따라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된다. 소규모 신규 가맹점 수수료 환급제도도 내년부터 도입된다. 신규 가맹점은 연매출 정보가 없어 창업 후 6개월간 업종별 평균 수수료율을 적용받았다. 앞으로 신규 가맹점은 영세·중소가맹점으로 분류될 경우 우대수수료율보다 더 낸 수수료 차액을 환급받게 된다.

이처럼 정부의 계속되는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인해 카드업계는 최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추가 인하 방침을 보이자, 카드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카드사들의 수익률은 최근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분석에 따르면, 전업 카드사 8곳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2268억원으로 전년보다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해 카드사들의 순이익은 지난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드사만 봉’이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카드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고통을 카드사에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거친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카드사 압박을 통한 정부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은 적어도 자영업자 입장에서 볼 때 효과적이었다”며 “그러나 향후 정부가 추가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할 경우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카드사는 밴사 또는 결제대행업체(PG)에 비용을 전가하고, 밴사나 PG는 관련 서비스 질을 낮추거나 가격을 높이고 중소 자영업자와의 가맹 계약을 기피할 수 있다”며 “과도한 정부 규제가 카드사의 위험관리를 느슨하게 해서 향후 시스템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카드사들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문제 삼으며,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추가로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카드사가 수익보다 외형 확대에 중점을 두고 경쟁하면서 마케팅 비용 역시 2014년 4조원에서 지난해 6조원으로 늘었다”며 “마케팅 비용은 다 가맹점 수수료에서 나온다”고 꼬집었다. 최 위원장은 이어 “향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맞춰 제대로 된 적격비용을 산정하겠다”며 “가맹점별로도 마케팅 비용과 부담하는 수수료가 합리적으로 배분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카드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카드사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은 카드상품에 탑재된 할인이나 혜택 등 부가서비스에 사용되고 있다. 카드상품의 부가서비스 비용은 카드사가 지출하는 전체 마케팅 비용의 70%를 넘어서고 있다. 결국 마케팅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던 혜택을 줄여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금융감독원의 규제가 이 서비스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카드상품에 탑재된 부가서비스를 최소 3년간 유지해야 하며, 부가서비스 축소를 위해선 감독 당국의 약관 변경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금감원은 이를 한 차례도 승인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사 인력 구조조정 우려에 불만 목소리도

이런 상황 속에서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가칭)’ 등의 등장도 카드사들엔 위협적이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QR코드를 이용한 제로페이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스마트폰으로 가맹점 QR코드를 찍을 경우 구매자 계좌에서 가맹점 계좌로 돈이 이체되는 방식이다. 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을 롤모델로 삼아 고안한 것으로, 결제 과정에서 신용카드 결제망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가맹점은 수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는 최근 제로페이 사업의 공동가맹점 모집을 시작했다. 내년 1월 서울 지역에 정식 론칭하고 2020년에는 전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카드업계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악화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한·KB국민·롯데·우리·하나·비씨 등 국내 주요 카드사 노조로 구성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최근 “여론몰이식 수수료 인하 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 카드 수수료가 계속 인하된다면 수익 감소로 인해 향후 카드사들의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카드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와 소비자들이다. 정부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