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일자리 정책의 전면에 등장하고 문재인 정부에선 ‘규제혁신’이라는 말에 비로소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진보진영에서 금기처럼 여겨졌던 은산(銀産)분리 규제 완화, 대기업 투자 독려 등이 실제로 이뤄졌다. 당장 진보진영에선 그에게 매서운 비판을 퍼부었다. 당내에서조차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주인공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안에서 정책 전문가로 꼽히는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이다. 궁금했다. 대체 왜 그는 규제혁신을 강조하며 밀어붙이고 있는 걸까. 시사저널은 10월26일 청와대에서 정 수석비서관을 만나 1시간 넘게 규제혁신과 일자리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는 왜 규제혁신에서 길을 찾고 있을까? 최근 청와대의 고용 부진 원인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유효한가? 묻고 또 물었다.
정 수석비서관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연이어 중책을 맡고 있는 친노·친문 핵심 인사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거쳤다. 지난 대선 때는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상황실장을 지내는 등 문재인 대통령이 두터운 신임을 보내는 ‘실세 인사’로 분류된다. 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 대선 당시 정 수석비서관을 두고 “우리 당의 손꼽히는 정책통이자 전략가”라며 “선거를 하다 모르면 정태호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으로 일하다 지난 6월26일 일자리수석에 임명됐다.
정부에서 규제혁신을 밀어붙이는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규제혁신을 강조하나.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규제혁신의 목표는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신(新)산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관점이다. 우리가 그간 이런 점이 부족했다. 뭘 좀 해 보려고 해도 한국에선 안 되는 게 많으니 외국으로 나가 창업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신산업에 대해 ‘네거티브 규제(명시된 규제사항 외에는 모두 허용)’ 시스템과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제품이나 사업을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각종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 주는 것)’를 도입하려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재벌개혁에 속도조절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낸다. “규제 완화는 보수정권이 하고 진보정권은 하면 안 되는 것처럼 프레임이 짜여 있는 것 같다.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규제혁신은 분명 경제에 도움이 된다. 신생기업이 거대 기업에 마음껏 도전할 수 있어야 신기술·신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고, 경제 활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선진국의 상위 기업이 수없이 바뀌는 동안 우리나라는 몇몇 기업을 빼고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인공이 같다. 공정경제, 즉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도 경제를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경제를 좋아지게 하려면 투자가 많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니 투자활성화 정책도 경제에 좋은 것이다. 마치 공정경제는 경제에 좋고, 투자활성화 독려 같은 움직임은 나쁘고 국정기조의 선회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대단히 이분법적 사고라 생각한다. 경제를 좋게 만들려면 (이런 정책들이) 함께 가야 한다.” 민주당 왼쪽 블록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대해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긴 하다. “공정경제, 그중에서도 재벌개혁 부분은 대부분의 정책들이 법으로 만들어져서 국회에 가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통과돼야 성과가 나오는데, 관련 법들이 국회에 머물러 있다 보니까 그분들 입장에서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소홀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지금부터는 관련 법들이 통과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점 추진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 관련 규제혁신은 정작 고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경우 취지 자체가 금융혁신이다. 그동안 금융기관들은 예대마진 등으로 거의 땅 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었다. 그 안에서 경쟁을 만들어내는 구도가 필요했다. 새로운 곳에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성화되니 소비자들의 편익이 증대했다. 수수료 인하 경쟁 등이 벌어졌다. 금융 안에서 신산업이 만들어진 셈이다.” 규제혁신에 대한 철학이 확고해 보인다.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 가야 할 방향이 있다. 정부로서는 가야 할 길이라면 정책적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 규제혁신으로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잘 세우려 한다. 그런 관점에서 규제 문제를 보고 있다. 가령 규제혁신을 추진하면서 진입장벽과 관련해 두 가지 서로 다른 경우가 있다.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진입장벽 때문에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당연히 진입장벽을 낮춰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런데 그 진입장벽으로 인해 보호받는 사람이 약자인 경우도 있고, 강자인 경우도 있다. 강자를 위한 기득권과 같은 진입장벽은 당연히 풀어야 한다. 하지만 규제를 통해 보호받고 있는 약자와 관련한 규제혁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여기엔 사회적 대화와 타협이 필수다. 방향이 가야 할 길이라도 약자와 관련돼 있으면 규제혁신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한편에서는 정부의 규제혁신 속도가 너무 더디다고 비판한다. “좀 답답하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규제혁신에 접근하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 관련 규제는 20년 만에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다는 얘기다. 우리 의료기기는 대단히 유망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이다. 그 산업을 키워야 한다.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삼성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도 있다. “의료기기 산업을 삼성만 하나.” 규제혁신에 있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다는 얘긴가. “정부는 데이터경제 활성화와 직결되는 클라우드 시스템 관련 규제도 확 풀었다. 그동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규제에 막혀 전 세계적인 흐름과 달리 클라우드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상당히 노력했지만 풀지 못했던 규제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 등과 오랜 기간 논의를 해 규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부가 이런 물꼬를 터줘야 우리 기업들도 성장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 관련해서도 우리 기술 발전 수준에 맞게끔 획기적인 혁신안이 만들어져 있다. 드론의 경우도 우리 안보상황에 맞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규제를 대폭 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규제혁신이라는 부분에 있어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고 본다.” 신산업 육성이라는 방향은 맞지만 실제 고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거꾸로 생각한다. 시장에서 신산업은 이미 가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뒷받침을 못 해 주다 보니 선진국은 날고 있는데, 우리는 기고 있다. 여러 규제 때문이다. 정부는 도전하는 이들이 그야말로 제대로 뛰고, 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놀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까지 갈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도 정부가 할 일이 있다. 가령 우리 기업들이 의료기기를 해외에 수출하려면 실적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인정하는 서울대병원에 납품한 기록이 있다면 해외 진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부분이 잘 안됐다. 정부가 신산업이 성장할 수 있게 공공부문에서 혁신 기술을 구매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방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점은 기업들과의 현장 간담회를 통해 알게 됐다.” 정 수석비서관은 ‘현장 일자리 수석’으로 불린다. 부임 후 매주 한 번씩 기업을 찾을 정도로 현장 행보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듣는다. 해결한다. 그러나 요구하진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현장 행보도 언론을 대동하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해 기업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자영업계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자영업 관련 대책들은 주로 당장 소득을 보전하는 식의 지원 정책 위주였다. 이번에는 구조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자영업 단체에서 추천한 전문가들과 함께 TF를 구성해 ‘자영업 생애주기별’ 대책을 만들고 있다. 즉 자영업 진입 과정, 진입 후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 실패해서 밀려나는 퇴로 문제 등 자영업 생애주기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 안정적 기반에서 사업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 정부 단독이 아닌 자영업 단체와 함께 정책을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해 연말까지 정책을 내놓는 게 목표다.” 고용 취약계층을 재원으로 떠받치는 맞춤형 일자리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다. “큰 틀에서 구조조정은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고 본다. 만약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맞춤형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하면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용직 일자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청년 고용도 상당히 개선되고 있다. 일자리 숫자는 임시 일용직에서 마이너스가 크다. 이분들은 사실 달리 갈 만한 곳이 없다. 그럼 이걸 방치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이분들이 사각지대로 빠지게 되면 복지비용이 추가로 든다. 차라리 단기적 일자리라도 제공해 이런 분들이 직업 능력을 유지하고 복지비용도 줄이는 게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좋다고 본다.” 향후 고용 전망은 어떻게 보나. “올해 일자리 숫자가 안 좋게 나오지만 내년에는 정상궤도로 갈 것이다. 경제 전망에 불확실성이 있지만,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2.7%로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우리 경제에는 고용지표와 경제지표가 불균형하고, 급격한 인구 감소에 구조조정 문제가 있다. 산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혁신성장과 일자리 대책의 정책효과가 내년부터는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고용지표는 지금이 바닥이다. 하지만 지금도 고용의 질은 개선되고 있다. 내년에는 바닥을 치고 올라간다고 본다.” 낙관적 전망 아닌가. “물론 ‘고용 없는 성장’이 뉴노멀이 된 지금 고용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년 초부터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선 벤처 창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생활 SOC 등 정부의 확대재정 정책 효과도 있을 것이다. 또 그동안 일자리 감소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제조업에서 감소폭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 관광객도 점차 늘고 있어 음식·숙박업도 상황이 개선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자체장들의 일자리 창출 의지가 매우 강하다. 지방 산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 특히 광주형 일자리가 실현되면 우리 경제에 큰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진척 상황은 어떤가. “이용섭 광주시장이 아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서 노동계와 소통에 문제가 생겨 한국노총이 불참하기도 했다. 다행히 원탁회의 제안이 있으면서 논의가 재개됐다. 그래서 지금 광주시와 노동계가 세부적 문제를 놓고 집중 논의를 하고 있다. 민주당도 지도부가 내려가 성공을 위한 전폭적 예산 지원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