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군, 50억 사업 ‘대충대충’ 국민 혈세만 ‘펑펑’ 썼다

해군, 원격통합통신 구축에 시세보다 10배 이상 비싼 제품 구매…국방부 감사관실 조사 중

2018-11-05     구민주 기자

해군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 정보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비 단가를 과도하게 부풀려 특정 업체와 계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 견적서에 명시된 장비와 동일 제품의 시장 단가를 비교한 결과, 10배 이상 가격이 높게 책정된 품목도 있었다. 계약업체를 통해 해군이 들여온 전자·전파 관련 장비들 중엔 전자파 간섭 여부 등을 평가하는 국립전파연구원의 적합성 인증을 받지 않은 것들도 포함돼 있었다. 3년간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이란 프로젝트로 세 차례 진행된 사업 예산은 총 50여억원. 현재 국방부 감사관실은 해군이 기본적인 시장조사도 없이 과도하게 국가 예산을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군 사업에 대한 이 같은 의혹은 육군 소속 김성수(가명) 원사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2016년 해군의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과 흡사한 목적의 사업을 추진하던 김 원사는 해군 사업을 참고하던 중 해당 사업에 과도한 예산이 투입된 정황을 포착했다. 해당 사업은 본부와 도서·산간 기지 간의 통신에 병력을 대신할 무인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민간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기술 및 장비를 들여와야만 가능한 작업이었다.

 
    

김 원사에 따르면, 해군이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을 추진하면서 계약업체인 I사로부터 납품받은 단가는 대부분 시중의 판매 단가를 훌쩍 뛰어넘었다. 인터넷 검색, 장비 제조업체 문의, 동일한 기능을 가진 타 제품들과의 비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장조사를 한 결과, 동일한 장비임에도 적게는 10여만원,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시장 단가를 웃돌았다. 대표적으로 2017년 해군이 I사로부터 약 7000만원에 납품받은 유선연동장치의 경우, 홍콩의 장비 제조업체를 통해 500만원대에 구입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I업체가 장비의 일부를 자체적으로 개조·보강해 해군에 팔았다 가정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가격이 뛸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표1 참조)

시중의 제품이 아닌 계약업체가 직접 제조한 장비들 역시 부르는 게 값이었다. 2016년 입찰 당시 해군의 제안요청서에 아무런 요구규격이 명시돼 있지 않았던 GPS수신기의 경우, I업체는 해군에 자사 제품을 한 대당 700만원에 납품했다. 비슷한 시기 육군이 납품받은 유사 기능의 GPS수신기 가격은 한 대당 70만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렇게 들여온 장비 가운데 상당수는 기본적인 안정성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통신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니만큼 전기·전자 관련 장비의 안정성이 핵심인데도 불구하고, 해군이 납품받은 장비는 대부분 국립전파원구원의 제품 적합성 인증조차 받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납품된 장비들에 대해 업체는 해마다 군으로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유지·보수비용을 지급받는다. 해를 거듭해 장비가 노후해질수록 그 비용은 더 늘어난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업체 선정 과정에서 만연한 짬짜미 관행

해군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경쟁입찰로 계약업체를 선정해 세 차례 사업을 진행했다. 해군은 세 차례 모두 I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김 원사는 업체 선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군이 업체들의 입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제시한 제안요청서가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게 그 근거다. 보통 군은 어느 정도 사양과 기능을 갖춘 장비를 필요로 하는지 업체들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요구규격을 작성해 제시한다. 그러나 해군의 제안요청서엔 핵심적인 장비조차 접속방식·사용전압 등 요구규격이라 할 수 없는 기본적인 정보만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계약업체는 한 대당 최대 5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장비들을 특정해 해군에 제안한 후 최종 낙찰을 받았다. 김 원사는 “실제 당시 입찰을 시도하려는 업체들 사이에서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있었을 만큼 해군이 제시한 요구규격만 보고선 입찰에 뛰어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그럼에도 I업체는 고가 장비들을 특정해 제시한 후 계약을 따냈다. 해군은 10만원짜리를 써도 문제없을 요구규격을 내걸어놓고 수천만원 장비를 제시한 업체와 계약한 것이다. 군과의 사전 유착이 의심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황을 의심할 만한 점은 또 하나 발견된다. 애초에 해군은 내부적으로 미리 책정해 놓은 장비별 기초 단가를 입찰 업체들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해군의 비공개 기초 단가’와 ‘계약업체인 I사가 해군에 제시한 납품 단가’를 비교한 결과, 상당수의 장비 단가가 서로 정확히 일치했다. 계약업체와 해군이 경쟁입찰에 앞서 장비 단가를 사전 공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표2 참조)


 

 

10월30일 오후 경기도 모처에서 김성수(가명) 원사가 기자와 만나 얘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0월30일 오후 경기도 모처에서 김성수(가명) 원사가 기자와 만나 얘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軍 전문성 부족, 민간에 고스란히 의존

이에 대해 해군 측은 11월1일 “국가계약법에 의한 계약방식에 따라 객관적으로 진행했다. 2015년엔 2단계 경쟁입찰 방식, 2016·2017년엔 협상 방식을 취했는데, 전자(2단계 경쟁입찰 방식)는 1단계 심사에서 사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업체를 탈락시키고, 남은 업체들 간 가격 경쟁을 거쳐 계약을 진행했다. 후자(협상 방식)는 기술점수와 가격점수의 비중을 정해 두 가지를 함께 평가해 업체를 최종 선정했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후 해당 업체를 선정해 계약했기 때문에, 이 업체의 단가가 다소 높다 하더라도 부당한 계약이었다고 보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쟁을 붙여 최종 업체를 선정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해군 측은 “아직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이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장과 동떨어진 ‘깜깜이 계약’이 이뤄진 이유로 민간업체에 대한 군의 높은 의존도를 꼽을 수 있다. 김 원사에 따르면, 정보화사업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군 사업을 진행할 때 군이 민간업체에 의존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민간업체의 전문성을 제대로 견제할 군내 ‘전문 인력’이 부재한 탓이다. 이 때문에 사업 제안요청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부터 군은 업체 도움을 받는다. 특정 업체와 유착해 업체가 원하는 단가대로 계약을 진행하기 매우 쉬운 구조인 것이다.

업체 역시 군의 취약한 전문성을 십분 활용한다. 원칙상 군은 사업 계약에 앞서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 외에 2개의 다른 업체로부터 사업 견적서를 받아, 계약업체가 제시한 단가가 합당한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김 원사는 이 과정에서 업체들의 짬짜미가 관행처럼 만연해 있다고 말한다. 한 업체의 계약을 밀어주기 위해 다른 두 업체가 단가를 비싸게 올려 견적서를 제출하는 방식을 공공연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군은 이러한 눈속임을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몰라서 넘어간다는 지적이다. 김 원사는 “군이 조금만 더 전문성과 적극성을 갖고 직접 꼼꼼하게 시장조사를 하면 업체 의존도가 줄어들 텐데 직무유기를 하며 국민 세금만 펑펑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군에 조사를 의뢰해도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군 자체가 폐쇄적인 조직인 데다, 내부적으로 관계가 얽혀 있는 탓에 좀체 중립적인 조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 원사 역시 해군 사업에 대한 의혹을 가진 2016년, 군 내 국군재정관리단에 가장 먼저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내 ‘문제 될 게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기무부대와 국방부 감사관실에 다시 조사를 의뢰했지만 그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그가 찾은 곳은 군을 벗어난 국민권익위원회였다. 하지만 군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권익위는 얼마 후 국방부 감사관실로 다시 사건을 넘긴 후 조사를 자체 마감했다. 돌고 돌아 다시 군 조직으로 조사권이 넘어온 것이다. 권익위로부터 9월 중순 넘겨받은 해군 사업 의혹에 대한 국방부 감사관실의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국방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10월31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조사 진행 중인 건이라 상황을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며 “곧 조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만 짧게 밝혔다.

  

해군의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이란

해군이 2015~17년 3년간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은 전시 혹은 평시에 신속한 상황 전파로 원활한 작전 지원을 보강하기 위해 함대와 도서(島嶼) 기지 간의 유·무선 통신망 단말기를 통합하는 사업을 말한다. 즉, 본부인 함대사령부에서 작전 지역 내에 운항 중인 함대 및 항공기 등과 ‘직접’ 통신할 수 있도록 작전망을 구축하는 작업으로, 사업 이전엔 각 도서 기지에 투입돼 있던 병력이 사령부와 함대·항공기의 중간 교신 역할을 해 왔다.

해군은 2015년 2함대, 2016년 3함대, 2017년 1함대를 대상으로 해당 사업을 추진했다. 목표한 통신체계 구축을 위해 필요한 서버, 유·무선 연동장치, GPS수신기 등을 민간업체로부터 납품받아 해당 함대 및 각 도서 기지에 구축했다. 3년간 이곳에 각각 19억5000만원, 19억5000만원, 10억원으로 50여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공익신고 후 되레 사무실 압수수색 등 보복 당해”


해군의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 진행 과정의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성수(가명) 원사는 국방부에 조사를 의뢰한 이후, 군으로부터 뒷조사와 사무실 압수수색 등 보복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모든 보직에서 해임된 상태로 군과 지난한 소송전도 벌이고 있다.

2016년 6월 김 원사는 국군재정관리단과 기무부대에 해군 사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조사를 의뢰했다. 그 후 두 달여가 지난 그해 8월, 그는 기무부대로부터 군사기밀누설 혐의로 사무실 압수수색을 당했다. 기무부대는 그가 육군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군사기밀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를 군 검찰에 기소했다. 이와 관련해 김 원사는 “해당 납품업체 고위 간부가 기무부대 출신으로 현재도 기무부대 관계자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기무부대가 우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기무부대가 특정한 군사기밀의 내용은 중앙관제본부와 운항 중인 헬기 교신을 돕는 14개 육군항공 비행협조소 위치 정보였다. 그러나 김 원사는 “해당 자료는 매년 군이 육·해·공군 부대와 민간에까지 3000부씩 배포하는 간행물 표지에 명시돼 있는 정보”라며 “이미 이 간행물에 대해 10여 년 전 기무부대가 군사기밀이 아니라고 확인해 준 바도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또 “민간업체의 기술을 들여와야 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업체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라고도 주장했다.


해군의 사업 제안요청서와 김성수(가명) 원사가 정리한 납품장비 목록 ⓒ 시사저널 임준선


“軍, 신고자 보호 전혀 이뤄질 수 없는 구조”


군사기밀누설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군은 앞선 혐의와 같은 근거를 들어 김 원사에게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현재 그는 군사기밀누설죄 혐의에 대해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반면, 공무상비밀누설죄에 대해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2월이 선고돼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군 검찰에 기소된 직후 김 원사는 관련 직무에서 보직 해임됐다. 그는 이에 부당함을 주장하며 군 내 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 심사를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원사는 “보직 해임을 결재한 군 인사사령부 산하에서 소청위원회가 운영되다 보니, 소청 청구가 받아들여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초 국방부 감사관실에 기무부대의 보복행위에 대한 조사도 의뢰했다. 그러나 조사를 의뢰한 지 한 달여 후 감사관실이 아닌 기무사령부에서 해당 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회신문을 받게 됐다. 보복행위를 했다고 지목된 대상이 보복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원사는 “군은 안에서 돌고 도는 업무처리 때문에 신고자에 대한 보호는 전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그는 “내부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되레 안 당해도 되는 피해를 입고 있다”며 “향후 국가인권위원회 등에도 정식으로 제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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