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군, 50억 사업 ‘대충대충’ 국민 혈세만 ‘펑펑’ 썼다
해군, 원격통합통신 구축에 시세보다 10배 이상 비싼 제품 구매…국방부 감사관실 조사 중
해군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 정보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비 단가를 과도하게 부풀려 특정 업체와 계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 견적서에 명시된 장비와 동일 제품의 시장 단가를 비교한 결과, 10배 이상 가격이 높게 책정된 품목도 있었다. 계약업체를 통해 해군이 들여온 전자·전파 관련 장비들 중엔 전자파 간섭 여부 등을 평가하는 국립전파연구원의 적합성 인증을 받지 않은 것들도 포함돼 있었다. 3년간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이란 프로젝트로 세 차례 진행된 사업 예산은 총 50여억원. 현재 국방부 감사관실은 해군이 기본적인 시장조사도 없이 과도하게 국가 예산을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군 사업에 대한 이 같은 의혹은 육군 소속 김성수(가명) 원사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2016년 해군의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과 흡사한 목적의 사업을 추진하던 김 원사는 해군 사업을 참고하던 중 해당 사업에 과도한 예산이 투입된 정황을 포착했다. 해당 사업은 본부와 도서·산간 기지 간의 통신에 병력을 대신할 무인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민간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기술 및 장비를 들여와야만 가능한 작업이었다.
김 원사에 따르면, 해군이 원격통합통신체계 구축사업을 추진하면서 계약업체인 I사로부터 납품받은 단가는 대부분 시중의 판매 단가를 훌쩍 뛰어넘었다. 인터넷 검색, 장비 제조업체 문의, 동일한 기능을 가진 타 제품들과의 비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장조사를 한 결과, 동일한 장비임에도 적게는 10여만원,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시장 단가를 웃돌았다. 대표적으로 2017년 해군이 I사로부터 약 7000만원에 납품받은 유선연동장치의 경우, 홍콩의 장비 제조업체를 통해 500만원대에 구입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I업체가 장비의 일부를 자체적으로 개조·보강해 해군에 팔았다 가정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가격이 뛸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표1 참조)
시중의 제품이 아닌 계약업체가 직접 제조한 장비들 역시 부르는 게 값이었다. 2016년 입찰 당시 해군의 제안요청서에 아무런 요구규격이 명시돼 있지 않았던 GPS수신기의 경우, I업체는 해군에 자사 제품을 한 대당 700만원에 납품했다. 비슷한 시기 육군이 납품받은 유사 기능의 GPS수신기 가격은 한 대당 70만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렇게 들여온 장비 가운데 상당수는 기본적인 안정성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통신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니만큼 전기·전자 관련 장비의 안정성이 핵심인데도 불구하고, 해군이 납품받은 장비는 대부분 국립전파원구원의 제품 적합성 인증조차 받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납품된 장비들에 대해 업체는 해마다 군으로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유지·보수비용을 지급받는다. 해를 거듭해 장비가 노후해질수록 그 비용은 더 늘어난다.
업체 선정 과정에서 만연한 짬짜미 관행
해군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경쟁입찰로 계약업체를 선정해 세 차례 사업을 진행했다. 해군은 세 차례 모두 I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김 원사는 업체 선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군이 업체들의 입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제시한 제안요청서가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게 그 근거다. 보통 군은 어느 정도 사양과 기능을 갖춘 장비를 필요로 하는지 업체들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요구규격을 작성해 제시한다. 그러나 해군의 제안요청서엔 핵심적인 장비조차 접속방식·사용전압 등 요구규격이라 할 수 없는 기본적인 정보만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계약업체는 한 대당 최대 5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장비들을 특정해 해군에 제안한 후 최종 낙찰을 받았다. 김 원사는 “실제 당시 입찰을 시도하려는 업체들 사이에서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있었을 만큼 해군이 제시한 요구규격만 보고선 입찰에 뛰어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그럼에도 I업체는 고가 장비들을 특정해 제시한 후 계약을 따냈다. 해군은 10만원짜리를 써도 문제없을 요구규격을 내걸어놓고 수천만원 장비를 제시한 업체와 계약한 것이다. 군과의 사전 유착이 의심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황을 의심할 만한 점은 또 하나 발견된다. 애초에 해군은 내부적으로 미리 책정해 놓은 장비별 기초 단가를 입찰 업체들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해군의 비공개 기초 단가’와 ‘계약업체인 I사가 해군에 제시한 납품 단가’를 비교한 결과, 상당수의 장비 단가가 서로 정확히 일치했다. 계약업체와 해군이 경쟁입찰에 앞서 장비 단가를 사전 공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표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