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단둥 현지 르포③] “지금 떼놈들만 돈 번다 민족끼리 힘 합치자”

文 대통령 연설, 평양 시민 크게 고무 한국産 화장품·가전제품 인기 여전

2018-11-02     중국 단둥=송창섭 기자

북한 사람이 많이 찾는 중국 단둥(丹東)의 L호텔. 지난 10월23일 로비에 들어서니 무역상(貿易商·무역일꾼)으로 보이는 북한 사람 2~3명이 ‘체크인’ 중이다. “이 가격으로 단둥에서 이만한 호텔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확한 워딩을 듣기는 힘들었지만, 대강 뜻은 이랬다. 이 호텔이 북한에서 파견 나온 무역상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가성비 좋은 숙소라는 소문이 돌고 난 뒤부터다.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9층 카페에 가자 북한인들이 담배를 피우며 삼삼오오 앉아 있다. 취재진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자 긴장한 듯 중국어로 바꿔 대화를 이어갔다. 말은 중국어지만 억양은 영락없는 북한말(조선어)이다. 15~2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경계심을 늦춘 이들이 자연스럽게 북한말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화제는 주로 북한으로 갖고 갈 상품이다. “이 정도 값으로 물건 살 생각을 하고 왔는데 중국 상인이 값을 너무 높여 불러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내용이다.

이 모습을 목격한 단둥 교민은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남북도 설전을 이어가던 1~2년 전만 해도 남한을 향한 북한 사람들의 반감은 엄청나게 높았다고 이 교민은 전했다.  

 
10월24일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 건너편 북한 신의주를 바라보고 있다. ⓒ 시사저널 송창섭


남한에 대한 반감 크게 낮아져

남북한 해빙 무드는 중국 단둥도 마찬가지다. 현지에서 만난 한 북한 무역상은 “요즘 단둥에서 남북관계를 묻는 남조선(남한) 기자들을 자주 만난다”며 “작년에는 ‘여기(단둥)는 우리 조선 땅이나 마찬가지니 소란 피우지 말라’고 핀잔을 주곤 했지만 요즘은 ‘동포끼리 잘해 보자’며 덕담을 나눈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단둥 현지에 사는 우리 교민들을 통해서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현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몇몇 북한 사람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을 상대로 대중연설을 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9월19일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서 남북 화해를 주제로 연설했다. A씨는 “경기장 안에 있던 15만 명이 낸 입소문을 타고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며칠 만에 평양 시민 전체로 퍼졌다”면서 “평양에서 시작된 소문은 신의주까지 퍼졌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몇몇 북한 주민은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남조선 정부의 진정성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나 행진 도중 평양 시민들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는 것이 충격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2~3년 전만 해도 유람선을 타고 북한과 중국 국경인 압록강을 오가는 관광상품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자신들이 북한 주민이라며 물건 구입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이들은 조선말(북한말)을 쓰는 단둥 시민이 상당수다. 북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며 호객행위를 했는데, 지금은 중국 정부의 단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유람선 출발지도 압록강 동쪽 수풍댐 인근으로 옮겼다. 재중(在中)동포 B씨는 “올 4월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중국 관광객 30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중국 당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수풍댐 인근으로 유람선 선착장을 옮겼다”고 설명했다.

한국 상품에 대한 인기는 여전하다. ‘설화수’나 ‘후’ 등 우리 기업들이 만든 화장품은 지금도 북한 상류층이 가장 좋아하는 품목이다. 특히 임기를 끝마치고 북으로 귀환하는 무역일꾼들이 빠트리지 않고 찾고 있다. 일부에선 “딤채 등 대형 한국산 가전제품을 찾는 수요도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남북관계가 좋아진 이후 한국 상품 인기는 상종가다.

현지에서 만난 한 대북 사업가는 “지금처럼 남과 북이 대결구도로 가면 떼놈(중국인)들만 돈을 번다”며 “우리 민족끼리 잘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사업가는 “남조선 사람들은 북한이 중국에 의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북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람은 “원래 무슨 일이 있어도 중국은 옥수수 40만 톤, 원유 50만 톤, 시멘트 등을 북한에 공급하기로 약속했는데 그게 없어진 게 등소평(鄧小平·덩샤오핑) 때며, 그때부터 북은 중국을 혈맹(血盟)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2년 덩샤오핑이 비공식적으로 신의주를 찾아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한·중 수교의 불가피한 점을 설명했을 때부터 양국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둥의 한 일식집에서 만난 북한 무역상의 말이다. “1962년 중국과 국경협약(조·중변계협약)을 맺고 난 뒤 압록강에 있는 22개 섬은 우리(북한) 영토가 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뒤 하류 쪽에 섬이 48개로 늘어났다. 2000년대 중반 단둥시가 월량도(중국명 웨량다오)를 개발하려고 할 때 조선(북한) 정부가 협약 위반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8억 위안(한국 돈 1311억8000만원)을 요구했는데, 생각해 봐라. 지방정부인 단둥시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래서 6억 위안(983억8000만원) 선에서 합의했다. 조선은 그걸 외교적 승리라고 본다.”


“金, 비핵화 되돌리기 힘들다” 의견도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긍정적인 의견이 많다. 일부에선 북한의 핵 포기를 기정사실로 보기도 한다. 현지에서 대북 관련 사업을 하는 C씨는 “9월 평양에서 있은 3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에서 처음으로 비핵화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북한에서 지도자의 말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데 김정은 스스로가 그걸 번복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최근 남북 교류는 정부 등 공공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민간 교류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공 주도의 남북관계 개선에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도 있다. 지금의 남북관계가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북·미 간 협상이 삐걱거리는 것에 대해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단둥에서 활동하는 북한 무역상들은 “미국 놈들은 여전히 믿기 힘들다”며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일부에선 “남조선은 더 이상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거국적으로 민족 화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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