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100년이라 쓰고, 대한민국 100년이라 읽는다
임시정부 소년서 지킴이로 살아온 김자동 회장의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
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된다. 명백히 대한민국의 시작이 임시정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때로 이 문구는 빠질 위험에 처하는 등 만만치 않은 운명을 겪어왔다.
내년 4월11일(최근 13일에서 11일로 수정 발표)이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100년을 맞는다. 그 백 년 동안 임시정부의 숨결을 가장 오래 간직한 이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은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고 활동해 온 김자동 회장을 꼽는다. 1928년 상하이 임시정부 인근에서 태어나, 임시정부의 여정을 따라 살았고, 이후에도 임시정부를 지키고 선양하는 일에 나섰기 때문이다. 망백(望百·91세)의 나이지만 누구보다 또렷이 임시정부의 여정을 기억하고, 수많은 답사로 그 변화의 역사를 지켜본 김 회장이 임시정부 역사와 더불어 그 길을 정리한 회고록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을 출간했다.
“내년이면 우리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됩니다. 임시정부는 우리나라가 임금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었습니다. 민주공화제의 선언이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이 나라는 그때 태어났습니다. 2010년부터 한겨레 등에 쓴 글들을 정리해 이번에 출간한 것도 그 의미를 돌이켜 보기 위해섭니다.”
사실 책의 초고를 완성한 것은 2016년 가을이었다. 이후 촛불혁명, 문재인 대통령 당선 등이 있었다. 지난해 12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72년 만에 기념촬영을 했다.
“임정 정신이 왜곡되는 가장 큰 문제는 분단"
책은 위 사진과 같은 시기인 귀국 전야에서 시작된다. 긴 기다림 끝에 환국 소식을 들은 임정 사람들은 윤봉길 의거와 중일전쟁으로 시작된 긴 피난길을 역으로 되돌아서 귀국길을 밟는다. 요인들이 탈 비행기나 배는 모두 상하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기억도 순차적으로 다시 시작된다. 김 회장의 부친 김의한 선생은 3·1운동 이후 고령의 부친 동농 김가진(1846〜1922) 선생을 모시고, 상하이로 망명한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재정위원 등을 지내고, 김구 선생과 함께 애국단을 만드는 등 온전히 임시정부를 위해 살았다. 당시 태어난 김자동 회장 역시 그 임시정부가 놀이터였고, 배움터였다. 더욱이 김구 선생이 할아버지를 부친처럼 모시면서, 김구 선생을 ‘아저씨’로 부르는 특이한 아이로 자랐다. 이후 해방을 맞은 열일곱까지 임시정부를 기억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임시정부를 기록하고, 기자 등 사회생활을 통해 근대사의 진실들을 관찰했다.
“임정 정신이 왜곡되는 가장 큰 문제는 분단입니다. 분단에 기생하는 세력이 임시정부의 정신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이 광복의 완성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광복이 이루어져야만 임시정부의 정신이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역사의 물줄기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많은 변곡점이 보인다. 우선 국내 진공작전을 하지 못하고 해방을 맞는 안타까움, 해방공간에서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요인들의 암살, 이승만의 무능한 한국전쟁 대처 등은 그래서 더 한스럽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일어나는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역사에 대한 노력들을 필자는 높게 샀다.
“임정기념사업회를 추진하면서 중국에 있는 임시정부 유적지 보전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나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복원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충칭 광복군사령부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작 우리나라에는 임시정부 기념관 하나 없는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짓기로 한 것은 칭찬받을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임정 역사를 복원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특히 당시 임시정부를 구성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론, 수많은 에피소드도 상세히 담고 있다. 그래서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 그중에는 김구 선생이 죽을 위기까지 간 남목청 사건,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인 안공근의 실종, 해방공간에서 요인 암살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펼쳐 놓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정리할 전공자들이 배출되지 않는 것에 큰 아쉬움을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신채호 선생의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근현대사, 특히 우리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회장은 맺은 말에서 “인생은 남의 나라 길 위에서 시작됐지만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 실현되어가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많은 인사 가운데 누구를 가장 보고 싶은지 물었다.
“누구보다 백범 선생입니다. 저는 백범 선생을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백범 선생을 위해 밥을 지을 때, 저는 백범 선생의 품 안에서 놀았습니다. 이후 백범 선생이 보여주신 독립운동의 과정과 해방 후의 모습도, 저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