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악역에서 액션까지, 연기 진화 중인 현빈

《창궐》로 돌아온 현빈 “작품 색이 매우 달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2018-11-02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는, 단연 현빈이다. 영화 《협상》에 이어 《창궐》이 개봉했고, 현재 드라마를 촬영 중이다. 첫 악역 도전으로 화제를 모았던 《협상》에 이어 10월25일 개봉한 《창궐》은 조선판 좀비인 ‘야귀’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현빈은 극 중 조선의 왕자 이청 역을 맡아 극한의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악역에 이어 액션까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달달한 현빈씨’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의 연속이다.  12월 방영 예정인 tvN 주말극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서스펜스 로맨스 드라마다. 극 중 투자회사 대표인 유진우(현빈)가 비즈니스로 스페인 그라나다를 방문하고,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가 운영하는 오래된 호스텔에 묵게 되면서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현빈은, 연이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작품 색이 매우 달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툭 뱉은 한마디에서 숨겨진 뜨거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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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공조》 《꾼》, 최근 《협상》 《창궐》까지 다양한 장르의 역할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말 그대로 다른 걸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시나리오를 가장 중요하게 봐요. 시나리오를 읽고 끌리는 작품만 선택해요. 만약 하고 싶지 않은데 여러 여건에 떠밀려 참여한다면 몇 달간 지속되는 작업을 못 버틸 것 같아서요. 제가 끌리는 작품을 어떻게 더 끌리게 묘사해서 관객에게 보여줄지 고민할 때가 가장 소중한 시간이죠. 배우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창궐》도 그렇고, 증강현실을 다룬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도전이 쉴 새가 없다. 지칠 만도 한데.

“저는 그래요, 일로 지치면 일로 해소하죠. 요즘은 한창 드라마 촬영 중이에요. 촬영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영화 관련 인터뷰 자리에 나오면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지쳤던 부분이 해소되는 것 같아요. 간혹 집에 돌아가면서 ‘내가 오늘 무슨 이야길 한 거지?’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웃음).”

최근의 행보가 비교적 흥행에 안정적인 작품, 즉 오락에 치중한 작품들에 줄곧 출연한다.

“리스크가 적을 것 같아서 선택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영화는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더 안 좋은 결과가 초래되기에 부담이 더 커지죠. 오락적 요소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건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편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 영상매체와 연기자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사회적으로 복잡한 사건·사고가 많으니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협상》에 함께 출연한 예진씨도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이 다른 생각이 안 들고, 스마트폰을 안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협상》으로 첫 악역에 도전했다.

“단순히 악역이라는 이유로 《협상》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에요. 관객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지금과 다른 모습이라면 뭐든 좋았어요. 제가 연기하는 민태구는 나쁜 행동을 하니 악인인 것은 맞지만 관객들이 태구를 봤을 때 연민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태구가 시종일관 나쁜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과연 연민이 생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극 중 꽃무늬 셔츠를 입고 쌍욕을 한다(웃음).

“일단 죄송합니다(웃음). 어색해 보이지 않으려고 연습 많이 했어요. 평소 사용하지 않는 말을 자유롭게 써도 되고, 그래서 연기적으로는 재미있었는데 고민이 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여자에게 욕하는 부분도 꽤 있어서 과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심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캐릭터상 뺄 수 없는 모습이라 열심히 했답니다. 죄송합니다(웃음).”

《협상》의 이종석 감독은 현빈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역 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의 배우를 물망에 올리다가 시나리오를 퇴고하면서 캐스팅에 반전을 주고 싶었다.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동시에 거칠게 욕하는 것을 보고 싶은 배우랄까. 바로 현빈이 떠올랐다.”

어떤 장면이 가장 아쉬웠나.

“모든 장면요. 배우들이 그럴 거예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몇 가지 버전의 연기를 염두에 두고 가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연기하죠. 끝난 뒤엔 아쉬움이 밀려오죠. 제가 한 연기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제 연기는 이 아쉬운 것들을 줄여가는 싸움인 것 같아요.”

상대배우로 출연한 적이 있는 손예진씨는 현빈씨에 대해 “차분하고 고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부터 예진씨와 시간을 자주 가졌어요. 예진씨도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겉으로는 고요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속에는 용광로 같은 게 있어요. 뜨거워요. 흥도 많을 것 같아요. 아직 말을 터놓고 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는 아니지만 배우로서는 예진씨가 다른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엔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드라마 같은 다른 장르에서 보자고 예진씨와 얘길 나눴죠.”

실제로 성격이 무척 차분하고,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크게 화를 내는 건 극히 드물죠.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정 안 되면 저도 화를 냅니다(웃음).”

다음 활동 계획은.

“《창궐》이 개봉하고 한 달 뒤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찾아뵐 것 같아요. 차기 영화는 아직 미정이에요.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역할과 다르다면 일단 오케이예요. 큰 맥락으로 볼 때 설정과 캐릭터가 비슷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다른 면이 있을 것이고, 그 차이를 나만의 연기로 잘 표현하고 싶어요.”

“최근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현빈이 말했다. “너무 바빠서 딱히 기억나는 게 없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건 아니다(웃음).” 고요하고 차분한 현빈과의 인터뷰는 가을과 썩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