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왜 이렇게 많아?

‘투 머치 콘텐츠’ 시대, 시청 패턴의 변화

2018-11-02     정덕현 문화 평론가

나와도 너무 많이 나온다. 방송 콘텐츠 이야기다. 드라마만 놓고 봐도 ‘콘텐츠 홍수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일일드라마, 아침드라마는 차치하고라도 월화에 5편, 수목에 7편, 주말에는 무려 9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드라마만 일주일에 21편이 넘는 편수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매일 10여 편이 각 채널에서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들까지 더하면 방송 콘텐츠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아진다. 최근 유행어가 돼 버린 ‘TMI’로 불리는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 경향은 콘텐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투 머치 콘텐츠 시대다.

투 머치 콘텐츠 시대는 과거 지상파 3사가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던 채널 헤게모니가 케이블로 종편으로 분산되면서 가속화됐다. tvN, Mnet, OCN 같은 CJ 계열 채널들이 급성장했고, 그 대열에 올리브TV, MBC 에브리원 같은 채널들도 조금씩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심어줬다. 그 전략은 tvN이 시도했던 ‘자체 제작 콘텐츠’를 통한 ‘브랜드 만들기’를 통해서였다. Mnet이 《슈퍼스타K》로 그 브랜드를 세웠다면, tvN은 나영석 사단 예능 프로그램들과 신원호·김원석 PD의 드라마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지상파를 압도하는 채널 브랜드를 구축했다. OCN은 초창기부터 자체 제작 드라마로 시도됐던 ‘무비드라마’가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대중들의 장르물에 대한 관심을 받으면서 주목받는 채널이 됐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콘텐츠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붙여 신뢰감을 높이듯, OCN도 ‘OCN 오리지널’로 붙여진 완성도 높은 장르물을 통해 채널 브랜드를 세웠다.

케이블의 성장세에 맞춰 새로 출범했던 종편들도 조금씩 자체 채널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JTBC는 이미 tvN과 함께 지상파 3사를 뛰어넘는 채널 브랜드를 만들어냈고, 최근에는 MBN이나 채널A 같은 종편 채널에서도 몇몇 히트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 채널A의 《도시어부》 《하트시그널》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MBN 《마성의 기쁨》이나 채널A 《열두밤》처럼 그간 드라마 제작을 하지 않던 종편채널들도 이제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투 머치 콘텐츠 시대가 된 건, 실질적인 ‘다채널 시대’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JTBC 《제3의 매력》 tvN 《백일의 낭군님》 KBS 《최고의 이혼》MBC 《내 뒤에 테리우스》 ⓒ JTBC·tvN·KBS·MBC


외주제작으로 평준화된 방송의 질

다채널 시대의 콘텐츠들이 평준화되고 있다는 걸 가장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분야는 드라마다. 과거에는 지상파 3사가 드라마 제작의 노하우를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은 방송사 자체 제작에서 프로덕션 외주제작 방식으로 바뀌고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채널 경쟁력을 지상파 3사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외주제작사들은 대본을 들고 먼저 이들 채널을 찾아갔다.

하지만 tvN과 JTBC가 드라마 제작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런 판도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tvN은 CJ가 세운 스튜디오 드래곤을 통해 다양한 외주제작사들의 작품들에 과감히 투자했고, 그 결과 많은 유명 작가들이 지상파를 떠나 tvN으로 옮겨갔다. 작가의 이동은 배우의 이동이기도 했다. 그러니 작가와 배우가 성패를 가르는 드라마 판에서 tvN의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JTBC 역시 종편 출범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투자를 통해 드라마에서 일정 부분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결국 자본과 제작 여건이 괜찮으면 유명 작가들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은 지상파든 비지상파든 가리지 않는 상황이 됐다. 외주제작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채널이 의지와 투자 여력만 있다면 어디든 좋은 드라마가 갈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레 마련된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나누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했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채널A의 《도시어부》나 《하트시그널》, MBC 에브리원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지상파나 tvN, JTBC 같은 어느 정도 질을 담보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온 방송사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질적인 차이를 이제는 더 이상 느끼기 어렵게 됐다. 이것은 한때 지상파에 집중됐던 인력이 비지상파로 이동하면서 콘텐츠의 평준화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투 머치 콘텐츠 시대, 무엇이 달라질까

최근 20여 편이 경쟁하는 드라마 춘추전국시대의 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보인다. 그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월화는 tvN 《백일의 낭군님》이 14.4%(닐슨 코리아)로, 수목은 MBC 《내 뒤에 테리우스》가 9.7%로 동시간대 드라마들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두 드라마의 특징은 기존 지상파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시절의 드라마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멜로를 기반으로 하는 가벼운 코미디거나 액션 혹은 사극의 틀이다. 지금의 시청률 표가 보여주는 것이 ‘본방사수’라는 과거적 시청 패턴을 다루는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이 시청률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재 시청률이 높다는 건 그래서 그 ‘본방사수’의 시청 패턴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뜻이지 작품 자체가 대단히 뛰어나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그렇게 점점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반면 동시에 여러 드라마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다양한 취향과 개성을 가진 드라마들이 저마다의 시청층을 구성하며 나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아무리 2~3% 시청률이 나와도 KBS 《최고의 이혼》이나 JTBC 《제3의 매력》 같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를 챙겨 보고, 섬뜩하지만 한번 보면 시선을 뗄 수 없는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엑소시즘과 스릴러를 엮은 《손 the guest》나 한국식 케이퍼무비 형태의 드라마인 《플레이어》를 챙겨 본다. 시청률보다는 취향 선택, 본방사수보다는 선택적 시청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청 패턴의 변화는 채널이라는 플랫폼과 콘텐츠 제작사 간의 역할 구분을 더 분명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금의 채널들은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면이 더 많아지고, 자체 제작보다는 외주제작 형태의 콘텐츠 수급이 일반화되면서 콘텐츠 제작사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CJ의 스튜디오 드래곤이나 KBS의 몬스터유니온 그리고 SBS가 논의하고 있는 드라마본부 분사처럼 방송사들이 자체적인 제작사를 확보하려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