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양성평등, 아니 성평등

여성가족부가 잘못했다

2018-11-02     노혜경 시인
벌써 삼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혼인한 지 60년쯤 되었을 무렵 이야기다. 나이 들어가면서 할아버지는 점점 더 완고해지셔서, 젊은 사람만 보면 꿇어앉혀 놓고 일장설교를 하시곤 했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한두 시간 정도는 할아버지 방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내가 젊었을 때는”과 “요즘 젊은 것들은”을 들어야 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나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누구를 조금 괴롭힌다 싶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맨날 하는 소리 뭐가 좋다고 아이들을 붙잡고 말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소 마!” 하시며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할머니의 할아버지 두들겨잡기는 점점 분야도 다양해져서, 반찬투정을 하시면 “직접 해 잡수소 마!” 한다든가 하여간 다양하게 할아버지를 구박하셨다. 보다 못한 고모가 아버지에게 할머니를 말려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생겼다.  
여성가족부의 불법촬영 근절 캠페인 광고


“오빠요, 아부지 불쌍하지도 않소? 어무이가 오빠 말은 들으니까 좀 뭐라 하이소.”

이때 아버지가 고모에게 했던 말은 두고두고 집안에 회자된다.

“만다꼬? 아부지가 60년 동안 왈기고(윽박지르고) 살았는데, 말년에 어무이가 쫌 그러는 거가 뭐 어때서. 그나마 공평한 거지. 아부지만 큰소리치고 살라는 법이 있나. 그리고 어무이 말 틀린 것도 없다.”

할아버지를 가엾다고 여긴 고모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큰소리에 눌려 지낼 땐 가엾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이 일이 뜬금없이 기억난 것은 최근 여성가족부가 했던 일 때문이다. 불법촬영 근절 캠페인을 벌이면서 여성이 남성을 불법촬영한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으로 설정한 광고를 내보내서 큰 물의를 빚었다. 광고를 진행한 해당 공무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여성도 가해자일 수 있다”는 가정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양성평등 시대인데 남자만 가해자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서로 잘해야지”라는 정말 얄팍한 중립의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용어에서 밀렸더라도 의식까지 퇴보하면 곤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국은 젠더평등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혼란된 인식이 문제다. 이런 일은 여성가족부가 일부의 항의와 압력에 못 이겨 성평등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바꿀 때부터 다소 예견된 일이었다. 모든 용어엔 역사성이 있다. ‘양성이 평등하다’라는 얼핏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말은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가 보면 부부유별을 외치던 과거의 사고에 걸터앉아 있다.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행동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거기에 질서를 어지럽히는 동성애자 같은 존재는 배제하면 된다는 사고가 깊이 배어 있기 때문에, 글자 하나 빼는 것에 불과해 보이는 성평등 용어로의 변경을 반대자들은 그토록 강경히 반대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양성평등의 함정은 마치 남자와 여자로 인간을 이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호도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양쪽 다 자기 성별답게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지 맙시다!라는 프레임이 되어버린다.”(홍혜은)

하지만 양성이 평등한 것에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면 우리 할머니는 나이 들어 왜 그렇게 할아버지의 행동에 분노를 드러내셨을까. 여성가족부가 세불리하여 용어에서 밀렸다 하더라도 의식까지 퇴보하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