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이식①] 국내 의료진 ‘돼지 췌장 세포 이식’ 세계 첫 시도

임상시험 성공하면 세계 최고 기술 입증…​법·담당기관 없어 좌초 위기 극복이 관건 ​

2018-10-31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2019년 1월 국내에서 당뇨병 환자 2명에게 돼지 췌도(췌장 세포)를 이식할 계획이다. 15년 동안 쌓아 올린 세계적인 이종 장기 이식 기술이 결실을 맺는 셈이다. 이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한국의 이종이식 기술은 세계 선두 자리에 오를 뿐만 아니라, 당뇨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환자를 살리는 새 치료법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좌초될 위기에 몰렸다. 관련 법과 담당 정부 기관이 없다는 이유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US)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4000여 명이고, 장기 기증자는 3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장기가 필요한 환자 10명 중 1명만 수술받을 정도로 이식용 장기는 부족한 실정이다. 장기를 이식받지 못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는 해외로 나가 불법으로 장기이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이종이식은 장기 수급 불균형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종이식은 기능을 상실한 사람의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동물의 장기나 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03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을 출범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15년간의 연구 결과, 돼지 췌도로 당뇨병을 치료하고 돼지 각막으로 각막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았다. 여러 연구를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내년 1월 시작할 예정이다.  
이종장기 이식 관련 수술 장면(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8월29일 서울대의대에서 이종장기 이식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의대 미생물학 교수)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설명했다.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 5마리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했고, 모두 6개월 이상 정상혈당을 유지했다. 이 중 1마리는 약 1000일(2년 10개월)까지 정상혈당을 유지했다. 이는 그동안 최장 기록으로 여겨졌던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이 세운 396일을 앞서는 새로운 최장 기록이다. 박 단장은 "세계 최장 혈당 조절 성과다. 우리의 췌도 분리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돼지 각막을 영장류에 이식한 실험에서도 최장 시간 정상적인 각막 유지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세계이종이식학회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이종이식 임상시험 진입 기준을 만족하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남은 숙제는 사람에게 돼지 췌도와 각막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일이다. 사업단은 돼지 췌도와 돼지 각막을 이식받을 환자를 각 2명씩 모두 4명을 대상으로 첫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첫 임상시험에서 안정성이 확인되면 이식받을 환자 수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국내에서 돼지 췌도를 이식받을 수 있는 중증 1형 당뇨병 환자는 약 40만명으로 추산된다. 돼지 췌도 이식 연구를 담당하는 김광원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 환자 중 임상시험 대상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중증 환자다. 즉, 잘 때 저혈당으로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1차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돼지 각막 이식을 연구하는 김미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각막 질환 환자 중 양안 실명자를 최초 임상시험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  만일 임상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한국은 이종이식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진국이 된다. 그러나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신 의학기술인 탓에 관련 법이 없기 때문이다. 신의학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언제 통과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 WHO의 권고에 따라, 돼지의 췌도나 각막을 이식받은 환자는 평생 관찰 대상이 된다. 이식한 췌도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는지, 면역거부 반응은 없는지, 감염병 발생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때문에 환자에 대한 추적 관찰에 강제성이 필요하다. 강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강제적으로 환자를 평생 추적 관찰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10월15일 서울대의대에서 열린 국제이종이식학회 윤리위원회 심의에서 위원들이 국내 이종장기 수준과 윤리 문제 등을 점검하고 있다.(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관련 법이 없으니 임상시험을 담당할 정부 부처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8월29일 공청회에서 "이번 이종이식 임상시험은 얼마나 안전하게 진행되고 사후관리가 이뤄지느냐가 핵심이다. 식약처가 이번 임상을 세포치료제의 일종으로 보고 있어 자료를 준비해 다시 검토받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사업단은 기존 법을 수정해서라도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단장은 "현재 감염병 예방관리법을 수정하면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 그 수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받을 계획이다. 또 평생 환자를 추적 관찰하는 것도 기존 건강보험제도를 이용하면 가능하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또 사업단은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정부에 전달했다. 10월15일 서울대의대에서 열린 국제이종이식학회 윤리위원회의 심의에서 외국 전문가는 한국의 이종이식 기술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심의위원인 리처드 피어슨 하버드의대 교수는 "과거에도 이종장기 임상시험은 있었지만 내용이 미흡해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국은 영장류 실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했고, 국제 기준에 맞춘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15년 동안의 투자와 노력의 결실을 맺을 때"라며 "한국의 이 정도 기술 수준이라면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임상시험을 승인했을 것이다. 만일 한국 식약처나 복지부가 요청하면 미국 FDA가 조언해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사업단이 계획한 임상시험 마지노선은 내년 초다. 그때까지 법과 담당 부처가 마련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공들인 기술 개발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 박 단장은 "사업단에 매년 30~40억원씩 모두 500억원을 투자해 지금의 연구 결과를 일궜다.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도 훌륭히 마쳤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것인데, 임상시험을 못 하면 사업단의 연구 목표는 '미달성'으로 남게 돼 모든 자산과 인력을 지속할 수 없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도 사람에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국가적 손실"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