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못 도와주는 ‘증시 폭락’
주식시장 침체요인으로 꼽혀온 ‘한반도 리스크’ 완화됐지만, 코스피 하락세는 여전해
2018-10-29 공성윤 기자
이와 반대로 국내 지정학적 상황은 나쁘지 않다. 끊임없이 국내 증시를 위협해왔던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은 지난해 11월 이후로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올 4월엔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달 신용융자 잔액은 사상 처음 12조원을 넘기기도 했다. 빚을 내서라도 주식에 투자하려는 열기가 뜨겁다는 뜻이다. 이후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6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 9월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등 훈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이 저평가돼있는 현상) 해소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수치로 입증되는 주식시장은 최근 들어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 리스크 새롭지 않다"
이와 관련,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곳인 피치(Fitch)는 일찌감치 “한반도 리스크는 새롭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치는 “한반도 내 긴장관계는 과거에 나타났던 익숙한 등락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위협과 전쟁 가능성은 따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낸 한국 관련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미국 증시도 한반도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경제자문사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전문가 올리버 존스는 6월 고객에게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글로벌 증권시장은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다”고 조언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S&P 500 지수는 지난해 8월 트럼프의 “북한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란 발언에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연말까지 줄곧 상승세를 유지했다. 그 사이 세 차례 북한이 미사일을 쐈지만 악영향은 없었다.리스크 없어도 발 빼는 别人
외국인 투자자의 돈이 한국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한반도 리스크로 요동친 자금의 대부분은 외국인 투자분이었는데, 이번엔 리스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월29일 하루 동안 코스피에서 외국인이 팔아치운 주식 가치는 1800여억원에 달했다. 이날 대신증권은 “외국인의 아시아 지역 순매도는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최근 들어 한반도 정세는 국내 증시의 견인차 역할을 거의 못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다른 요소가 상대적으로 큰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인 하락 요인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우리나라의 1위, 2위 무역 상대국이다. 그리고 무역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서로에게 타격을 입힐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의 대중국 수입이 10% 감소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282억 6000만 달러(약 32조 2400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 금리인상도 한국 증시의 무시할 수 없는 복병이다. 그리고 9월2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결정으로 이는 현실이 됐다. 연준은 오는 12월에 또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미국 금리가 올라가면 국내 주식시장의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3%에도 못 미치는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증시의 불안요소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