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 치료제 부추기는 건 돈 벌려는 기업뿐”

[인터뷰] 황우석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벗은 ‘닥터K' 류영준 교수…"이익집단이 희망고문 하고 있다“

2018-10-26     공성윤 기자

황우석은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2004년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에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실었다. 스포트라이트가 터졌다. 대다수 국민들이 자긍심에 부풀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2005년 말 MBC 시사프로그램 《 PD수첩》 이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황우석은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신화가 무너져버린 순간이었다. 그 배경엔 당시 황우석의 제자였던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있었다. 《 PD수첩》에 제보한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후 2014년 대법원은 황우석에게 유죄(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황우석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류 교수는 지금도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다.​
 
10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동자동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 ⓒ시사저널 최준필 기자



황우석 신화 깨뜨린 류영준 교수, 명예훼손 무죄 선고받아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전화가 옵니다. 문자도 오고, 이메일도 오고, 협박 편지도 오고…. 하지만 전화번호를 바꾼 적은 없습니다. 나는 진실 앞에 떳떳하고, 진실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류 교수가 10월19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 내내 그의 말투는 무척 담담했다. 민감할 법한 질문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지난 10월10일 류 교수는 "황우석을 명예훼손했다"는 혐의에 대해 1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류 교수는 2016년 말 '황우석이 줄기세포 연구승인 관련해 박근혜 정권과 결탁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기소된 바 있다.  황우석 박사가 연구했던 배아줄기세포는 여성의 난자에 체세포를 이식해 얻은 수정란을 복제해 만든다. 황우석은 이를 치료제로 개발하려고 시도했다. 반면 류 교수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치료 목적으로 배아줄기세포를 개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이 배아줄기세포를 1998년에 처음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장밋빛 청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지금 전 세계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가 있을까? 전혀 없다.”  2009년 1월, 줄기세포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바이오기업 제론이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수 손상 환자 치료실험을 허가받은 것이다. 이전까진 윤리적 논란과 안전성 문제로 번번이 거절당했던 실험이었다. 뉴욕타임즈는 “놀라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국내에선 “황우석 스캔들의 덫에 걸린 사이 미국이 줄기세포 치료 시대를 앞당길 것”이란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2011년 11월, 제론은 관련 실험을 완전 포기했다. “자금 부족으로 더 이상 연구가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제론이 그 사이 쏟아 부은 돈은 최소 1억 5000만 달러(약 1700억원). 인건비 부족으로 직원의 38%를 해고하면서까지 매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전 세계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20년 넘도록 ‘0개’

 2014년엔 제론이 중단한 실험에 미국 기업 아스테리아스가 다시 손을 댔다. 올 7월 이 회사는 “실험 결과는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미시시피 의대 교수 케이스 탄제이는 “경기에서 다 진 팀의 마지막 시도”라고 깎아내렸다.  류 교수는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의 실상을 아는 의사들은 정작 관련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서 “치료제의 가능성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돈을 벌려는 기업과 그 관계자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희망을 거는 사람은 또 있다. 주로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이다. 배아줄기세포는 거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어서 희귀난치병도 낫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이들에 대한 류 교수의 생각을 물었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보면 에이즈에 걸린 주인공이 나온다. 병원은 그에게 치료제를 건네주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그때 주인공이 느꼈을 절망을, 생로병사를 지켜보는 의사로서, 진심으로 이해한다. 그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더 슬픈 건, 이익집단이 거짓말을 섞어가며 환자를 희망고문하는 게 현실이란 점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이익집단이 거짓말 섞어가며 희망고문 하고 있다”

 

진실. 류 교수가 인터뷰 내내 수차례 언급한 단어다. 그는​ 과거 《PD수첩》에 제보할 당시 한학수 PD에게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한 PD는 망설임 없이 “진실이 곧 국익”이라 답했다. 이 대답이 류 교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진실은 듣기도, 지키기도 어렵다. 말했다는 것만으로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무릅쓰고 얘기하려 한다. 시간이 지나면 황우석 곁을 지키는 사람들도 알게 될 거다. 누가 진짜 본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황우석 사태 이후 언론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지적하는 사안이 있다. “규제 강화로 선진국에 비해 줄기세포 시장이 뒤처졌다”는 것이다. 그 규제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2005년 시행된 생명윤리법이다. 이는 줄기세포 연구에 필요한 난자의 수집에 제한을 두고 있다.  

‘줄기세포 시장 뒤처졌다?…몰라서 생긴 오해!”

 이와 관련해 “규제 때문에 줄기세포 시장이 막혔다는 지적은 줄기세포 종류를 구분 못해 비롯된 오해”라고 류 교수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지금도 생명윤리법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성체줄기세포는 제대혈이나 다 자란 성인의 골수, 혈액 등에서 추출된 줄기세포다. 인간으로의 성장가능성을 품은 수정란에서 얻은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윤리적 논란이 적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 중인 4개의 줄기세포 치료제는 모두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제품이다. 류 교수는 “생명윤리법이 제한하는 분야는 치료제로 개발되기 힘든 배아줄기세포”라고 설명했다. 다만 생명윤리법에도 맹점은 있다. 해당법 31조는 희귀난치병 치료 목적 외에는 배아줄기세포 추출을 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 목적으로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하려는 사람도 “희귀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려 한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류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를 순수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은 열어두되, 법 때문에 희귀난치병 환자들을 속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순수 연구 길 열어두되, 환자 속이는 일 없어야”

 류 교수는 성체줄기세포를 다시 언급하며 “관련 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시행 중인 ‘재생의료법’이 그것이다. 이 법 덕분에 일본에선 병원이 치료면허를 받으면 성체줄기세포 시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재생의료법은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 외에 또 주목받는 분야가 있다. 역분화줄기세포(iPCs)다. 이는 다 자란 체세포에 자극을 줘서 만들게 된다.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다기능성을 갖추고 있다. 처음 발견한 일본 야마나카 신야(山里伸弥)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류 교수는 “역분화줄기세포도 연구가 쉽진 않지만 배아줄기세포보다는 가능성이 크다”며 “현실이 이런데도 ‘한국은 배아줄기세포, 일본은 역분화줄기세포’란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큰일 난다”고 우려했다.  


2004년 5월26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기 앞서 법장 총무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이날 불자상을 받은 당시 서울대 황우석 교수. ⓒ연합뉴스



‘황우석 스캔들’은 개인-국가권력 결탁이 빚은 참극

 류 교수의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황우석 박사의 흔적이 아직도 한국 줄기세포 시장 곳곳에 얼룩처럼 묻어있다고. 현재 황 박사는 서울 구로구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동물복제 실험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실험에선 손을 뗐다고 전해진다.  “황우석 박사는 결코 못 믿으시겠습니까?” 기자가 물었다. 류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저 합리적 의심을 할 뿐입니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황 박사는 자신의 연구 업적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 나아가 류 교수는 황우석이란 개인을 넘어 한국사회란 시스템을 계속 관찰하겠다고 밝혔다.  “황우석 뒤엔 국가권력이 있었다. 그는 권력과 결탁해 연구비를 받았고 유명세도 얻었다. 그리고 결국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건 사회 구조의 문제다. 개인과 정부의 결탁, 정부와 재벌의 결탁, 여기에 다리를 놓아 준 언론까지…. 이제 황우석은 물러났고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됐다. 하지만 둘 사이의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밝혀지길 바란다. 황우석에 대한 폭로로 수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초야(草野)로 숨지 않겠다. 내가 태어난 한국사회가 잘못된 길을 갈 때마다 경종(警鐘)을 울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