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사립유치원 6년 갈등, ‘출구전략’ 안 보인다

공교육 강화 정책 이후 줄곧 대립각 세워…정부의 ‘유치원 인수’도 논란 일어

2018-10-17     공성윤 기자
 사립유치원이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시작은 10월11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유치원 감사 적발 명단이었다. 다음날부터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네이버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 ‘사립유치원’ 키워드에 대한 관심도는 10월12일 최고점을 찍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엔 사립유치원 폐기론까지 제기됐다.  100년 넘게 유아교육을 책임진 사립유치원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지난해 9월, 전국 사립유치원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집단휴업을 강행하려 했다. 그때도 사립유치원은 지금처럼 지탄의 대상이 됐다. 다만 그 방점은 ‘비리’가 아닌 ‘이기심’에 찍혔다. “원장들이 학부모와 아이들을 볼모로 집단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한국유아정책포럼 회장)이 16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사립유치원 비리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한유총 관계자 제공



휴업사태도, 비리폭로도…이면엔 ‘교육부와의 갈등’ 

 휴업 사태가 일단락된 작년 9월19일, 기자는 한유총 고위관계자를 따로 만났다. 당시 그는 “교육부의 무소불위 권력 때문에 집단휴업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수차례 협상안을 내밀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유총은 교육부를 지목했다. 10월16일 내놓은 입장문을 통해서다.  교육부와 사립유치원의 갈등은 여러 부분에서 터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사립유치원 측은 회계규칙을 주요 쟁점으로 꼽았다. 윤성혜 한유총 언론홍보이사는 10월17일 “이번에 모든 사립유치원이 비리유치원이란 오명을 쓰게 된 근본적 배경도 회계규칙에 있다”고 했다.  이게 왜 문제일까. 사립유치원은 국공립과 달리 설립자, 보통은 원장의 개인 돈으로 세워진다. 원래 공적 지원은 없었다. 그러다 2012년 정부가 누리과정(만3~5세 유아에게 모두 제공하는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사립에도 국가 지원금이 들어왔다.  박용진 의원은 10월1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지원이 있다면 당연히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 말대로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회계감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사립에 적용한 감사의 잣대는 국공립의 그것과 똑같았다.  이 과정에서 지금껏 문제되지 않았던 사립유치원의 비용 처리가 회계부정으로 적발됐다. 또 회계규칙은 유치원 설립자가 건물에 투자한 수십억원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립유치원의 법적 지위는 ‘사립학교’이고, 이는 영리를 추구해선 안 되는 비영리 기관이라서다.



회계규칙 개정 두고 6년 넘게 대립해

 사립유치원은 반발했고, 교육부는 회계규칙 개정에 착수했다. 2014년엔 적립금을 쌓아 시설 투자에 쓸 수 있게 했다. 지난해 2월엔 세입·세출 예산과목이 구체화됐다. 하지만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사립유치원이 줄곧 주장해온 ‘시설사용료’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의 요구는 쉽게 말해 “사립기관이 공교육을 담당하는 대신 국가는 월세를 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근거로 사립유치원 측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사용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헌법 23조를 제시했다. 반면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 과장은 10월15일 “사립학교법과 유아교육법상 사립유치원 원장이 사적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해당 법률에 대해선 현재 헌법재판소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립유치원과 교육부는 6년 넘게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다. 양쪽 모두 나름의 법적 근거를 들어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상황이다. 나아가 더 파고들면 공교육을 향한 청와대의 의지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박춘란 차관 주재로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근간에 깔린 ‘누리과정’ ‘국공립 확대’ 공약

 사태의 씨앗이 돼버린 누리과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취지는 좋았다. 국가가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공적 지원을 받게 된 사립유치원은 회계감사란 부담도 떠안아야 했다. 감사 기준마저 교육청마다 제각각이었다.  더군다나 원장들의 회계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혼란이 발생했다. 충남의 사립유치원 원장 A씨는 “룰을 모르는 상태에서 축구공을 받았는데, 공을 열심히 차다가 옐로카드를 받은 격”이라고 표현했다. 또 한유총은 “사립이 국공립보다 정부 지원금을 적게 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누리과정은 계속됐다. 예산편성을 둘러싸고 수차례 파행을 겪었지만 문재인 정부에 안착했다.  그런데 또 갈등이 싹텄다.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40%로 확대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원인이었다.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죽이기’라며 항변했다. 이들은 “국공립 확대비용을 사립에 투입하면 적은 돈으로도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트로피 와이프 된 느낌”

 지난한 갈등 속에 허탈감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전북에서 사립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 B씨는 “트로피 와이프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트로피 와이프는 성공한 남성들이 새로 맞아들인 젊고 예쁜 부인을 일컫는다. 국가가 가난할 때 아이들을 돌보던 사립유치원이, 이젠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뜻이다.  나름의 출구전략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부산의 사립유치원장 C씨는 “원장님들 중엔 유치원 팔아버리고 싶어 하는 분도 꽤 있다”며 “국가가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운영이 어려운 사립유치원은 국공립으로 인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단 이 방안도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공시지가 기준으로 싸게 매입하길 원할 테고, 원장들은 현재 시가로 비싸게 팔고 싶어할 거란 관측이다.  결국 한동안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당장은 정부가 민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사립유치원 취원율은 48.9%다. 국공립(11.6%)의 4배가 넘는다. 비용은 별개 문제다. 서울에 단설 공립유치원 하나를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은 1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