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철마, 국제사회와 ‘속도 차’ 좁혀야 달린다

고위급회담서 착공식 못박았지만, ‘대북제재 해제’까진 여전히 먼 길

2018-10-15     오종탁 기자
 하루에 천리씩 나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가 그렇다. 잠시 주춤하고 삐걱대고 쉬어가긴 했지만, 곧장 다시 속도를 내왔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우려는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과거와 이어지는 현실이 워낙 냉혹하기에 우려와 견제도 일면 타당하다.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에 대한 일정이 합의된 10월15일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임진강역에 한산한 철로가 보이고 있다. 이날 남북은 11월 말∼12월 초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진행키로 했다. ⓒ 연합뉴스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대북 제재는?  

 

남북은 10월15일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착공식을 11월 말에서 12월 초 중 진행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 현지조사는 이달 말부터, 동해선 현지조사는 다음달 초 시작한다. 사실상 동서 철길 북측 전 구간을 한 달여간 조사할 예정이다 철도 북측 구간 공동조사는 지난 8월 유엔사령부의 군사분계선 통행 불허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유엔사를 적극 설득해 조사를 재추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경협의 마중물인 철도 연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미 국내에선 철도와 도로 연결에 관해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되고 있다. 10월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북 협력 사업을 통해 북한에 고속도로를 건설할 경우 일자리 130만개 이상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의 연구보고서를 근거로 했다. 아울러 한국교통연구원은 지난 8월21일 경의선 철도를 현대화하면 경제적 효과가 148조원에 이를 것이라 추산했다. 통일연구원, 세종연구소와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거론한 남북 경협 청사진은 활발한 후속 연구를 낳았고,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과 10월15일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진 분위기다.   실제로도 가까워졌을까. 남북 철도 공동조사는 대북 제재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조사 이후 남북간 철도와 도로가 실질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한다. 대북 제재 해제의 선결 조건은 물론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이다. 현재 북한 비핵화 협상은 한창 진행 중이다. 쉽게 낙관하기 어렵다. 대북 제재도 아직 강력하다. 남북간 경협 강화 움직임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는 이유다. 당장 철도·도로 공사에 필요한 자재나 중장비를 북한에 들이는 것부터 대북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 착공식이 그냥 '의식'에 그칠 여지가 적지 않은 상황을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는 모습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연말 착공식 후 본격적인 설계 등을 위한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며 "(착공식을 하더라도) 바로 공사가 착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 우려·불신 여전, 돌파 가능할까

 

결국 관건은 비핵화 협상 진전, 즉 북·미 관계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15일(현지시간) 북한과 관련해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그것(북한 문제)은 복잡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나마 낙관론에 가까운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미국 행정부와 의회 내에는 북한에 대한 의심과 섣불리 대북 제재를 풀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 연합뉴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최근 보도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는 '최고의 압박' 전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에 한국이 북한 비핵화 분야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를 너무 빠른 속도로 진척시키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고 전했다.  미국의 우려와 불신에 한국 정부는 '제재 완화·경협과 비핵화 프로세스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공법'을 택했다. 천재일우 (千載一遇)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1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대통령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서 제재를 완화해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의미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제재 완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도, 그 단계가 확정되기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며 "(제재 완화와 비핵화는) 상호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쪽이 옳을지는 최종 결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경우 아무리 남북 경협과 평화 체제 구축이 눈앞에 아른거려도 일단 미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원하는 바를 궤도에 올리는 게 가능해진다. 최은미 국립외교원 연구교수는 "정권에 따른 잦은 정책 변경과 유명무실한 제안으로 우리 정부에 대한 주변국의 신뢰는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한 성과 도출을 위한 성급한 시도는 또 한 번의 실망만 낳게 될 것"이라며 "실현 가능한 중장기적 플랜과 전략을 세우되 지나친 낙관과 속도감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각국의 대외 전략과 구상의 차이가 뚜렷한 현재 상황에서 우리의 구상을 주장하는 것만이 아닌 각국의 지역 구상과 접점을 찾고, 그들에게도 이익이 됨을 설명하며 동의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