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랑이 낳은 위대한 유산 ‘사키오리’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헌 옷을 찢어 씨실로 삼아 짠 베…물질 부족하던 시절 어머니들이 개발한 지혜
“톤톤, 그리고 오른발을 앞으로 밀어주고 다음 오른쪽 실을 넣고 그 발을 다시 앞으로 마지막으로 톤톤!”
선생님의 이런 구호에 맞춰 손과 발 그리고 머리도 써야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베틀 앞에서 베 짜기를 하는 풍경입니다. 민속촌이나 생활박물관의 전시품으로만 보았던 베틀 앞에 앉아 베를 짜려니 정서적으로도 왠지 특별한 경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오모리(森)현 도와다(十和田)시의 전통공예 남부사키오리(南部裂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쿠미(巧)공방입니다. 예약을 하고 갔기에 시간 맞춰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남부사키오리 보존회 여성회원들이었습니다. 베틀에 앉아보는 것도 처음인 저로서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감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톤톤, 발, 씨실 넣고 발, 톤톤”이라는 구호에 맞춰 얼마를 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져 갔습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올 3월27일 전국 각지에서 마음에 담아 응원하고 싶은 ‘고향’을 가꾸기 위해 힘쓴 단체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고향 만들기 대상(총무대신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낡은 기모노 찢어 다시 직물 원료로 사용
수상 단체는 남부사키오리 보존회로, 회장은 고바야시 데루코(小林輝子·85)씨입니다. 보존회는 1975년 설립되어 4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사키오리라는 전통문화를 차세대에게 전하는 노력이 높이 평가된 것입니다.
긴 시간 전통보존 활동을 해 오면서 지역의 초·중학생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키오리 체험을 담당했고, 작품을 지역 특산품으로 판매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해 지역 활성화에 공헌한 점을 들어 수상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공방에는 60여 대의 베틀에 알록달록 날실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베틀은 에도 시대에 사용했던 것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것까지 다양했습니다. 모두 민가에서 사용했던 것들을 한곳에 모아 공방에서 재사용하고 있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베틀에 앉아 배우고 있는 사람이 여섯 명이나 있고, 모두 20대에서 40대 정도 여성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교토·도쿄 등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보존회 분들은 모두 50대 이상으로 보이고 5명 정도 실내에서 체험자들을 도와주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남부사키오리(裂織)의 특이한 점은 재료입니다. 천을 가로로 2~3cm 찢어 실타래처럼 감아 놓은 것이 씨실 역할을 합니다. 너무 추운 지역으로 면이나 비단이 채취되지 않는 아오모리에서는 직물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런 배경하에 에도 시대부터 낡은 기모노를 찢어 다시 원료로 사용해 만든 직물이 남부사키오리입니다.
주로 아이 옷이나 난방기구인 고타쓰(炬)의 덮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농한기의 겨울밤에 가족들이 따듯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밤을 새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천을 찢어 실을 삼기에 좋은 점이 많습니다. 먼저 실로 베를 짜는 것보다 진도가 빨리 나갑니다. 그리고 두툼한 직물이 되니 따듯합니다. 한파가 심한 북쪽 지방에 적격입니다. 색이 알록달록 참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직물을 바꾸면 저절로 흉내 낼 수 없는 오리지널한 문양과 색상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이 시대에 와서야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존회 회장 고바야시씨는 말합니다.
“나는 사키오리를 아주 부끄럽게 생각했어요. 헌 옷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기에 왠지 시골의 가난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꼈고 아무도 이런 걸 하려고 안 했어요.”
사실 이 보존회 설립자는 2004년에 고인이 된 고바야시씨의 여동생 간노 에이코(菅野映子·1937년생)씨였습니다. 그녀는 이모가 돌아가신 뒤 사촌 자매들을 도와 유품을 정리하면서 화려한 색의 오비(帶·기모노를 고정시키는 끈, 장식으로도 쓰임)를 보고 그게 사키오리임을 알게 되고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가난의 상징처럼 여기던 터라 심지어 어머니조차 그만두길 바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우리 지역의 귀중한 재산이라면서 베 짜는 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 배우러 다니고 스스로 정립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보존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직물
물질이 부족하던 시절 어머니들이 가족을 위해 개발한 지혜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그녀는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헌 옷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기에 사람들의 편견이 없어지는 날 새롭게 평가될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녀가 꿈꾼 보존회 역할은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널리 알리는 일과 삶의 고달픔과 경쟁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도망 나와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베를 짜는 데 있어 베틀과 몸을 끈으로 고정시켜 베틀과 몸을 조화롭게 움직여야 합니다. 마치 내 몸도 베틀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무아지경으로 집중이 되고 잡념이 사라집니다. 그게 좋아 이 보존회 공방을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존회 회장 고바야시씨는 체육경기 지도자로도 도와다시에서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현역을 은퇴하고 사키오리 보존회를 꾸려가면서 동생의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존회의 젊은 스태프들과 상품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아름다운 직물을 이용해 파우치·필통·가방·조끼 등 실용적이면서 장식의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했습니다. 아오모리현은 자연이 수려하고 아름답기에 외국인이 많이 찾는 별장이나 호텔도 많습니다. 고급 호텔의 침대 겉시트를 사키오리를 이용해 화려하게 장식하고 호텔 내부 곳곳을 환하게 해 주고 있더군요.
모든 게 똑같은 기성품에 신물이 난 현대사회에서 ‘세계에서 오직 하나’라는 말에 우리는 눈길이 갑니다. 헌 옷을 찢어 씨실로 삼아 짠 베로 물건을 만들면 오리지널한 문양이 만들어지니 그야말로 세계에서 하나뿐인 것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배합된 색의 오묘함은 물론 손으로 짜는 것이기에 당시의 감정에 따라 땀도 촘촘하거나 약간 느슨하거나 차이가 나곤 합니다. 그것 또한 개성을 더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 사키오리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새롭게 주문이 증가하는 품목이 있습니다. 고인이 평소 입던 옷을 죽은 뒤 버릴 수 없어 갖고 있던 사람들이 그 천을 씨실로 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 간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난의 상징이었던 베 짜기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기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존회에서 40여 년간 노력해 온 점 중 제가 가장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초·중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게 장을 열어주는 점이었습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사키오리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나 만들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모르게 됩니다. 젊은 세대의 아이들이 왜 알길 바라냐는 질문에 이것은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옛 여인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낳은 위대한 유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이런 유산은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따듯한 고향으로 다가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저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