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우버 헬스케어

[유재욱의 생활건강] 하이테크 발달로 시작된 ‘왕진 서비스’, 미·중·일과 달리 한국은 뒷걸음질

2018-10-12     유재욱 유재욱재활의학과의원 원장

‘우버닥터’나 ‘우버너스’라는 말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예약하면 의사가 집을 방문해 치료해 준다는 꿈같은 이야기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현실화됐다. 미국에서는 2015년 의사가 환자를 방문하는 왕진 서비스 회사가 설립됐다.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하면 의사나 간호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찾아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이미 뉴욕·LA·애틀랜타 등 대도시에서는 실시되고 있고, 그 범위도 넓어지는 추세다.

중국에는 ‘공유간호사’ 앱이 있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간호사가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는 주사, 링거, 혈액 채취, 산모 관리 등 간호사가 할 수 있는 범위다. 일본은 왕진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듯하다. 고령 인구가 세계 최고인 일본은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찾지 못하는 노인이 많다.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의사가 환자를 찾아간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처럼 미·중·일 대국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차세대 의료 서비스를 ‘찾아가는 의료’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미국은 한 해 520만 건, 일본은 1000만 건의 왕진 의료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기술적으로는 안 될 것이 없다.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의 운동행태와 신체 데이터를 읽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병원과 공유하고 처방을 받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몇 년 전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을 치료해 주었던 치과의사가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현행 의료법상 모든 의료행위는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고아원이 의료기관이 아니므로 의사가 진료해도 불법이라는 논리다. 4차 산업혁명이고 뭐고, 일단 왕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한편으로 왕진 서비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우려의 시각도 있다.

“만약 여러 의사가 치료하면 진료의 일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 문제가 된다.” “의료행위의 특성상 진료환경이 바뀌었을 때 의료사고 확률이 증가한다.” “우버 헬스케어가 실시되면 미국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설립될 것이다.”

전면적인 개방보다는 ①고령이거나 장애가 있어 쉽게 병원까지 갈 수 없는 사람 ②수술 후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퇴원 후 집에서 소독이나 진찰을 위해 왕진하는 경우 ③똑같은 약을 타기 위해 몇 년째 한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을 찾아야 하는 사람 등 부작용이 적고 혜택을 볼 수 있는 환자부터 개방하는 것이 국민의 불편을 덜고 부작용도 줄이는 길이다.

여러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빨리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고령화 사회가 되는 경우는 더 그렇다. 또 어차피 시대의 흐름이라서 가야 할 길이라면, 우리가 먼저 뛰어들어 그 분야 선두를 달리는 것이 옳다. 물론 아직 제도적 문제는 많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다가는 이미 먼저 뛰고 있는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과학의 발달로 병원에만 있어야 했던 큼지막한 의료기계는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됐다. 이제 푸드트럭이 아닌 첨단의료장비를 탑재한 ‘메디컬트럭’이 도로를 누비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