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물’서 ‘마중물’로…기정사실화된 종전선언
폼페이오 4차 방북 후 상황 반전…북·미, 남·북·미 연쇄 정상회담 가시화
그간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필요조건이란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비핵화 협상 테이블 앞에 선 북·미 양측의 기싸움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발사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이어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까지 약속했으나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불만을 표시해 왔다. 미국은 좀더 확실한 비핵화 조치 없이 종전선언을 하긴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의 몸값을 높이면서 추가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는 전략을 펼쳤다.
미국의 '양보'…북한이 원하던 종전선언에 성큼
답보상태였던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으로 해소 국면을 맞았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월7일 평양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만난 총 시간은 5시간30분이라고 전달을 받았다"며 "그만큼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과의 만남에 무게를 두고 충분한 시간과 성의를 다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4차 방북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 협상에 "중대한 진전"을 이뤘으며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를 확인하기 위한 사찰단이 곧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10월8일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1박2일간의 평양·서울 방문을 마치고 중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언론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같은 날 북한 매체들도 김 위원장이 "조만간 제2차 조미(북·미)수뇌회담과 관련한 훌륭한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보도했다.
북핵 사찰단 방문 허용 등 북한의 조치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미국의 '양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방북 기간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에 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이 취하게 될 비핵화 조치들과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에 대해 동시에 논의가 이뤄지게 된 것은 북한이 요구해온 단계적 접근과 동시행동 원칙을 미국이 마침내 수용한 결과"라며 "비핵화 방법론과 관련해 북·미 간의 입장 차이가 크게 좁혀졌다"고 평가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 가시화"
앞서 북한은 10월2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종전선언이 비핵화 조치와 맞바꿀 흥정물이 아니라며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이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열망해온 만큼, 공식 입장이라기보다 기싸움 성격이 강한 표현이었다.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남·북·미 모두 종전선언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관련해 합의 수준의 의견 절충이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정성장 본부장은 "김 위원장의 만족스러운 반응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직후 한국·중국 방문을 고려할 때 북·미 간에 종전선언 문제를 놓고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 같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미국 중간선거 이전인 10월 내에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종전선언 문제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곧바로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연이은 방중을 기점으로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가능성에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대북 협상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직후 중국에 들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노영민 주중 대사는 10월8일 베이징(北京) 대사관에서 취임 1주년 기념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종전선언에 관한 중국 입장에 대해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을 썼다"면서 "중국은 현 단계에서 종전선언에 참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그 부분에 대해 당사국들이 반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