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재원 “재능은 15%, 나머지는 경험과 노력”

[이영미의 생생토크] 정규시즌 우승 이끈 두산 베어스 주장 오재원 “제일 먼저 출근해 제일 늦게 퇴근”

2018-10-05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두산 베어스의 주장 오재원(33)은 다양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특유의 허슬 플레이는 두산 팬들에게 열광적인 응원을, 상대팀 팬들한테는 화를 불러일으킨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한테 분풀이를 한다. 남다른 승부근성과 투지, 오기, 열정 등은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기도 하지만 그 한계점에 이르러 해답을 이끌어내는 실력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2007년 프로에 데뷔한 오재원은 12년 만에 시즌 성적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올 시즌 12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7, 15홈런, 77타점, 15도루, 출루율 0.375, 장타율 0.471을 기록하며 팀의 정규시즌 우승에 공헌했다. 10월3일 잠실야구장에서 오재원을 만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봤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아직 시즌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해 놓은 터라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할 것 같다.


“우승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시즌이었다. 무더운 여름 동안 성적이 상승곡선을 이루다 아시안게임 휴식기 직전에 등 쪽에 통증이 생기면서 제대로 된 스윙을 해 보지 못했다. 8월 이후 타격감을 끌어올리려고 웨이트트레이닝 강도를 높였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밸런스가 흐트러졌고 스윙이 흔들리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조급한 마음이 화근이었다. 하던 대로만 했어도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 부위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출전을 강행했는데.


“오히려 경기에 계속 나갔던 게 도움이 됐다. 9월30일 경기부터 마음에 드는 스윙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이미 매직넘버가 나온 터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상을 핑계 대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잘 버틴 게 신기할 정도다.”


올 시즌은 오재원 선수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한 해다. 지난겨울 미국까지 건너가 유명한 타격코치한테 레슨을 받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이 더 기대됐고 궁금했다. 


“모두가 날 주시하는 듯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시선들이었다. 그렇다고 신경 쓴 건 아니다. 주위를 돌아볼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재원은 2017 시즌을 마치고 미국 LA를 방문했다. 거기서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의 개인 코치로 유명한 덕 래타 코치를 만났다. 사전에 스케줄을 예약하고 2주간 일정으로 LA에서 개인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덕 래타 코치는 타격 이론과 관련해서 ‘재야의 고수’로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다. 수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시즌 중 또는 비시즌 때 래타 코치를 찾아가 레슨을 받는 것만 봐도 그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오재원은 그런 래타 코치한테 직접 레슨을 받고 시즌 중에도 문자로 조언을 구하고 대답을 얻기도 했다. 2주간의 특별 레슨을 받기 위해 거액의 개인 경비를 지출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120% 만족했던 레슨이었다고 말한다.

래타 코치로부터 레슨을 받고 2주 후에 귀국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


“코치님으로부터 배울 때는 풀세팅이 됐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귀국하면서 속으로 ‘너희들 다 죽었어!’ 하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런데 한국 오자마자 다 까먹었다. 그렇게 까먹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소속팀 스프링캠프가 시작됐고 첫날 타격훈련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스윙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더라. 그전에도 꾸준히 연습은 했지만 막상 캠프 첫날부터 모든 게 백지 상태가 되고 말았다. 너무 황당하더라.”


많이 당황스러웠겠다. 


“오죽했으면 2차 캠프였던(1차 캠프는 호주) 일본에서 훈련 중단하고 미국으로 다시 가려 했을까. 감독님한테 욕먹을 각오하고 미국에 가서 래타 코치를 만나고 오려 했다. 감독님, 코치님들 볼 면목도 없었다.”


당시 개막전 라인업 짤 때 코칭스태프에서 오재원 선수를 선발 명단에 넣는 걸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시범경기 성적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습밖에 없었다. 아마 프로야구 선수들 중 나만큼 연습량이 많은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출근해 제일 늦게 퇴근했다. 경기 마치면 항상 타격훈련장 가서 방망이를 돌렸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래타 코치님 훈련장에서 만났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포수 닉 헌들리를 떠올렸다.”

 
9월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t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두산 오재원이 중견수를 넘기는 2루타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닉 헌들리를 만났던 건가. 


“그 선수도 래타 코치님한테 레슨을 받더라. 훈련장에서 우연히 두 차례 정도 마주쳤다. 서른다섯 살의 베테랑 선수도 타격폼을 바꿔보겠다고 래타 코치님을 찾아와 훈련하는 걸 보고 용기를 많이 얻었다. 코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믿고 노력하면 뭔가 이뤄지겠지 싶었다.”


그래도 잘 안될 때는 이전의 타격폼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 같다. 한창 시즌 중인데 성적이 안 나면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주위의 조언에 귀를 닫았다. 그들은 이전의 내 타격폼을 떠올리고 조언해 주는데, 그렇게 했다간 내가 쏟아부은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14년에도 3할 타율을 기록했다. 그때 내게 어떻게 해서 3할을 치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왜 잘 쳤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래타 코치님을 찾아간 건 그 답을 얻고자 함이었다. 누가 물어봐도 내 타격폼과 관련해서 명쾌한 대답을 내놓고 싶었다. 수십 가지의 길이 있었지만 다 막혀 있었고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터라 주위의 얘기에 귀를 닫을 수 있었다.”


올 시즌 홈런 15개로 커리어 하이를 이룬 반면 삼진은 110개로 역대 최고 수치를 나타냈다. 홈런과 삼진 수가 극과 극의 결과를 나타냈는데. 


“래타 코치로부터 배운 타격폼이 완성형이었다면 홈런이 더 많이 나왔을 것이다. 삼진이 늘어난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타격폼이 안정적이었다면 삼진 먹기 전에 공을 쳐냈을 것이다. 올 시즌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앞으로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성적도 감사하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기자는 덕 래타 코치를 지난 8월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오재원의 타격폼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난 그가 갖고 있는 운동신경을 최대한 사용해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가 하려고 했던 건 타석에서 어떤 공이 들어와도 방망이에 힘을 실어 칠 수 있는 것이었다. 맞히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힘을 실어 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스윙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코스에 어떠한 공이 들어와도 대응이 가능하고 힘을 실어 칠 수 있다면 장타와 홈런도 늘어나는 것은 물론 타구의 질도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했었다. ‘이전에는 코치들이 이끄는 대로 타격하기에 급급했고 타격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스윙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나는 스윙할 때 선수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체크한다. 선수가 20년 동안 다른 방법의 스윙을 해 오다 나와 함께 변화를 시도했다면 아주 작은 변화라도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재원은 그걸 받아들였고 해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7월2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경기에서 두산 오재원이 1타점 적시타를 날린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말부터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받은 레슨이 빛을 보는 시점이기도 했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그때는 타석에 계속 들어가고 싶었다. 1번부터 9번까지 다 내가 치고 싶을 정도였다. 9타석 9삼진이 나와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풀스윙을 해 본 적이 있었나 싶더라. 내 몸의 반응을 느끼면서 풀스윙을 했고 홈런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의 희열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야구가 정말 재미있었다. 무더운 날씨만 아니라면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오재원도 ‘홈런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애 첫 끝내기 홈런도 만들어냈다.


“당시 안타를 치고 베이스로 향하면 상대팀 수비수들이 많은 질문을 해 왔다. 미국 가서 어떤 걸 배웠는지, 타격 레슨이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 등등 궁금해하는 게 많더라. 내가 미국 가서 레슨을 받고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쩍 선수들의 질문이 늘어났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절감했다.”


‘어차피 우승은 두산’이란 말 들어봤나.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 2015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올 시즌은 특히 두산의 공격 지표가 상위권에 올라 있다. 3할 타자만 7명이나 되는데 이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3루수 허경민의 반전이 컸다. 최주환도 탈장 증세로 수비 부담을 덜고 지명타자에 집중하면서 홈런 타자로 만개했다. 마지막은 오재일이다. 오재일이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양의지·김재환은 워낙 잘 치는 선수고. 오히려 박건우의 성적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나도 조금의 힘을 보탰다고 생각한다.”


정규시즌에서 우승하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는 혜택이 주어진다. 엄청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KBO리그는 정규시즌 우승보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야 진짜 우승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말씀하신 대로 한국시리즈 직행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상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기다리는 것 아닌가. 적은 총알을 피해 가면서 올라와야 하는 것이고. 한국시리즈까지 절대 느슨하게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두산이 항상 상위권에 있다 보니 5연승하다 1패만 해도 그 여파가 크다. 지면 안 된다는 부담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규시즌 우승을 일궈냈다. 좋은 분위기를 잘 다독여서 더욱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두산은 경쟁에 있어 주전과 비주전의 구분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알아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덕분에 항상 건강한 텐션이 유지되고 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안 되면 뒤에 있는 후배가 그 몫을 해 줄 거라는 기대와 자신이 있다. 후배들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 몫을 해낸다. 그 사이에 시기와 질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잘하는 선수한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팀이 두산이고 선수들이다. 물론 선수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시기와 질투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걸 외부에 노출시키는 순간 팀에 독이 된다. 두산의 문화는 그런 부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설령 속으로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겉으로 내색하면 안 된다. 팀의 문화를, 룰을 지켜야만 한다. 두산 선수라면 말이다.”

 
9월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t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10대3으로 승리한 두산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있다고 들었다.


“오재일은 잠실야구장 전광판을 맞히는 홈런이 나오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하더라(웃음). 난 25개 이상 홈런을 치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그리고 항상 열정이 넘치는 야구를 하기 위해선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시기가 2009년이었다. 2007년 두산 입단 후 성적이 바닥을 찍고 있어 뭐라도 해 보려고 2009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고, 2010년까지 웨이트트레이닝을 해 보고 안 되면 야구를 그만두려 했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게 2014년이었다.” 


오재원 선수의 특징은 스스로를 ‘B급 선수’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김광현·양현종의 공을 치기 어렵다. 그들을 상대로 안타라도 하나 나오면 정말 ‘생큐’다. 야구선수로서의 재능은 15%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를 경험과 노력으로 채웠다. 이대호(롯데), 김현수(LG), 김재환(두산), 이정후(넥센), 강백호(KT) 등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 부러움과 자괴감이 들 정도다. 난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미국까지 가서 레슨을 받는 것이다.”

오재원이 두산에 입단했을 때 그의 지명 순위는 2차 9라운드 전체 72순위였다. 72순위 다음은 없었다. 오재원이 제일 마지막에 지명됐다는 의미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2015년에 이어 올 시즌에도 두산의 주장을 맡고 있는 건 야구장 안팎에서 보이는 그의 눈물겨운 노력과 열정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오재원의 2017 시즌 성적은 타율 0.237, 7홈런, 40타점 등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과감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평생 은인으로 삼을 만한 스승을 만났다. 오재원은 올 시즌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2개월 전에 이미 래타 코치와 레슨 스케줄을 잡았다. 오재원의 여정에 동행하려는 후배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교통정리가 필요할 정도다. 그는 인터뷰에서 올 시즌보다 내년 시즌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마 내년에는 그의 버킷리스트가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25개의 홈런을 장식하는 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