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동상으로 이념 전쟁터가 돼 버린 배재대

이승만 동상 철거 놓고 대전지역 진보·보수 진영 간 긴장감 팽팽

2018-10-04     대전 = 김상현 기자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를 두고 대전의 한 대학교 교정 동상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대전시 소재 배재대학교 교정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그 대상이다. “반민족·반헌법 행위​자인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이 배재학당의 설립 이념에도 배치되는 만큼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국부 동상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충하고 있다. 배재학당은 1885년 8월 3일, 미국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한국 최초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이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설립 이념으로 “자유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을 양성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재학당은 일제 강점기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설립 의지를 이어온 배움터다.  이 전 대통령 동상 철거 여부 논란의 중심에 선 배재대학교는 배재학당을 모체로 설립됐다. 배재대학교에는 현재 우남관 앞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서있다. 우남관이라는 이름은 이 전 대통령의 호를 따 붙인것이다.​ 이 동상 철거 여부를 두고 이념 논쟁이 확산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전시의회가 직접 나서 동상 철거 요구…보수 단체들 곧바로 반발

 대전시의회는 지난 9월3일 ‘반민족·반헌법행위로 인해 4·19를 불러온 장본인이자 민주주의 파괴자’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이날 개최한 제239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오광영(더불어민주당·유성2)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반민족·반헌법 행위자 단죄 및 국립현충원 묘소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배재대에 있는 이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와 우남관의 명칭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대전지역 시민단체들도 이와 같은 시의회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보냈다. 결의안이 채택되자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를 비롯한 대전지역 51개 단체로 구성된 '이승만 동상 철거 공동행동'은 곧바로 이 전 대통령 동상 철거와 친일·반민족·반헌법 행위자 이장을 촉구했다.  이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이유는 공보다 과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전시 산내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권 연장을 위한 반민특위 해체와 친일파 중용 등 민족정기를 훼손했으며,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정적 제거와 언론 탄압에 이용했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도 한국전쟁 시기 100만 명의 민간인학살 지시와 부정선거로 민주주의 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배재대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시사저널 김상현


 사태가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흘러가자 이번에는 보수 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9월 12일 '우남 동상 지키기 자유민주 시민본부 발족 준비위'는 성명을 내고 "전국에 단 하나 남아있는 국부 동상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하대학교와 경인여대에 있던 이 전 대통령 동상은 각각 1983년과 2017년 철거됐다. 이들은 "역사는 해석 평가의 대상이지, 당대인들의 구체적 징벌 대상이 아니다"며 "역사에 대한 징벌작업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괴뢰집단이나 하는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날인 9월 14일에는 ‘나라지킴이 고교연합’이 대전시의회 앞에서 결의안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이형규 고교연합 대전고 회장은 “대전시의회의 결의안은 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충절의 고장 충청인 나아가 자유대한민국 국민을 능멸하는 행위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대전시의회가 이 전 대통령 묘지를 이장하라거나 동상을 철거하라고 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배재대 졸업 동문이 기증한 동상, 학교 측 “철거 권한 없다”

 배재대학교에 있는 이 전 대통령 동상은 그의 인생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다. 1987년 2월 배재대 졸업 동문들이 기증해 세웠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항쟁 과정에서 재학생들에 의해 철거됐다. 이후 1990년 2월 학교 측이 동상을 재건립 했으나 학생들이 달걀과 페인트를 끼얹으며 철거운동을 계속하자 1997년 자진 철거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8년 6월 5일 학교 측은 건국 60년을 기념한다며 우남관 앞에 다시 동상을 세웠다. 대학총동창회와 총학생회가 함께 재건립을 추진했다. 이후 10년 만에 또 다시 철거 될 수도 있는 운명을 맞게 됐다.  올해 들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4월  제주 4·3항쟁 70주년, 4·19혁명 58주년을 맞이해 배재대민주동문회, 양심과인권나무, 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가 배재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동상 철거를 촉구했다.  지난 7월 20일에는 대전지역 51개 단체로 구성된 '이승만 동상 철거 공동행동' 회원들이 배재대학교 21세기관에서 개최한 대전 서구의회 본회의에 앞서 의원들을 향해 시위를 펼쳤다. 이날 독립유공자유족 대전지부 홍경표 사무처장은 "우리는 4개월째 배재대학교 당국에 이승만 동상의 철거를 촉구하고 있지만 학교는 시민들의 요구에 대해 어떠한 반응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일자 한 때 SNS에는 ‘배재대가 이 전 대통령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라는 가짜 뉴스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 동상은 총동창회에서 건립한 것으로 학교가 철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동상 철거 건은 학교가 협상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배재학당총동창회는 지난 9월 7일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이승만 건국대통령 하와이 25년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을 초청해 행사를 진행했다. 건국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행사를 개최하는 총동창회에서 철거를 허락할 일은 없어 보인다. 진보와 보수 진영은 지금도 이 전 대통령의 동상 두고 이념 전쟁 중이다.   

이화여대 김활란 동상 등 비슷한 사례, 전국 배움터에서 논란 중

 교정 내 동상 철거문제는 배재대만이 아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한국인 초대총장 김활란 동상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이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측에서는 김 전 총장의 친일행각을 문제 삼고 있다.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서 상무이사를 맡고 애국금차회를 조직해 조선인에게 재물을 받아 일제에 헌금 했다는 것이다. 친일지원활동 기고나 강연 등을 통해 일제침략정책을 미화 했다고 동상 철거 요구 측은 강조한다. 고려대학교도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었던 김성수 동상이 문제다. 동아일보 창간자이자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성수는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수록됐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언론계 친일파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외에도 추계예술대학과 중앙여중·고에 세워져 있는 황신덕 동상, 휘문고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민영휘 동상 역시 친일 행각 의혹에 의해 청산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