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올드 보이의 귀환, 한국 정치의 후퇴
2018-09-21 정두언 前 국회의원
왜 그런가. 정치가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3D 업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힘들다. 비용이 많이 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이 많다. 가정은 파괴 직전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정치는 더럽다. 정치를 욕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오죽하면 한강에 사람이 빠지면 정치인부터 건지라고 하겠는가. 정치는 위험하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흔하다. 늘 뒷머리가 뻐근하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직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한다. 정치는 사회의 최고 의사결정을 하는 주요 기능이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정치를 꿈꿨다. 역사의 기록은 정치인의 기록이다.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이 땅에 잠시 왔다 가면서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작은 이름에 비해 오명만 남긴 것 같아 회한이 남는다. 정치를 그만둔 지금도 정치에서 떠나지 못하고 이런 유의 글을 쓰고 있다. 무책임한 얘기지만, 일종의 팔자라고 자조한다. 요새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헬, 조선’이라고, 사회가 어지러워서 그렇지 필자의 세대와는 비교가 안 되게 다들 반듯하고 유능하다. 그런데 이들이 정치라면 마치 무슨 괴물처럼 여기고 피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에 새 피가 수혈이 안 된다는 말이다. 드물지만 정치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이 있기는 하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모 당의 청년 몫 최고위원 출마자들의 토론을 주재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헐!’이었다. 소위 콘텐츠도 없이 오로지 권력을 향한 무모한 야망만이 보였다면 필자의 편견이었을까. 정치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국회에는 초선이 절반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빛나는 초선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바마도, 링컨도 초선이었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선수(選數)가 깡패다. 과감하게 선배들을 꾸짖는 초·재선이 사라진 지 오래다. 국회에서 소장파란 이름이 실종됐다. 이승만 자유당 때에도 있었던 역대 소장파들은 일종의 수족관 속 메기의 역할을 하며 당의 건강성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다음 선거에만 가 있는 것 같다. 고령화 시대의 그늘이 정치권에도 드리워졌다. 한물이 가도 한참 간 올드 보이들이 몸은 건강한데 정치를 그만두면 할 일이 없다. 누군가 얘기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이들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참모총장 하던 사람이 연대장도 좋고 중대장도 좋다고 정치권으로 속속 복귀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 반 자릿수 지지율 정당의 대표가 되어서 희희낙락한다. 여야를 넘나들며 정당 대표를 지냈던 사람이 한 자릿수 정당의 대표가 돼 정개개편을 주도하겠단다.
언론도 문제다. 언론의 관심은 대한민국의 정치가 아니라 여의도의 정치다. 언론사 기자들은 이미 한물간 ‘셀럽’들의 꽁무니만 쫓아 다닌다. 국민들은 이미 이들을 엑스(X) 쳤는데도 말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올드 보이 전성시대다. 목하 한국 정치가 ‘백 투 더 패스트’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