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산업①] 한국 관광은 ‘왜’ 이렇게 일본에 뒤처졌을까
이낙연 총리의 ‘슬픈 토로’…韓·日 외국인 관광객 수 격차 1500만 명
2018-09-21 김종일·조유빈 기자
2015년 일본에 외국인 관광객 수 역전당해
통계를 보면 분명한 현실이 드러난다.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2012년(한국 1114만 명, 일본 836만 명)만 해도 한국이 적잖은 격차로 앞섰던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2014년(한국 1420만 명, 일본 1341만 명)을 거쳐 2015년(한국 1323만 명, 일본 1974만 명)에 역전당했다. 이후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2016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724만 명에 그친 반면, 일본은 2404만 명에 달했다. 지난해엔 사드 등의 영향으로 오히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33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사이 일본은 2869만 명으로 격차를 더 벌렸다. 작년 한·일 간 외국인 관광객 수 격차는 1500만 명이 넘는다. 단순히 외국인 관광객 수만 차이가 나는 게 아니다. 관광수입은 더 큰 차이가 난다. 양국의 관광수입은 이미 2010년 각각 103억 달러와 132억 달러로 적잖은 격차가 났다. 그런데 양국의 관광수입은 이후 꾸준히 벌어져 한·일 간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뒤집힌 이듬해인 2016년에는 한국 173억 달러, 일본 307억 달러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작년에는 한국 134억 달러, 일본 341억 달러로 2.5배 이상 차이를 기록했다. 두 나라의 관광 경쟁력은 완전히 역전됐다. 세계경제포럼이 140여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국가별 관광 경쟁력 순위를 보면, 2015년 한국은 29위, 일본은 9위였다. 작년 한국은 19위, 일본은 4위다. 뚜렷한 격차가 난다. 이 총리가 일본을 “관광대국”이라고 표현하면서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고 한 데는 이런 ‘현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대체 그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떤 이유로 이렇게 격차가 벌어진 걸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학계와 전문가들은 일본의 ‘엔저 효과’나 한국의 ‘안보 불안’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지만, 공통적으로 양국 정부가 관광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전략의 차이가 지금의 격차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2000년대부터 꾸준히 관광 산업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 왔다.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한 ‘요코소 재팬(어서오세요 일본)’ 프로젝트를 범정부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일본은 2007년 ‘관광입국’을 표방한 이후부터는 입국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2008년에는 국토교통성의 일개 국에 불과했던 관광국을 관광청으로 승격시켰다. 아베 신조 총리 역시 관광 진흥에 매진 중이다. 아베 총리는 “관광은 성장 전략의 큰 기둥”이라며 2012년 말 재집권 이후부터 관광 산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재집권 후 곧바로 자신이 의장을 맡는 ‘관광입국추진 각료회의’를 신설하며 일본 관광 산업의 컨트롤타워가 자신임을 만방에 알렸다. 2015년에는 ‘내일의 일본을 뒷받침하는 관광비전 구상회의’라는 회의체도 만들어 관광 산업을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으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日, 고령화 대안으로 관광 산업 육성
일본 정부가 관광 산업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뭘까. 관광 산업이 일본이 직면한 고령화라는 엄청난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 총리가 “일본을 배우자”고 얘기한 맥락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총리는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들어갔다. 지방 소멸이라는 용어가 우리보다 먼저 나온 곳도 일본이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총리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경제적 폐해를 보완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 관광진흥”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소비와 생산, 유통을 동시에 위축시키는데, 관광은 유동인구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유동인구를 유입시켜 소비와 유통을 늘리고 생산을 자극한다는 설명이다. 이 총리는 “고정인구에 비해 유동인구는 소비성향이 높다. 돈 씀씀이가 좋다”며 “그래서 관광은 고용유발 효과가 매우 높다. 관광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10억원을 투자했을 때 늘어나는 취업자는 제조업은 8.8명이지만, 관광은 18.9명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대통령 주재 ‘관광진흥확대회의’가 개설됐다. 대통령 주재의 관광 관련 회의체가 구성됐지만 ‘창조경제’에 가려 관광 산업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첫 회의는 한참 후인 2016년 6월에야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회의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을 인용해 바가지와 불친절을 없애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와 관광의 결합에 방점을 두겠다는 방향은 제시했지만 손에 잡히는 정책은 내놓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도 관광 산업에 별다른 의지를 피력하고 있지 않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비서실을 개편하면서 관광진흥비서관을 없앴다. 관광비서관은 정권마다 차이는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물론 보수정부 때도 직제상 명맥을 유지해 왔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없어진 것이다. 국가관광전략회의도 당초 대통령 산하 기구로 추진됐지만 결국 국무총리 산하 기구로 격하됐다. 아베 총리가 직접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며 뛰는 것과는 분명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에 김홍주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은 지난 7월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참석해 “청와대에 관광비서관 제도를 복원해 달라”고 건의했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대통령이 관광 산업에 직접 힘을 실어주는 시그널을 보내야 부처 간 조율과 협력을 통해 정책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데, 지금 정부의 모습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실상 손 놓고 있는 사이 한국 관광 산업은 ‘저가 관광’ ‘서울·제주 집중화’ 등 나쁜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제 중국인들에게 한국 관광은 ‘덤핑’으로 가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중국 여행사들은 한국 관광상품을 1박에 5만~10만원대에 판다. 숙박비도 안 나오는 이런 가격의 상품이 가능한 이유는 인두세 때문이다. ‘인두세’란 한국 여행사가 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 여행사에 건네는 돈으로 한국 여행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받고 있다. 한국 여행사는 이 돈을 메우기 위해 관광객들을 면세점 등에 ‘뺑뺑이 쇼핑’을 돌리고, 결국 이들은 나쁜 인상만을 받은 채 다시는 한국을 찾지 않게 되는 악순환을 낳는다.관광 산업에 큰 의지 피력 안 하는 文 대통령
‘서울·제주 집중화’ 현상도 심각하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보면,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서울과 제주 외에 방문한 도시를 찾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다르다. 일본 여행도 3대 도시권(도쿄·오사카·나고야)에 집중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일본 정부의 꾸준한 노력으로 최근 이런 경향이 바뀌고 있다. 아웃바운드(한국인의 해외관광) 측면도 심각하다. ‘여행은 해외여행’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객은 2650만 명에 달했다. 외래객(1334만 명)의 두 배에 달한다. 올해도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올 7월까지 해외여행객은 1681만 명이 넘지만 외래객은 847만 명에 그쳤다. 정부도 뒤늦게 지방공항을 활성화하고 지역관광 콘텐츠를 늘리는 등 ‘서울·제주 집중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이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관광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대책에 큰 기대를 보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행사 대표는 “제2차 국가관광전략회의를 한지도 몰랐다”며 “정부 대책을 쭉 살펴봤는데 내용은 좋더라. 근데 ‘어떻게’가 없다. 가령 ‘유령 지방공항’ 문제 해결 없이 어떻게 지방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결국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한 것 아닌가 싶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관계자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지방공항 문제에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담당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만 말했다.※‘한반도 비핵화’ 특집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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