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③] 클라이맥스 치닫는 北비핵화 ‘미션 임파서블’

‘한반도 운전자’ 자처하던 한국, 이젠 ‘고도의 보증인’ 역할 해야

2018-09-20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2018년 6월12일 오전 10시, 


싱가포르 카펠라호텔.


호텔 정문 계단에 빨간 융단이 깔려 있다. 계단 바로 위 테라스에 성조기와 인공기 각 6개가 교차로 세워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동시에 좌우에서 입장한다. 둘은 각각 6걸음씩 걸어와 12초간 악수를 나눈다. 6월12일을 기념하는 ‘세기의 악수’라고 외신들은 앞다퉈 소식을 전한다.


시즌1은 이렇게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연과 연출·제작 중인 ‘미션 임파서블: 북한 비핵화’라는 리얼리티 드라마 이야기다. 시즌2 첫 장면은 2018년 6월12일 오후 기자회견장에서 시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정착,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의 4개 합의사항이 담긴 문서를 펼쳐 보이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이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연신 악재를 만나 고생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싱가포르 정부 제공

 미국 언론은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혹평한다. 워싱턴DC의 분위기도 싸늘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겼다’는 뜻의 ‘Kim Jung Won 회담’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비핵화 회담을 맡은 측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정상회담 이후 다시 평양을 방문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약속했던 미군 유해 송환도 지지부진하다.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방북 길에 나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하는데, 드라마 전개상 한 번 반전을 주어야 할 것 같다. 백악관 집무실 ‘결단의 책상’ 앞으로 출연진들을 불러 모았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스티븐 버긴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 앤드루 김 CIA코리아미션센터장이 모였다. 해외출장 중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전화로 연결했다. 짧게 회의를 마치고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사실을 트위터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도 실시간으로 그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손끝을 떠난 메시지는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휴대폰으로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바야흐로 트럼프식 ‘외교 뉴노멀’이 한반도를 강타한 것이다. 8월에 태풍 솔릭이 제주도를 할퀴고 지나간 직후였다. ‘벼랑끝 외교’로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하던 북한마저도 이제는 트럼프식 ‘외교 뉴노멀’ 앞에서 전술을 새롭게 짜야 할 판이 됐다. 


한국에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 분쟁의 당사자로서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며 북·미 관계 개선과 비핵화 국면에서 중개자,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잘해 왔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 ‘고도의 보증인’ 역할도 해야 할 차례가 됐다. 보증인은 책임지고 틀림이 없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트럼프의 ‘외교 뉴노멀’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북·미 관계 교착으로 ‘한반도’라는 자동차가 막다른 길목으로 들어서는 이때에 한국은 무엇을 책임지고 틀림이 없음을 증명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과제였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계획을 확인하고 증명해야 한다. 트럼프의 반전카드 연출의 혼란 속에서도 북한이 전 세계를 상대로 ‘최고존엄’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 비핵화를 틀림없이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해야 한다. 나아가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일반적 비핵화 조치의 틀로 북한이 들어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은 핵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경제 협력과 사회문화 교류 등은 한국과 분리해서 논의하는 구조를 선호했다.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 제3조 4항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남북의 공동 목표로 확인했다. 나아가 6·12 북·미 정상선언 제3조에서도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국을 비핵화 논의의 당사자로 명시하고, 이를 북·미 정상회담에서 재확인한 구조다.

 


새로운 출발점이 된 평양공동선언 


대한민국은 이러한 배경을 근거로 북한에 대해서도 당당히 비핵화의 조속한 이행과 실천을 촉구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훈시질’이나 ‘재판관질’이라고 비판해도 대한민국을 통하지 않고는 미국으로도, 세계로도 뻗어나갈 수 없으니 함께 손잡고 나가자고 진지하게 대화해야 했다. 다행히 통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북한은 ‘현재 핵’을 지금 당장 미국의 요구대로 검증하고 폐기할 순 없지만 적어도 미래 시제형으로 영구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A학점을 줄 수 없는 다소 불만족한 합의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북·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계획을 재확인하는 역할은 최대한 잘 수행한 합의였다. 


둘째, 이제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에 대한 의지 및 계획을 확인하고 증명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산이 있다고 한다면 북한은 지금 등산로 입구에서 주저하고 있는 형국이다. 산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로 입구에 ‘종전선언’ 현수막을 달고 등산을 시작하자고 한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 배낭에 든 핵무기부터 점검하고 일단 등산하면서 하나둘 폐기하고 산 중턱 약수터에서 ‘종전선언’ 현수막 펼치고 사진 찍고 배부르게 점심을 먹자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계속 주저한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평양까지 와서 등산을 시작하자고 설득하려 했는데 안 될 것 같으니 반짝 취소카드로 일단 판을 흔들고 한국에 문제를 잠시 맡겨둔 상황이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한 대한민국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라는 차를 막다른 길목에서 가까스로 새로운 길로 빼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산 중턱 약수터에 가면 미국이 내놓을 산중오찬 도시락 메뉴가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해 줘야 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외에도 IMF 의사결정권을 가진 미국이 북한의 신속한 국제 금융질서 편입과 개발비용을 약속하는 등의 산중오찬 메뉴를 구체화해야 한다. 


가파른 산을 타기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은 법이다. 이번 9월 평양 공동선언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리고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틀 동안 양 정상이 극소수의 배석자만 동행한 채 나눈 깊이 있는 대화 가운데 북·미 간에 주고받을 다양한 카드는 충분히 논의됐을 것이다. 이를 정리해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숨 가쁜 산행이겠지만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다녀온 문 대통령이다. 신발 끈 동여매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미션 임파서블: 북한 비핵화’ 시즌2의 촬영 로드맵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잡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백두산에는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 둘만 올랐지만, 비핵화라는 산 정상에는 트럼프 대통령까지 같이 올라 시즌2의 클라이맥스를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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