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이 힘들다고? 지방 편의점은 죽기 일보 직전”

조선업 악화와 한국GM 공장 철수 ‘후폭풍’…군산 및 거제 지역 상권 붕괴 위기

2018-09-14     전북 군산·경남 거제 = 박견혜 시사저널e. 기자
 모든 논의는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한 3만여 소상공인들이 8월29일 분노를 표출한 곳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광장이었다. 우리나라 1000만 인구가 사는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지나친 중앙 집중 탓에 주변부 형편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모양새다.  최저임금 인상과 점포 간 근접 출점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편의점 문제도 지방 소도시 편의점 가맹점주들의 곡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서울에 비해 인구도 매출도 적은 지방 도시 편의점주들은 현재 “상대적으로 수익은 적은데 인건비는 서울 편의점주들과 같은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특히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의 붕괴와 한국GM 등 자동차 공장이 떠난 제조업 중심 도시 전북 군산이나 경남 거제의 경우 점주들이 받는 타격에 비해 주목도는 낮은 상황이다.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에 따르면, 거제시의 실업률은 전체 155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은 7.0%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군산 실업률도 4.1%로 지난해(1.6%)보다 2.5%포인트나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과 점포 간 근접 출점 등으로 편의점이 최근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 시사저널 고성준

 

무너진 산업도시에서 말라가는 편의점

 기자는 9월4일 전북 군산을 찾았다. 군산은 한때 잘나가는 지역이었다. 군산시 서쪽 끝에 위치한 오식도동은 현대중공업·한국GM·세아베스틸·OCI 등 굵직한 기업들이 배와 자동차, 특수강 등을 생산하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었다. 그러나 군산시 경제의 25%를 떠받치고 있던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시황 악화로 지난해 7월 조선소 가동을 중지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던 공장 두 곳이 문을 닫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 군산을 떠났다. 조선소와 자동차공장 직원들이 살았던 원룸은 현재 보증금 없이 단기 사글세 형태로 세를 놓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사람들이 떠난 와중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있다. 이와 관련해 군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가맹점주 김아무개씨는 최근의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남고 싶어서 남아 있겠느냐”고 운을 뗐다. 그는 “지역 상권이 다 죽어서 매출이 점차 줄고 있다. 더 이상 떨어질 매출도 없는 상황에서 폐점하고 떠나고 싶어도 5년 계약 위약금이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매장은 한국GM 군산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위치한 오식도동에서 가장 가까운 시내에 위치해 있다. 김씨는 이곳에서 편의점을 8년간 운영했다. 조선소와 공장이 제대로 굴러갈 때는 주변 아파트 단지와 원룸촌에 입주민이 꽉 들어찬 덕에 매출도 잘 나왔다. 매출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2년 전. 군산조선소 도크 폐쇄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다. 김씨는 “2년 전부터 사람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막상 (조선소가) 문을 닫았을 때는 토박이들만 남았다”면서 “각오를 했던 터라 일 매출이 쭉쭉 떨어지는 걸 보고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최저임금까지 확 오르면서 정말 버티기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평일에 3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다. 그래도 하루 최소 10시간은 본인이 직접 일한다. 주말에는 하루 14시간도 일한다. “(알바) 애들이 하루 쉰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전체 매출에서 본사에 지급하는 로열티를 제외하고 남는 정산금의 65~70%가 인건비로 빠져나간다. 여기에 임차료와 자잘한 소모품 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김씨가 받아드는 돈은 자신이 평일과 주말 일한 만큼의 최저시급 인건비에도 못 미친다.  이처럼 점주들이 앓는 소리를 하자 편의점 본사에서는 전기요금 지원 등 가맹점주와의 상생책을 줄줄이 내놨다. 다만 김씨는 이 모든 대책이 실효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전기요금 지원이야 들어온다. 다만 다른 곳에서 지원이 끊겼다. 예전에 본사가 10개 팔리던 도시락을 15개씩 파는 대신, 나머지 5개가 안 팔릴 경우 본사에서 50% 폐기 지원을 해 준다고 했다. 현재는 이 지원율을 20%로 낮췄다”고 말했다.  거제의 상황도 비슷하다. 경남 거제시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있다. 이들 대형 조선소 역시 최근 몇 년간 수주 절벽에 시달린 탓에 구조조정으로 1만 명 이상이 시의 바깥으로 내몰렸다. 한때 조선업 종사자로 북적였던 옥포동 인근은 한산해진 지 오래다. 거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아무개씨가 “서울 편의점주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여기는 정말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 이유다. 
9월4일 찾은 군산시 오식도동 인근 상권 모습. 한국GM 공장 폐쇄와 현대중공업 도크 가동 중단으로 많은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편의점들은 없는 손님을 두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 시사저널e. 박견혜

 

“서울과 지방 최저임금 차등 적용해야”

 정씨는 자신을 ‘최저임금 못 챙겨주는 범법자’라고 소개했다. 정씨는 기자에게 “사실 지금 일하고 있는 알바생들에게 최저임금을 못 주고 있다. 최저임금이 오른 다음에 한 명을 내보내고 내가 14시간을 일한다”고 고백했다. 정씨는 “그분들도 여기 나가면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참고 있지만, 나중에 고발해 버리면 폭탄이다. 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 달 순이익이 150만원이 안 된다. 올해 1~3월은 정말 최악이어서 정산금이 300만~400만원 남았다. 여기에서 임차료 180만원에 인건비까지 주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그나마 정씨는 나은 상황이다. 정산금을 100만원 받은 점주도 주변에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정씨는 “거제는 아직도 편의점 밀집도가 높다. 과거 오픈만 하면 대박인 황금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밥그릇 싸움만 더 치열해졌다”면서 “폐업하면 위약금 문제가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해야 한다. 여기는 이제 대출도 어려운 곳이 됐다. 올해 7월에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계자금 대출이 조금 열렸는데 이마저도 처음 2년 동안 이자만 내다가 2년 후에는 원금을 갚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이 바라는 건 희망폐업,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이다. 지역의 경제 규모를 반영해 최저임금을 달리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난제다. 최저임금이 낮게 책정된 지역의 경우, 지금보다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넓은 나라들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도 주별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효과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별 효과가 없다”면서 “오히려 (최저임금을) 낮게 책정한 지역은 근로자 확보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