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리바트, 가구 원산지 ‘은폐 의혹’에 입주민 ‘분통’

같은 돈 주고 입주했는데…옆집과 원산지 다른 ‘빌트인 가구’

2018-09-14     박성의·안성모 기자
 같은 돈을 내고 같은 제품을 샀는데, 두 제품의 원산지가 다르다면 어떨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억대’를 호가하는 아파트에서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에 휩싸인 곳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인테리어 계열사인 현대리바트다. 현대리바트가 국내 건설사와 계약 후 아파트 단지에 주방가구 등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국산 자재와 베트남산 자재를 혼용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단지 안에서 어느 집은 국산 가구를, 어느 집은 베트남산(産) 가구를 사용하게 된 셈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는 ‘통상적인 관례’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입주민들은 “같은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원산지가 다른 가구를 쓰게 만드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까지 현대리바트 협력사에서 일했다는 A씨는 “목재의 품질 문제가 아닌 제조사와 소비자 간 신뢰의 문제”라며 “소비자가 원산지가 다른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불만을 제기할 수 있어, 건설현장에서는 제품의 원산지를 숨기기 위한 노력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리바트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차기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주력 사업이었던 백화점이 롯데와 신세계라는 ‘유통 공룡’ 사이에서 고전하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12년 현대리바트를 인수하며 가구·인테리어 시장을 돌파구로 점찍었다. 그런 현대리바트가 주로 영위하는 사업방식은 B2B(기업 간 거래)다. 아파트 특판 시장 등에 가구를 납품하며 돈을 버는 식이다. 지난해 현대리바트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B2B 비즈니스인 빌트인 가구(38.2%), 자재유통(19.6%), 사무용 가구(9.4%) 비중이 67.2%에 달했다. 현대리바트에 가장 중요한 고객은 건설사를 비롯한 대기업인 셈이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개장한 현대리바트 스타일숍 © 뉴스뱅크이미지

 

“고객 불만 두려워 원산지 감췄다”

 이런 가운데 현대리바트의 ‘대(對)고객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나왔다. 현대리바트가 건설사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알려야 할 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주장이 한 협력사 관계자로부터 제기된 것이다. 제보자 A씨는 현대리바트와 2016년 물품공급계약(턴키)을 체결한 후 가구원자재 공급 및 제작 등을 담당해 온 D사 대표를 지냈다. 그에 따르면, 현대리바트는 2016년부터 아파트 빌트인 가구 물량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를 소화하기 위해 베트남 현지법인 공장에서 생산한 자재를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국내 수요가 늘면 해외에서 공급을 끌어오는 것은 업계를 막론한 시장의 생리(生理学)다. 원산지만 밝힌다면 불법도 하자도 아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터져 나왔다. A씨에 따르면, 현대리바트 측은 소비자나 건설사가 관련 사실을 알게 될 경우 국산 자재를 쓴 가구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것을 우려해 현장에서 원산지를 숨기는 일들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A씨가 지목한 것은 현대리바트가 납품하는 주방가구(싱크대)의 몸통과 문짝이다. 그는 이 제품들이 베트남에서 수입돼 국내 공장으로 입고되면 ‘메이드 인 베트남’을 지우기 위한 편법들이 성행했다고 했다.  A씨는 “건설사에서 현장 실사를 나오면 태그(제품의 원산지 등 분류기준이 적힌 인식표)를 제거한다. 건설사에 따로 얘기하지도 않기에 사실상 (원산지를) 속이기 위한 행위”라며 “새집을 분양받은 소비자들은 무엇이든 최고의 자재를 사용하길 바랄 테니까, (원산지 차이를) 문제 삼을 수 있기에 이를 고의적으로 숨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리바트가 최근 주방가구 등을 납품한 경기도 용인 H아파트의 경우, 6700여 세대 중 2000세대 가까이에 베트남산 자재가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 세종시 인근 아파트 단지에도 베트남산 자재와 국산 자재가 섞여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현대백화점그룹 측도 인정했다. 다만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베트남에 있는 현대리바트 법인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기에 국산과 비교해 질(質)이 떨어지지 않고, 따라서 현장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건설·제조사도 “문제 없다”…입주민만 ‘불쾌’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베트남 공장은 당사 직영 해외법인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 납품분을 국내에서 납기일 내에 생산하기 어려울 경우, 베트남에서 일부 물량을 생산해 납품한다. 계약서상의 사양과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물량마저 매우 극소수로 전체 빌트인 물량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숨겨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은 건설사와 사전 협의 후에 납품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현대백화점그룹 측의 주장은 사실일까. 우선 베트남산과 국산 원자재의 질 차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긴 어렵다. 실제 현대백화점그룹 측 주장대로 현대리바트가 납품하는 모든 가구는 정부 기준인 E1등급보다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이 적은 E0등급 PB(파티클 보드) 등을 사용한다. 전문가들 역시 주방가구 수입 원자재의 품질 문제를 문제 삼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다만 제조사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에 대해선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내 집’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할 입주민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강석구 충남대 환경소재공학과 교수는 “국내와 해외 PB를 두고 품질을 논하기에는 변수가 많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국내 가구 시장 특성상 자재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소비자가 자신의 집에 설치되는 가구의 제조 이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소비자로서는 자신의 집에 쓰이는 원자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다 보니 원자재를 선택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H아파트에 입주했다는 김화숙씨(가명·43)도 “빌트인 가구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 이상 (원산지까지) 알 길은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며 “그러나 품질이 똑같더라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 사실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게 입주자로서는 불쾌한 일”이라고 전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주장과 달리 H아파트 시공사인 D건설 측은 “(베트남산 자재 사용에 관해) 사전 협의 등의 과정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어 “자동차 한 대를 사더라도 각 부품마다 원산지가 다 다를 텐데, 이것까지 일일이 다 소비자에게 알리지는 않지 않냐”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  한편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전혀 사실 무근이며,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 훼손 등으로 법정 대응을 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