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과 더불어 살아가기, 경기 수원시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2017-09-29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경기도 수원시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정조가 세운 조선시대의 성곽, ‘화성(華城)’이다.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1997년의 일로, 이보다 앞선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은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석굴암과 불국사 정도뿐이다.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조건은 하나다.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막연한 슬로건 같은 이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항목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합쳐 총 10가지다. 그밖에도 원래 모습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제도적으로 관리 정책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꽤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있다. 이 치열한 검증을 통과하면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명예와 함께 더 엄격하고 철저한 유산 보호의 의무가 생긴다.   수원 화성은 ‘건축기술이나 도시계획 분야에서의 중요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을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두 번째 기준과, ‘어떤 인류 문명에 대한 독보적인 증거’라는 세 번째 기준에 따라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 이전 시대까지와는 다르게 과학적으로 진일보된 장비와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수원천의 범람을 막고 군사적 방어의 기능을 갖춘 수원 화성의 북쪽 수문인 화홍문. 그 옆으로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는 방화수류정의 모습이 보인다. © 사진=김지나 제공
  수원 화성은 기본적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도 잘 남아있고, 파손된 일부분들은 엄격하게 고증해 복원됐다. 지금 우리가 보는 화성은 그 옛날 조선시대의 모습 거의 그대로라고 해도 좋은 수준이다. 정조의 신도시였던 화성의 가로들이 지금도 그 골격을 유지하고 있고, 화홍문을 통과하는 수원천은 화성이 처음 지어질 때부터 정조가 중요하게 고려했던 환경요소였다. 이 수원천은 90년대에 복개가 진행되기도 했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도중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미 복개가 된 구간도 2005년 철거가 결정됐다. 이후 2011년까지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은 가장 성공적인 생태하천의 재생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덕분에 수원천을 품고 세워진 신도시 화성의 모습이 더욱 완벽하게 되살아나게 된 것이었다. 현대도시의 풍경 속에 녹아 들어있는 옛 도시의 흔적은 익숙한 일상의 경관인 듯하면서도, 문득문득 시공을 초월하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화홍문을 통과해 화성 내로 흐르는 수원천 © 사진=김지나 제공
     

조선시대 모습 그대로 복원․유지, 시간이 멈춘 행궁동

  하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듯 했다. 수원 화성이 감싸고 있는 마을 ‘행궁동’은 그 이름에서부터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정조의 임시 거처였던 화성행궁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도시의 다른 지역들이 빠르게 발전해나가는 동안 문화재 보호라는 사명을 받은 행궁동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자부심보다는, 보상을 받아 이곳을 떠나겠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그러던 2003년의 어느 날, 마을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면서 행궁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살던 집을 손수 개조해 미술관을 만들고,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작품으로 채워 나갔다. 개인전시를 하기 위해선 서울까지 가야 했던 수원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도시에서 마음껏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고, 덩달아 수원의 문화예술자원도 한층 풍족해졌다. 자발적으로 일궈내고 있는 마을재생의 노력들은 지역 안팎의 관심을 받게 되어, 수원 화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사람 사는 공간에 보다 더 집중해보는 계기도 됐을테다.  
개인집을 개조한 행궁동 내의 예술전시공간. 국내외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해 공간을 꾸미고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 사진=김지나 제공
  2013년에는 아주 특이한 축제가 이 행궁동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생태교통 축제’였다. 2013년 9월 한달동안 ‘자동차 없이 살아보기’를 한 것이다. 행궁동 일원에서는 일체의 자동차 운행이 금지됐고, 그 대신 자전거나 친환경 탈거리들을 이용하도록 했다. ‘미래에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나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란 질문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어떤 주민들에게는 이런 축제가 아마 날벼락 같은 것이었으리라 짐작도 된다.      하지만 생태교통이라는 테마는 수원 화성이란 도시의 문화유산과 공존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이라 평가하고 싶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이 제한된다는 조건은 약점이나 굴레가 아니라, 옛 도시의 경관과 구조를 간직한 개성있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런 도시를 경험하기에는 빠른 속도의 자동차보다 구석구석을 탐색할 수 있는 생태교통이 적합하다. 문화유산을 지키느라 과거에 머물러 있기만 한 것이 아닌, 더욱 미래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도시로 기억될 것이고 말이다. 역사의 오래된 유산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미래가치를 실천하는 기폭제가 되는 셈이다.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는 그래서 오히려 더 빛나게 될 테다.   세계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생과 인내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문화유산의 보호관리와 더불어 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디자인해야 한다. 그 옛날에도 수원 화성은 단지 성곽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였다. ‘휴먼시티’를 표방하는 수원이 더욱 인간적인 도시로 거듭나길 바래본다.​   
2013년 생태교통축제가 열린 행궁동 일원의 생태교통마을. 지난 9월 16일 '생태교통 수원' 4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 사진=김지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