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표방한 고양시의 ‘스마트’한 도전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⑨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담은 ‘고양600년 전시관’과 ‘스마트’ 내세운 국제꽃박람회 눈길 끌어
4월말부터 경기도 고양시의 대표 축제로 꼽히는 국제꽃박람회가 일산호수공원에서 열린다. 지역축제가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1997년부터 시작된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고양시만의 개성 있는 문화관광자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매년 수십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관련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상당히 평가되고 있다. 그야말로 지역축제의 모범답안인 셈이다. 고양시의 국제꽃박람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일산호수공원’이라는 개최장소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산호수공원이 고양시를 대표하는 명소라는 데에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주말의 호수공원은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타는 사람,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으로 가득했다. 겨울철 휴업상태였던 ‘노래하는 분수대’도 4월부터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필자 역시 깨어나는 봄과 함께 다채로운 볼거리, 즐길거리로 가득할 호수공원을 상상하니, 괜스레 마음이 설랬다.
국제꽃박람회는 바로 이곳에서 개최된다. ‘박람회’라고 하면 어떤 산업을 주제로 해서, 그와 관련되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만 찾는 꽤 배타적인 성격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꽃박람회는 상대적으로 시민들이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다. 일상적인 여가공간인 일산호수공원에서 개최되면서 더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테다.
일산호수공원에는 ‘고양 600년 기념전시관’도 있다. 고양시는 ‘600’이라는 숫자를 유독 강조한다. 조선 태종 13년에 해당하는 1413년부터 ‘고양(高陽)’이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지난 2013년이 ‘고양’이라는 이름이 탄생한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사실 한 도시의 역사적 근원을 밝히는 일은 단지 지명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명이야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어떤 도시는 성장하면서 주변의 소도시들을 흡수하기도 한다. 때문에 1413년 태종이 명명했다는 ‘고양’과 지금의 고양시가 완전히 같은 지역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고양시가 도시의 역사적 뿌리를 추적하고 홍보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양 600년 기념전시관 입구에 놓여 있는 거대한 볍씨 모형이 일단 눈길을 끈다. 고양시가 쌀로 유명한 것도 아닌데 왜 볍씨가 전시관 입구를 지키고 있을까. ‘고양 가와지볍씨’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는 이 볍씨는, 5천 년 전 고양에서 재배되었다는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라고, 고양시는 말한다. 그밖에도 전시관은 행주산성, 경의선 철길 등 고양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로 나름 알차게 꾸며져 있다. 일본 위안부 문제나 독도 지키기 운동 같은 국가전체의 이슈에 대해서 고양시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홍보하는 내용도 있다.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시계획가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es)는, 도시를 물리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주류였던 시대에 도시의 역사와 전통에 주목했던 독특한 사람이었다. 특히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통해서 시민들이 도시에 대해 잘 알도록 교육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실제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아웃룩 타워(Outlook Tower)’라는 일종의 도시박물관을 만들기도 했다. 도시계획이란, 지금 이 순간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지금 무슨 계획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계획들이 이 도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일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민들이 사는 도시는,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정의로울 수 있다. 때문에 고양 600년 기념전시관은 관광객 끌기에만 바쁜 여타의 테마박물관보다 고양시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일산호수공원 일대는 고양시민들이 도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공론의 장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고양시는 지난해 ‘스마트시티(Smart City)’라는 새로운 비전을 세웠다. 스마트시티가 되고자 하는 도시들이 간간이 보이기는 하지만, 고양시는 작년 12월 ‘스마트시티지원센터’를 개소하면서 한걸음 더 스마트시티에 다가선 모양새다.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분야의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스마트시티지원센터는 일산동구 시내중심가에 위치한 한 빌딩에 둥지를 텄다.
필자가 찾은 스마트시티지원센터 주변에는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그 옆 공영주차장에서는 주차비를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었다. 현금 결제는 아예 안 된다. 스마트폰 어플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현금보다 신용카드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안내들이 평범하게 느껴지겠지만,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일종의 장벽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요즘 유행처럼 쓰이는 ‘스마트’란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스마트하다’라는 표현을 쓸 때는, 그 대상이 단지 신기한 최첨단 기술이어서가 아니다. 특별히 어려운 조작을 하지 않아도 매우 직관적인 방식으로 편리함이 도모될 때, 우리는 ‘스마트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마트한 도시란 무엇일까.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인터넷이 잘 터지면 그 도시는 스마트한 것일까.
스마트시티는 단지 첨단기술들로 치장한, 화려한 외형만을 자랑하는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도시가 특정한 자질과 도구를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누구든지 도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누리도록 배려하는 것이 진짜 스마트시티 아닐까. 이번 고양국제꽃박람회의 주제가 ‘꽃과 스마트시티 고양의 황홀한 향기’라는데, 과연 지역축제와 호수공원, 그리고 스마트기술이 어떤 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민들이 호수공원이나 꽃박람회의 미래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고 의견을 나누는 플랫폼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형식적인 토론회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스마트한’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