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家 후계자들-(4) 동국제강그룹] 위기 때마다 터진 ‘오너 리스크’에 발목 잡혀
최악의 상황 넘겼지만, ‘경영권 승계’와 ‘이미지 개선’ 등 난관 많아
한 우물 경영. 동국제강그룹을 잘 표현한 단어다. 창사 이래 60년이 넘도록 ‘철강’ 분야 외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한 영역에 집중해 온 만큼, 철강 분야에서만큼은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면서 사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경기침체와 업황불황이 겹치면서다. 이후 매출은 곤두박질쳤고, 영업이익과 단기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적자가 이어지면서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2014년에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까지 체결했다. 동국제강 내부에서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동국제강은 재무구조개선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악재가 터졌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개인비리가 검찰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다. ‘오너 리스크’는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회사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장세주 회장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해외 자재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대금을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회삿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 또 2013년 하반기까지 이 돈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에서 사용한 상습도박 혐의도 적용됐다. 이외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동국제강의 우량 계열사가 인수하도록 하면서 100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도 받았다. 이 일로 장 회장은 2015년 5월 구속기소됐고, 최근 대법원은 장 회장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그는 현재 영어(囹圄)의 몸이다.
장세주·선익 父子, 도덕성에 막대한 타격
이로 인해 동국제강그룹의 구조조정에도 제동이 걸렸다. 장세주 회장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동생인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이 나섰다. 2015년부터 동국제강의 단독대표에 올라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주력사업이었던 후판사업을 축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쟁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철강소재를 직접 제조해 사용하는 반면, 동국제강은 그동안 이를 외부에서 조달해 왔다. 그만큼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장 부회장은 2015년 8월 포항 2후판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대신 당진공장 1기의 가동률을 높여 제품단가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
향후 시장 변화에 맞춰 냉연이나 봉형강(棒形鋼) 제품을 위주로 사업구조도 개편했다. 건설과 가전제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이들 제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비핵심 자산 처분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5년 동국제강 사옥인 ‘페럼타워’와 포스코를 비롯한 상장주식을 처분해 5000억원대의 현금을 확보했다. 지난해에도 계열사인 국제종합기계와 DK유아이엘을 1816억원에 매각했다. 장 부회장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6월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조기 졸업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다.
장세주 회장의 구속으로 달라진 점은 또 있다. 본격적인 4세 경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장 회장의 장남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다. 1982년생인 그는 200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동국제강 전략경영실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법인과 일본법인 등 해외지사에 근무하며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2015년 10월, 한국 본사 발령을 받고 귀국했다. 부친 장 회장이 구속 기소된 지 5개월여 만의 일이다.
장 이사는 이듬해인 2016년 연말 인사에서 임원(이사)으로 승진하며, 신사업을 발굴하는 비전팀의 팀장을 맡게 됐다.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이전 직함은 과장이었다. 차장과 부장을 거치지 않고 단숨에 3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동국제강가(家)가 오랜 기간에 걸쳐 경영수업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장 부회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조카인 장 이사의 승진은 장 부회장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동국제강의 발목을 잡았던 ‘오너 리스크’의 악재가 또 터져 나왔다. 막 시동을 건 4세 경영이 첫걸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사 타이틀을 단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장 이사는 ‘술집 난동’ 사건의 주인공으로 언론에 등장했다. 장 이사는 지난해 12월26일 지인들과 이태원 일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종업원과 시비가 붙자, 물컵을 던져 고가의 양주와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 일은 재벌가 3·4세의 부도덕한 일탈로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경영 일선에 나서자마자 도덕성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부친인 장 회장이 비리로 구속돼 있는 상황이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그 직후 장 이사는 모든 직원들에게 사과 메일을 발송했다. 사과문을 홍보실에 전달해 언론에 배포하도록 하기도 했다. 사태 진화를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장 이사는 사과문을 통해 “저의 행동으로 인해 심적·물리적으로 피해를 입으신 당사자분들께 깊이 사과를 드린다”며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각고의 구조조정을 하고,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와 임직원 여러분께 큰 상실을 드린 점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논란은 한층 커졌다. 동국제강 측이 장 이사의 말을 인용, 술집 종업원과 시비가 생긴 이유에 대해 ‘케이크 값으로 30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 것이 문제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장 이사는 평소 차분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술집 측과는 원활하게 합의를 마쳤고, 경찰에서 재물손괴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최근 ‘기소유예’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위한 지분승계 자금 창구 부재
하지만 이번 불미스러운 일로 장선익 이사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졌다. ‘신사업 발굴’은 물론 ‘이미지 개선’이라는 두 개의 과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모두에 성공하더라도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다. 일단 경영권을 넘겨받는 문제가 남아 있다. 동국제강그룹 4세들은 현재 지분 승계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장 이사의 지분율은 0.4%이고, 동생 승익씨도 0.15%가 전부다. 장세욱 부회장의 자녀인 훈익·효진씨의 보유 지분도 각 0.07%에 불과하다.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이 각각 64세와 55세로 한창 경영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분 승계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다.
동국제강의 지배구조는 간단명료하다. 동국제강그룹은 총수 일가가 지주사인 동국제강을, 동국제강이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그룹의 지휘봉을 넘겨받기 위해선 동국제강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총수 일가의 동국제강 지분율은 25.17%다. 이 가운데 장세주 회장(13.84%)과 장세욱 부회장(9.33%)의 보유 주식 가치는 2월23일 현재 주가(1만2050원)를 기준으로 2663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4세들이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한때 동국제강그룹도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4세들의 ‘곳간’ 역할을 하는 계열사가 존재했다. 2006년에 설립된 해운물류업체인 DK에스앤드가 바로 그것이다. DK에스앤드는 당초 장세주 회장의 부인 남희정씨와 선익·승익 형제, 장세욱 부회장의 부인인 김남연씨와 자녀 훈익·효진씨 등 6명이 15%씩 총 90%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실상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인 셈이었다.
당시 동국제강그룹에는 동국통운(현 인터지스)과 국제통운 등 물류회사가 이미 있었다. 그러나 DK에스앤드 설립 직후부터 주요 계열사들의 해외운송 물량이 여기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실제,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08년 85.8%(총매출 575억4333만원-내부거래액 493억7509만원) △2009년 95.3%(472억8829만원-450억8076만원) △2010년 94.9%(664억6834만원-630억8733만원) △2011년 79.7%(1007억3860만원-803억4289만원) 등에 달했다.
그러나 DK에스앤드는 2012년 인터지스에 흡수합병됐다.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다. 이 밖에 동국제강그룹은 인터지스를 비롯해 DK유엔씨나 페럼인프라 등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법’ 규제 대상에 사명(社名)이 거론된 계열사들의 총수 일가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이로 인해 현재로선 동국제강가 4세들이 지분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창구가 없는 상태다. 만일 3세들이 4세들에게 주식을 증여할 경우, 보유 주식 가격의 절반에 가까운 증여세를 부담해야 한다. 1300억원 안팎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2015년 세법 개정으로 주식 현납은 불가능해졌다. 주식을 매각해 세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지분율이 낮아져 자칫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국제강의 최대주주가 지분 14.13%를 보유한 일본의 철강사인 NFE스틸이라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더욱 크다. 동국제강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이 회사는 1990년대부터 지분을 계속 늘려오고 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NFE스틸은 선대 회장 시절부터 오랜 기간 각종 경영 노하우를 공유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회사”라며 “이 회사는 경영권 승계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세 장세주-세욱 형제 우애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설사 지분 승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문제는 동국제강그룹이 철강 분야 외길 경영을 고집해 온 탓에 사업영역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동국제강가 4세 가운데 경영 일선에 나선 이는 장선익 이사가 유일하다. 장 이사의 동생인 승익씨와 장세욱 부회장의 자녀인 훈익·효진씨는 아직까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향후 이들이 경영에 나설 경우, ‘역할 분담’의 문제가 생긴다. 현재 철강에 집중된 사업구조상 계열분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3세인 장세주-장세욱 형제처럼 공동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동국제강그룹은 경영권 분쟁 청정지역이다. 형제간 골육상쟁이 빈번한 타 재벌가와 달리 ‘좋은 예’로 회자될 정도다. 실제,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의 형제간 우애는 남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장 부회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96년 뒤늦게 경영에 참여했다. 하지만 불과 4년 만인 2000년 부친 장상태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부친을 대신해 그의 경영수업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준 이는 형 장세주 회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4세들도 이런 ‘우애경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향후 그룹이 총수 일가 간 경영권 분쟁에 노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동국제강그룹 가계도
동국제강그룹의 모태는 고(故) 장경호 창업주가 1954년 설립한 동국제강이다. 한국전쟁 이후 철사와 못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마련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국철강과 한국강업, 연합철강, 국제종합기계, 국제통운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장경호 창업주는 부인 고 추명순 여사와 슬하에 6남5녀의 대가족을 뒀다. 1975년 장경호 창업주가 타계한 뒤에는 3남 고 장상태 회장이 그룹 경영을 물려받았다. 장남인 고 장상준씨가 1978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유엔대표부 대사 등을 지낸 차남 고 장상문씨는 회사 경영에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상태 회장이 2000년 타계한 뒤 그룹은 동국제강그룹과 동국산업그룹, 한국철강그룹 등으로 친족 간 계열 분리됐다. 동국산업그룹과 한국철강그룹은 장 회장의 동생들인 장상건·장상돈 회장 일가가 맡았다. 장상돈 회장은 지난 2월4일 별세했다. 모태인 동국제강그룹의 경영권은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에게 승계됐다.
장세주 회장은 1978년 동국제강에 입사해 20년이 넘는 경영수업 끝에 1999년 동국제강 사장으로 승진했고, 2001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그는 상명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씨와 결혼해 슬하에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와 승익씨 2남을 두고 있다.
장 회장의 동생인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 소령으로 예편, 1996년 경영에 참여했다. 장 부회장은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김남연씨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