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보수정당, 청색은 진보정당?
색(色)에 담긴 정치학…이미지 쇄신과 변화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모든 정당은 정당만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이 색깔을 한눈에 드러내보이는게 정당의 ‘상징색’이다. 상징색은 정당명, 로고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정당 정체성(party identity)’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다. 주요 정당들이 선거를 앞두고 정계개편을 꾀하거나 당의 위기에 봉착해 쇄신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정당명을 바꿈과 동시에 정당색과 로고를 재정의하는 건 이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정당들의 ‘색깔’은 어떨까.
한국 정치에 ‘색깔 정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며 당색을 과감히 붉은색으로 바꾼 것이 계기였다. 물론 16대 대선 때도 노무현 당시 후보 진영에서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앞세운 바가 있지만 색의 변화가 가져온 가장 극적인 표심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이 때였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의 보수진영이 당색으로 붉은 색을 사용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신한국당을 상징하던 색은 푸른색이었다. 2012년 2월 새누리당은 당의 상징색을 빨강색으로 바꿨는데, 이 변신은 당시 정계에선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됐었다. 당시 보수 유권자층 사이에서는 ‘진보=빨강’이라는 근거 없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분단 상황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과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로 부르는 고정관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좌파 성향의 정당이 빨강색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빨강색을 당색으로 정했던 새누리당의 선택은 상당한 모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단 평가를 받았다. 오랫동안 ‘금기’로 여기던 색을 수용함으로써 ‘유연함’을 어필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였다.
이때부터 보수진영의 상징색이 된 2월13일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한 새누리당의 상징색은 여전히 붉은색이다.
민주당은 반대의 경우다. 현재 민주당에서 가지쳐 나온 셈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청색, 녹색 계열의 당색을 가지고 있다. 청색 계열은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이 선택해온 색이었다. 유권자들은 푸른 재킷만 보면 무조건 한나라당,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한국당을 떠올렸다. 디자인적으로도 ‘파란색’ 계열은 ‘보수적임’을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다.
노랑과 녹색을 오가던 민주당, 민주통합당이 2013년 보수정당의 상징처럼 인식됐던 색을 선택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색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비춰본다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겉옷을 서로 바꿔입은 듯한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셈이었다. “과거 보수정당이 사용하던 색을 과감히 가져옴으로서 지지층을 확산하는 원동력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의당의 당색, 노란색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정치 디자인적으로 노란색은 자유주의와 인연이 깊다. 독일, 루마니아, 영국 등에서 자유당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인다. 하지만 한국정당에서 노란색은 ‘노동자’‘진보’‘故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상징성이 조금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당을 어필하기 위해 색을 철저히 이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당색을 철저히 배제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상대 당의 텃밭에서 뛰는 후보들의 경우다. 지난 총선때 새누리당을 출당해 무소속으로 선거를 뛴 일부 의원들의 경우에도 기존의 당색을 빼고 흰색을 내세운 바 있다. ‘색의 정치 디자인’ 전문가로 꼽히는 이민형 홍대 시각디자인과 박사는 “색은 정치적 스탠스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며 “색이 드러내는 정당 정체성은 생각보다 강렬한 시각효과를 동반한다”고 설명했다. 이민형 박사는 “유권자들이 이성적으로 색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강렬하고 명확한 색깔로 특정 정당에 대한 확실한 인지도를 부여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