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조 넘는 청년 일자리 예산 다 어디로 갔나

실효성 없는 집행으로 예산만 낭비…“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도 바꿔야”

2016-10-19     정지원 시사저널e. 기자

강다영씨(가명·26)는 대학원 석사졸업 후 6개월째 연구개발(R&D) 분야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정부 연구소부터 중소기업 연구소까지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졸업한 터라 연구실로 들어오는 채용정보도 얻기 어려워졌다. 다급한 마음에 정부 일자리사업과 서울시 일자리사업 등 일자리 정책도 알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씨는 “정부 일자리 정책은 차린 건 많지만 정작 먹을 건 없는 밥상 같다”며 “일자리사업 종류는 많았지만 정작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었다. 신뢰도 가지 않고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청년 일자리 예산은 2조1113억원이다. 이는 연봉 3000만원짜리 일자리를 약 7만370개나 만들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정부가 만든 청년 일자리사업은 실효성이 낮아 속 빈 강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 9월 청년 실업률은 9.4%까지 올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9월 기준으로는 최고치다.

 

문제는 내년도 일자리 정책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는 점이다. 2조원이 넘는 청년 일자리 예산이 내년에도 허투루 쓰일 우려가 크다. 1998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회예산정책처 자문위원, 서울시청 결산검사위원 등을 거쳐 19년째 예산감시활동을 해 온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은 내년도 정부 일자리 정책에 대해 “4차 산업혁명 등 산업구조가 재편 중인데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은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자리 정책은 여전히 한계기업들의 인건비를 지원해 주거나, 공공근로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 경제 분야 예산이 지나치게 높고 일자리·노동 등 복지 분야 예산은 너무 낮다”고 말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청년 일자리사업은 모두 57개다.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부처뿐만 아니라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도 개별적으로 사업을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9월2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2016 부산광역권 강소기업-청년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청년 구직자들로 행사장이 북적이고 있다. © 뉴스1

9월2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2016 부산광역권 강소기업-청년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청년 구직자들로 행사장이 북적이고 있다. © 뉴스1

 

취준생들이 일자리사업을 일일이 찾아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개별 사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창구도 없다. 정부가 일자리사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며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세웠지만, 구직자들은 여전히 통합적인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각 부처 간 물리적 거리를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취업정보는 분절적으로 전달되고, 예산도 별개로 편성돼 있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탓이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기존 고용센터(고용노동부)·여성새로일하기센터(여성가족부)·일자리센터(지자체)·복지지원팀(복지부·자치단체) 등 각 부처의 고용·복지 전달센터를 모아놓은 곳이다.

 

유사중복사업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스펙초월멘토스쿨운영·청년강소기업체험프로그램·중소기업근속장려금 등 프로그램은 기존 사업들과 중복돼 시행 1년 만에 통폐합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일자리 정책을 통합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윤수 연구위원은 “현재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노동시장 정책들이 통합관리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 일자리사업 67개 중 고용유지율이 집계된 사업은 22개(30%)에 불과하다. 고용유지율은 취업한 일자리의 질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지표인데도 각 부처에서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과가 좋지 않은 일자리사업에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불상사가 종종 발생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무분별한 예산 투입 확대에 앞서 성과관리 체계를 우선 마련하고 성과가 우수한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희숙 KDI 교수도 “성과관리가 되지 않는 탓에 사업성과가 낮은 사업이 퇴출될 가능성도 희박해진다”고 말했다.

 

 

사업비 깎일까봐 성과평가 제대로 안 해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성과평가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각 부처에서 내년도 예산이 삭감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면서 “일자리 성과 예산 보고서를 제출하더라도 수치에 치중돼 있고 목표도 허술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에 대한 성과평가와 사업 성과평가는 구분돼야 한다. 혈세를 투입하는 사업이므로 성과가 낮은 사업은 퇴출시키고 실효성 높은 사업 위주로 재편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정지원 제공

전문가들은 컨트롤타워나 성과평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를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인건비를 지원하는 간접적인 방식 대신 근로자 재교육에 직접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창수 소장은 “개인에게 충분한 재교육 시간과 비용을 주면서도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공공(公共)이 해야 할 당연한 투자”라면서 “이를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공공이 중장기적 투자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평생직장 개념이 깨졌기 때문에 더는 기업 중심 지원이 유효하지 않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자리 정책이 한계기업의 인건비를 지원하거나, 공공근로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예산정책처도 근로자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예산정책처는 김현미 더민주 의원실에 제공한 ‘재정지원 일자리사업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청년취업인턴제의 사업성과가 저조한 이유와 관련, “정부 지원금이 임금인상보다는 기업의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사업주 지원보다는 근로자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