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바리스타 폴 바셋의 커피론, “좋은 커피를 마신다는 것? 작은 사치다”
폴 바셋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커피전문점 이름으로 더 유명한 바리스타 폴 바셋(Paul Bassett․38) 말이다.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였던 그는 당시 역대 최연소 챔피언, 비(非)스칸디나비아 출신 최초의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얻었다.
“개인적으로 커피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뢰’다. 재료부터 매장 운영 원칙까지, 모든 것은 고객과의 신뢰 속에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사장 최정화)이 주최한 ‘문화소통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9월4일부터 사흘 간 한국을 찾은 그와 어렵게 시간을 맞췄다. 빡빡한 일정으로 이동 중 버스 안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지만 커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반갑다. 한국과 인연이 깊다. 당신의 고국에도 없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한국에 있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2003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이하 WBC)에서 우승한 이후 나는 커피와 관련한 많은 사업에 도전해왔다. 그러던 중 매일유업의 김정완 회장을 소개받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린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관계가 이어져 2009년 커피전문점 ‘폴 바셋’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폴 바셋’ 이전에도 커피전문점 사업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
일본에서 이미 ‘폴 바셋’이라는 이름으로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하지만 한국 정도로 큰 규모의 사업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폴 바셋’은 커피 사업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시작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매일유업의 자회사로 풀바셋 외식사업부문을 맡고 있는 엠즈씨드 쪽 관계자를 만났을 때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함께 사업파트너로 일해보기로 결심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잘한 결정이었다’는 확신으로 발전했다.
2009년 이후로 한국을 1년에 3~4차례 방문해오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특히 한국문화를 깊숙이, 그리고 다채롭게 체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카페 ‘폴 바셋’의 운영에 어느 정도로 관여하고 있는가.
제 이름을 딴 매장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재료를 선별하고 메뉴를 개발하고, 또 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서 창의적 디렉션을 주고자 한다. 이번에 캡슐형 신제품이 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원두와 블렌딩, 캡슐 방식을 결정하는 것에도 참여했다. 일종의 커피 R&D(연구개발)인 셈이다.
커피와의 첫 만남에 대해 얘기해보자. 커피란 세계에 빠진 건 언제부터였나.
‘앞으로 커피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21살 때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이전부터 호주 시드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이탈리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떠난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 당시 커피에 꽂히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는데, 여행 중 묵었던 한 수녀원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다 문득 ‘커피가 내 운명’이라고 직감했다.
커피가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에 서서 커피를 마실 때 그곳의 분위기, 커피와 함께하는 이탈리아 빵 코네토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커피 마시는 행위를 이루는 것이었다. 에스프레소 문화가 이탈리아인들 삶의 일부가 되는 그 모습이 매우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문화로서의 커피를 발견한 여행이었나보다.
마치 나라와 지역마다 특정한 음식문화가 있듯, 커피 역시 그 장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영하는 것이다. 그게 여행에서 깨달은 것이었다. 마치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또 ‘커피엔 단순한 음료 그 이상의 잠재력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탈리아에서 호주로 돌아와 내가 알고 있던 커피라는 세계를 확장하는 데 몰두했다. 생산지와 생산자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커피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해 연구했다.
호주로 돌아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뭐였나.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시드니에 있는 모든 커피 로스터를 찾아 전화하기 시작했다. 커피와 관련된 것은 뭐라도 좋으니 일자리를 얻고 싶었다. 커피 산업에 어떻게든 발을 담그자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처음 들어간 회사는 대형 다국적 회사였다. 이 회사는 2주 만에 그만뒀다. 뭔가 내가 바라던 게 아니었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작은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몇 년간 일하며 커피와 커피 산업에 대해 배웠다. WBC 챔피언십 준비도 이곳에서 했다.
매우 열정적으로 커피산업에 뛰어들었다. 원래 이런 식품산업에 관심이 있었나.
부모님께서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다. 아버지는 정식으로 훈련받은 셰프였다. 프랑스 요리가 주전공이었던 아버지는 완벽주의자였다. 매우 창의적이었고 요리 솜씨도 뛰어났다. 어머니는 식당 경영자였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환경이 이렇다. 아무래도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커피에 빠지기 이전 내 꿈은 아버지와 같은 셰프였다. 또 한동안은 와인 사업자가 되려고 했다. 요리에 관심이 많다. 아직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먹는 것도 좋아한다. 한국음식도 잘 먹는다.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뭔가.
주로 뜨거운 국물 요리를 좋아한다. 갈비탕, 삼계탕을 가장 좋아한다. 몸에 좋은 여름 음식이라고 들었다.
요리를 곧잘 한다고 했다. 직접 커피를 만들기도 하나.
많이 하진 않는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사업 분야다. 집에서 한두 잔 만들거나 가끔 이벤트성으로 하지만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팔진 않는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나.
원두는 에티오피아산(産)을 좋아한다. 커피의 있는 그대로의 향을 즐기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나 룽고(에스프레소의 두 배 정도로 추출량을 늘려 보다 씁쓸한 맛을 내는 커피)로 마신다.
‘한국인들은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국인들의 커피소비에 대해 어떻게 보나.
한국인들의 커피문화는 매우 빠르게 발전했다. 한국에서 커피 만드는 행사를 할 때 만난 한국인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배우고자 한다.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믹스커피는 마셔 봤는지. 인스턴트 커피도 마시나.
인스턴트 커피는 끔찍하다(disgusting). 호주에서도 여전히 80%의 커피가 인스턴트로 소비된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는 싸고 편하다.
캡슐 커피도 편리하고 금방 만들어 마실 수 있다. 물론 값이 싸진 않다. 하지만 가격은 품질을 반영한다. 싼 커피를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폴 바셋’의 커피는 ‘비싸다’라는 인식이 있다. 가격대가 결코 만만하진 않다.
현실적으로 ‘폴 바셋’에서 사용하는 재료가 더 비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나는 좋은 커피는 좋은 재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매장에서는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커피의 양도 다른 업체에 비해 많다. 따라서 커피의 향 자체가 다르다고 자부한다.
더 좋은 재료를 고르기 위해 직접 산지에도 가나.
종종 그렇게 하지만 주로 공급 담당 파트너와 협력한다.
그리고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추가하고 싶다. 좋은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작은 사치(small luxury)다. 커피를 마셔본다면 품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커피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계획 중인 사업이 있나.
지금까지 해 온 ‘폴 바셋’ 신제품 개발을 이어갈 것이다. 한국과 사업을 해가면서 점차 유대감이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에 대한 나의 이해를 발전시키고 증진시켜나갈 계획이다.
좀 더 개인적인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당분간 스노보드(snowboard)에 집중할 계획이다. 다소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스노보딩을 좋아한다. 특히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까지 가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헬리보딩을 좋아한다. 원래 스포츠를 좋아해 어릴 땐 축구 골키퍼가 되려고 했다. 그게 커피 외에 내가 열정을 쏟는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