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가 촉발한 美·日 ‘야구전쟁’
역대 최다안타 기록 경신 두고 양국 야구계의 엇갈린 반응
6월15일(현지 시각)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의 스즈키 이치로(鈴木一·42)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9회 5번째 타석에서 우익수 방향 2루타를 쳐냈다. 이로써 그는 미·일 통산 4257개의 안타를 기록, 피트 로즈가 갖고 있던 역대 최다안타(4256개) 기록을 넘어섰다. 일본 각지에서는 호외가 발행됐고, 아베 총리도 이치로가 메이저 신기록인 4257안타에 도달한 것을 칭찬하면서 “대단한 기록이다. 이치로 선수가 다시 금자탑을 세웠다. 자랑스럽다”고 다소 들뜬 듯 말했다.
이치로의 대기록 수립으로 일본인들은 큰 기쁨을 얻었고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일본프로야구(NPB)에서 1278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2979개, 합쳐서 4257개의 안타를 쳐내며 신기록을 세웠으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업이라면 위업이다. 그런데 이치로가 통산 4257개 안타를 때려내는 날, 미국 언론은 좀 인색한 반응을 내놓았다. 일본에서 세운 이치로의 안타 개수가 역대 최다안타 기록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메이저리그에서의 기록이어야만 명실상부한 ‘진짜 기록’이 될 것이라는 뉘앙스가 묻어나는 보도였다. 일본 측은 이치로의 ‘위업’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에, 미국 측의 평가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美 “MLB 단독 기록이어야 인정” 평가절하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에 있어 논쟁의 포인트는 우선 투수력에 관한 것이다. 미국 측 야구계 인사들은 “일본 투수들은 파워나 구속에 있어 메이저리그 투수들에 많이 뒤지기 때문에 타자들이 치기 수월하다”고 말하면서, ‘약한 투수’들을 상대로 한 이치로의 일본 기록을 평가절하하려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일본 투수들이 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하고 있고 제구력에 있어서는 세계 톱클래스이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측은 또 그라운드 사정을 이유로 이치로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구장은 천연잔디가 많고, 잔디가 일정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어 야수들이 잘 미끄러진다. 흙으로 돼 있는 부분도 딱딱하고 거칠어서 불규칙 바운드가 많다. 이치로는 ‘컨택(contact)’하며 땅볼을 많이 쳐내고 있는데, 미국의 그라운드 사정상 별거 아닌 타구가 안타가 되는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일본 측 주장은 다르다. 이치로가 안타를 양산하는 것은 이치로의 뛰어난 적응력과 대응력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치로는 일본리그 시절에 ‘시계추 타법’을 구사하며 장타를 쳐내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에 이적하고 나서는 타격 폼을 수정했다. 결국 이치로의 신기록 논란은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계의 ‘자존심 싸움’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치로가 미·일 야구논쟁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 됐다.
이치로는 아이치(愛知)현에 있는 고교를 졸업하고 1991년 가을 드래프트 4위로 고베(神戶)를 본거지로 하는 일본 퍼시픽리그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들어갔다. 그는 이때 오릭스의 명장 오기 아키라(仰木彬·1935~2005) 감독의 눈에 띄어 철저한 조련을 받는다. 훈련을 거듭한 이치로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리그 수위타자를 독점하는데, 이는 한국계 강타자 장훈과 타이 기록이다. 이윽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이치로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데뷔 첫해인 2001년 타율(0.350)과 도루(56개), 그리고 최다안타(242개) 3부문을 석권하며 미국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동양에서 온 가늘고 왜소한 ‘황색인’의 단타 위주의 땅볼야구와 ‘발야구’에 당한 것이다.
이치로는 2004년에도 타율 1위(0.372)를 차지했는데, 이때는 시즌 262안타도 때려내며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수립했다. 이전까지의 기록은 조지 시슬러(1893~1973)가 가지고 있던 257개였다. 이때 한 언론에서 “이치로는 이제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가 보유하고 있는 56경기 연속안타 기록과, 최후의 4할 타자가 된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을 넘어서는 것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이치로의 ‘위업’은 또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최다안타를 7회(2001·2004· 2006~10년)나 기록했고,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연속으로 200안타 이상을 쳐냈다. 그리고 2016년 6월15일, 드디어 4257개째의 안타를 때려냈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공헌한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이치로가 262개의 시즌 최다안타를 때릴 때, 거의 묻혀 있던 조지 시슬러(시즌 257개 안타)의 존재가 부활했다. 이치로가 10년 연속 200안타 이상을 쳐냈을 때, 8년 연속(1894~1901) 200안타 이상을 쳐낸 윌리 킬러(1872~1923)의 야구인생도 야구팬들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이치로의 기록, ‘추억의 명선수’ 끄집어내
한편 이치로는 6월23일 현재 17개의 안타를 더 치면 메이저리그 커리어 3000안타를 달성하게 된다. 그때는 또 메이저리그에서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를 친 캡 앤손(1852~1922)이 팬들에게 향수를 불러다 줄 것 같다. 요컨대 이치로는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묻혀 있는 역사상의 명선수들을 부활시키는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 야구’의 개척자이자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대표적 지장으로 꼽히는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감독은 기자단 앞에서 이치로의 활약을 두고 “천재가 노력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단 말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치로의 성실함과 노력·끈기·정신력·각오 등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제는 이치로에 천재라는 수식어도 따라붙게 됐다.
그러나 프로에 입단할 때 아이치현의 연고팀이었던 ‘주니치(中日) 드래건스’로부터 외면당한 일은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체격은 왜소했고, 말없이 입은 꽉 다문 채였으며, 대인관계가 어떤지도 파악이 안 되고, 더구나 하라 다쓰노리(原辰德) 전 거인 감독이나 다카하시 요시노부(高橋由伸) 거인 감독처럼 여심(女心)을 끄는 용모나 풍채도 전혀 지니고 있지 못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오기 아키라 감독을 만난 게 행운이었고, 성공의 가장 큰 열쇠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