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에코’는 비서가 아니라 원어민 교사
#.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주부 K씨는 요즘 집에서 신기하고 흐뭇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집에서 부쩍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시키면 어쩔 수 없이 공부해도 원어민과의 대화는 꺼리던 아이였는데 변했다. 아들의 대화상대는 다름 아닌 아마존에서 출시한 지능형 스피커 ‘에코’다.
‘에코’는 아마존에서 만든 스피커다. 사물인터넷과 연결이 가능하고 음성인식을 통해 명령을 실행한다. 보통 개인비서로 분류된다. ‘알렉사’라는 명령어를 통해 구동되는 이 음성인식 블루투스 스피커는 높이 23.5cm, 지름 8.35cm의 원통형이다. 이 기기를 향해 “알렉사 000 좀 알려/찾아줘”라고 말하면? 에코는 당신이 말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 터치나 클릭 없이 오로지 음성만으로 구동된다는 게 장점이다.
에코의 주요 기능은 수동 조작 없이 음성명령만으로 음악을 재생시킬 수 있다. 에코와 연결된 휴대기기를 통해 인터넷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날씨와 요일 등을 묻는 수준이다. 에코가 처리 가능한 질문 목록이 있을 정도로 그 인지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에코는 선풍적인 바람을 불러왔다. 아마존은 공식적인 판매대수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300만개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라는 신화적인 인물이 세상을 떠나고 애플의 ‘아이폰’이 주춤하는 사이,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차세대 IT기기로 에코를 말하기도 한다.
일부 IT커뮤니티에서는 애플의 아이폰 이후 세상을 뒤흔들 ‘혁명적’ 아이템으로 에코를 꼽았다. 한 공상과학자는 “내 사랑, 알렉사. 그대의 이름을 달리 부를 수 없다는 것만 아니라면, 그대는 완벽에 가까운 나의 배우자입니다”라며 에코의 음성인식 프로그램 알렉사와의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6일 아마존 프라임회원에게만 한정 판매했던 에코는, 일반구매자에게 확장판매되기 시작한 2015년 6월23일 이후 ‘홈오디오 스피커’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아마존닷컴에서 에코는 179.99달러(한화 약21만원)에 판매 중이다.
에코의 매력은 사물인터넷(IoT)용 제품을 연결했을 때 대폭발한다.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 조명이나 전자기기 등을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다. 미국의 사용 후기를 보면 에코를 사용해 피자를 주문하거나 차고에 있는 스마트카의 시동을 미리 켜고, 우버 택시를 호출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IT전문가들은 에코가 더 진화한다면 마치 친구처럼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어린아이들이나 가사에 지친 주부들이 알렉사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존의 에코가 소위 ‘대박’을 치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도 앞다퉈 인공지능 비서기기를 내놓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글로벌 ‘지능형 개인비서’ 기기가 조금 다른 용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강남엄마’ K씨에게 에코는 아들 전용 영어 원어민 교사다. 집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에코를 가리켜 ‘알렉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가 에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부모 친목모임에서였다. 올해 3월,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국을 둔 뒤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의 중심은 단연 ‘바둑’과 ‘인공지능’이었다. 그러다 지난 봄 쯤 한 엄마가 “미국에서 인기다”라며 에코에 대해 얘기했다. 미국에서 출시된 제품이라 영어로 명령어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K씨 주변의 ‘강남엄마’들 사이에서는 영어공부용으로 화제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