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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생물학적 요인 찾는 연구 줄이어
인간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범행의 목적과 동기가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서양에서는 망령이 들었거나 보름달이 나타나면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높아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이러한 미신적 인식에 대해 현대 과학은 하나씩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전학이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02년 영국의 킹스칼리지 연구진은 소년 4백42명을 대상으로 20년간 관찰한 결과, ‘모노아민 산화효소(MAO-A)’의 생산을 저해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으면, 성인이 되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노아민 산화효소는 뇌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의 작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뇌의 크기·코티솔 분비량 보면 범죄가 보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과도하게 공격적이거나 분노를 잘 느끼는 사람은 특정 유전자(PET-1)가 결핍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PET-1’이 제거된 쥐들은 외부 침입자에 대해 더 빨리, 더 자주 공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쥐들의 행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일부 사람들의 폭력적 성향과 매우 흡사하며, PET-1이라는 유전자는 인간의 게놈에서도 발견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PET-1이 인간에서도 동일한 작용을 하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폭력적 범죄 행위를 뇌 기능 이상에서 찾으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살인·과실 치사·폭행·구타·강도·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 2백명을 대상으로 뇌파 검사(EEG;뇌의 전기적 신호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 비해 비정상적 전기 신호가 나타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뇌의 왼쪽 관자 부위가 손상된 사람들이 현저하게 높은 폭력성을 띠는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적 성향이 뇌의 특정 부위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뇌의 크기가 폭력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휘두른 경력이나 성격 장애가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뇌 단층 촬영을 한 결과, 이들은 이마 앞부분에 해당하는 전두엽의 신경세포가 현저히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두엽 부위는 어린이들이 자책감을 느끼고, 양심과 사회적 책임감을 배우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연구진은 “전두엽 부위의 크기는 어린 시절 가난이나 성적 학대만큼이나 미래의 성격을 예측하는 데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이 연구 결과는 두뇌가 성장할 시기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러한 검사를 실시한다면,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조기에 발견해 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대 과학은 인간의 침 한 방울만 가지고도 미래의 문제아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탄생시켰다. 미국 시카고 대학 연구진은 ‘파괴적 행동 장애’로 정신과를 찾은 소년 38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침을 2년마다 수거해 분석했다. 동시에 그들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에 대한 평가도 했다. 이들의 지능지수(IQ), 사회경제적 수준, 인종적 특성 등은 유사했다. 분석 결과 연구 기간에 ‘코티솔’ 수준이 지속적으로 가장 낮았던 12명은 행동 장애 정도도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또 학교에서 급우들로부터 가장 비열하고 상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11명은 열 살이 되기 전에 폭력적 성향이 발현된 것으로 드러났다. 코티솔의 체내 역할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간이 위협적인 상황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분비된다. 코티솔 분비가 적은 사람은 자신이 휘두른 폭력 행위에 대해 보복의 두려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죄 발생의 원인을 신체적 질병과 연관해 찾아내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 오울루 대학 연구진은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1만9백34명을 대상으로 16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교도소 수감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에 비해 호흡기질환·신경계질환·결핵·간질·뇌진탕·근육골격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성폭력, 배우자로부터 학대 등을 당한 적이 있는 여성들은 부인과질환을 많이 앓고 있고,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 중에는 성병이나 에이즈·간염 등과 같은 혈액 매개 질환에 걸린 비율이 높다는 보고도 있었다. 범죄를 주로 정신과질환에 집중하여 분석한 과거 연구와 비교할 때, 더욱 다양한 질병이 범죄 행위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 행위를 유전론·질병론과 같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에 대해 다양한 반론이 나오고 있다. ‘만약 어떤 범죄가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 없는 생물학적 원인 때문에 발생했다면,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가’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동일한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전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죄를 짓는다는 논리를 앞세워 ‘생물학적 요인은 범죄를 일으키는 수많은 요소 중의 하나에 불과하므로, 절대로 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또한 인간에게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다만 질병 발생에서도 민감한 사람이 있듯이, 범죄 발생에서도 생물학적으로 위험군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재판 과정에서 이에 대한 고려는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범죄 발생에 대한 생물학적, 특히 유전적 접근의 가장 큰 문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유전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잠재적인 문제아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 정보 확산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놓아둔 채 범죄를 의약품 개발과 같은 과학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고, 정부가 범죄 발생의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이치로 교수(사회의학과)는 “범죄는 그 사회의 거울이다. 경찰서를 하나 더 짓는 것보다,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한다. 과학의 발전이 범죄 발생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 분명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고,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