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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당·원내 정당으로 탈바꿈하려는 한나라당의 중심에 박세일 당선자가 있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영입한 교수 그룹의 좌장인 그는 박근혜 체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박대표와도 자주 만나 자문에 응하는 브레인이다.

그는 ‘한나라당은 정치적·정신적으로 재창당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여야가 비전 경쟁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그가 꿈꾸는 정치는 이상적이었다. 5월14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앞 정원에서 박세일 당선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노대통령이 통합과 합리의 정치를 펴지 않는다면 국가 실패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탄핵이 기각되었다.
국민들에게 불안과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적극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탄핵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곤란하다. 탄핵은 헌법적 절차다. 다만 탄핵하기 전 국민들의 의견을 더 수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탄핵이 의회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쿠데타라는 것은 물리력을 통해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는 것인데, 탄핵은 그렇지 않다. 헌법재판소도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결하지 않았나. 헌재 결정 이후에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반헌법적인 발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왔다.
대통령의 권능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나 대통령이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여야를 넘나들며 설득하면 국정 운영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에도 이런 분위기가 성숙해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표가 합리적이고 개혁적이지 않은가.

지금의 시대 정신은 무엇인가?
변화와 개혁이다. 기본으로 회귀하고 원칙과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 시대 정신을 한나라당에 대입하면?
과거를 청산하고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17대 총선을 통해 인적 구조가 많이 바뀌면서 과거 청산은 상당 부분 진행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에게 한나라당이 중시하는 가치와 원칙과 이념이 무엇인지, 왜 한나라당을 사랑하고 지지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정당은 가치와 이념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시장 경제·공동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다. 방법은 실용주의·개혁주의다. 개혁적 보수·중도 보수·21세기 신보수라고 부를 수 있다.

열린우리당도 실용·개혁 주의를 말한다.
우리는 목적을 제시하고 그 수단으로 실용·개혁 주의를 말한다. 열린우리당도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어떤가?
정통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본다. 정통 진보, 19세기나 20세기 진보다. 그들이 제기하는 빈곤·실업·차별 문제는 귀 기울여야 할 것들이 많지만, 좌파적으로 접근하면 해결이 안된다. 보수적·시장적 방법이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한나라당의 변화 주도 세력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변화는 대세다. 물론 빠른 속도로 짧은 시간에 변화를 일궈낼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역사는 이미 한 단계 앞으로 가고 있다. 3선 강경 그룹, 영남 그룹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보수 세력이 분화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있다.
방향이 다르면 분열되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의 변화 속도가 너무 늦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를 포함해 절대 다수 당선자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고, 추진하고 있다.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중심 세력은 누구인가?
초선들이다. 시대의 흐름이다.

정치 개혁의 요체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과거의 부패는 상당 부분 정리되었다.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시대가 그만큼 빨리 변했다. 이제는 여야가 비전 경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개혁이다. 한국 정치는 소수 야심가들의 권력 투쟁 때문에 민생이나 정책, 토론이 정치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정치를 권력 투쟁에서 국가 경영으로 바꾸고, 소수 야심가 중심에서 다수의 정책 전문가 중심으로 바꿔 국가 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여야가 협력·견제·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정치 발전이고 개혁이다.

정책 정당으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텐데.
한나라당만 노력해서는 정책을 중시하는 풍토가 형성될 수 없다. 여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기본 틀을 여야가 정책 경쟁을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노대통령이 정책보다 정치 이슈에 치중하면 여야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쉽다. 불필요한 정쟁이 벌어지면 정책 전문가들보다 싸움꾼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한국 정당은 이념적으로 어떻게 나뉠 것으로 보는가?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로 나뉠 것이다.

보수의 위기라는 시각에 동의하는가?
지난 총선에서 보수는 참패했다. 대위기를 맞았다. 한국 보수는 정치적 보수만 있었지 철학적 보수가 없었다. 기득권을 누리고 안주하는 보수는 있었지만, 자유·인권·창의·시장경제 가치를 소중히 하며 행동하는 보수는 많지 않았다. 보수는 폭탄에 맞았고 폐허가 되었다. 입당해서 보니 거대한 보수는 허구였고, 그 폐허 위에 박근혜라는 여자만 돌아다니더라. 보수의 참담한 현실을 보았다.

그 폐허에서 움트는 싹의 중심은 뭔가?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보수 세력의 철학적 원칙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영남당이라는 시각이 있다.
지역 구도는 깨지고 있다. 영남 출신 국회의원 숫자는 한나라당이 압도적이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열린우리당 표도 많이 나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상대적으로 호남의 변화 속도는 느리다. 한나라당의 책임이 크다. 진심으로, 정책과 가치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다가가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장단점을 평가한다면?
지난 1년은 분열과 감성의 정치였다. 이제는 통합과 합리의 정치로 가야 한다. 새로 시작하는 노대통령이 진심으로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대로 가면 국가 실패로 갈 수 있다. 투쟁할 시간이 없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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