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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정은 개혁 입법인데도 그 취지나 내용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단기적으로(근로자들에게)조금 불리해 보이는 부분이 지나치게 확대된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국가 경쟁력 강화나 제

문민 황태자, 리틀 YS, 보이지 않는 실세.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누가 뭐라 해도 현철씨는 김대통령의 집권 과정과 개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도운 현 정권의 막후 실세다.덕분에 그는 온갖 소문과 야권의 비난에 시달렸고, 아직도 그를 둘러싼 두터운 베일은 벗겨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유엔한국청년협회 회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처음으로 가진 현철씨는 오는 2월15일 고려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난 뒤, 외국의 명문 대학 강단에 설 예정이다.‘자연인 김현철’로서 대외 활동 폭을 넓혀 가는 셈이다.

현철씨는 파업 정국으로 시점이 미묘한 데다 공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외모부터 아버지를 빼닮은 그는 대화 도중 기자의 손을 잡는 등 친화력을 보이면서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그가 공식 인터뷰를 가진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연말부터 신년 정국까지 온통 노동법 파동으로 뒤숭숭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최근 1년은 논문 쓰는 데 매달려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말 연시는 고3 수험생과 다름 없는 생활이었지요. 거의 매주 가던 등산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줄였고, 가끔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농구를 하는 정도입니다.(측근에 따르면, 현철씨의 논문은 언론이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 데다 주제 자체가 우리 나라에서는 생소한 ‘조직 사회화 전략’이라는 선진 분야여서 최종 통과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어느 대학에서 강의할 생각입니까?

현재 일본 와세다 대학과 게이오 대학, 중국 북경 대학으로부터 객원 연구원으로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2월 말에나 결정할 생각입니다. 금년에는 아무래도 강의보다는 연구에 주력할 생각입니다.(와세다 대학 부설 아세아태평양연구소는 김회장에게 강연을 요청하고 있다.)

얼마 전 정가에는 김기춘 의원이 안기부장으로 진출하고 김회장이 그의 지역구(경남 거제)를 물려받아 보궐 선거에 출마하리라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회장을 맡은 유엔한국청년협회를 정계 진입을 위한 발판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는데….

근거 없는 헛소문입니다. 그리고 유엔청년협회는 정치와 전혀 무관합니다. 저는 지난 10여 년간 활동이 다소 미진했던 유엔청년협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사진을 새로 구성하고 젊은 프론티어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유럽을 방문해 발트하임, 그라프 요크 같은 세계적인 유엔협회 지도자들과 만나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현 정권의 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번에 전격 처리된 개정 노동법만 해도 개혁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처지는 아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법 개정은 개혁 입법인데도 그 취지나 내용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3자 개입이 가능하고, 근로자의 정치 활동이 보장돼 있지 않습니까. 단기적으로 (근로자들에게) 조금 불리해 보이는 부분이 지나치게 확대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 경쟁력 강화나 제2의 경제 도약을 위해서도 노동법의 큰 틀을 바꾸는 작업은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아닌가요?

임기 초에 90% 넘게 지지를 받았던 문민 정부가 요즘 들어서는‘정권 퇴진’구호까지 듣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개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또 개혁이 잘 되기를 누구보다 바랐던 아들로서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문민 정부는 역대 정권이 하지 못했던 많은 개혁 작업을 성공리에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민 정부의 개혁이라는 거대한 틀이 임기 5년 동안에 다 짜이기란 불가능한 일이지요. 개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고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힘들어하고 고뇌할 때 아들로서 어떤 도움을 드렸습니까?

국정 하나하나가 국가 이익과 직결되는 일들인데 제가 무슨 수로 도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마음의 격려를 보내드릴 뿐이지요. 그것도 아버지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청와대 생활이 참 외롭고 고독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도 항간에는 김회장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나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정치적 조언 정도는 하지 않나요?

저는 아버지께 정치적인 조언을 해드릴 처지도, 그런 상대도 아닙니다. 남들은 정치 얘기를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다만 아버지께서 물으실 때 가끔 시중 여론을 여과 없이 전해드리기는 합니다. 이 때도 제 개인적인 판단은 가능한 한 배제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너 야당이구나!’하시면서도 제 말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본인이 부인해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김회장을 여권의 막후 실세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의 시선을 피해 지내온 익명의 세월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그간의 세월을 익명의 세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감추려고 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온갖 유언비어와 왜곡 보도, 모함에 시달릴 때마다 당당히 나서서 떳떳하게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야당을 하셨을 때나 대통령이 되신 이후에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신앙(기독교)과 아버지의 격려, 가족의 사랑이 없었다면, 험한 고비를 넘기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너라면 이겨낼 수 있어!’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저에게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서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대통령이 취임 이후 특별히 기뻐한 때와 가장 힘들어한 때가 언제라고 기억합니까?

가족과 옛날 얘기를 할 때나 제 아이들이 재롱을 피울 때 가장 즐거워하십니다.‘인덕이(11)하고 인규(9)는 싸움질 안하냐’고 곧잘 물어보고, 막내딸 인영이(3)에게는 노래를 시키시곤 합니다. 지친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드리려고 저도 가끔 어리광을 피울 때가 있습니다. 참,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유치했을 때 유난히 기뻐하시더군요. 사실 아버지께서는 야당 시절 목숨을 건 투쟁을 하면서도 항상 마음만은 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에 취임하신 후에는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주변에 이웃도 없고….

21세기를 앞두고 다음 정권이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 소박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빠른 시일 안에 20세기적 과제를 해결하고 21세기로 힘차게 도약해야 합니다. 통일의 기반도 튼튼히 다져야 하겠지요. 전근대적이고 구태의연한 관행과 소모적인 사회 갈등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위기의 시대인 동시에 기회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문민 정부가 추진해온 변화와 개혁을 통해 그 큰 방향은 잡혔다고 봅니다. 저도 저의 영역에서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97년은 대권의 해입니다. 현 정권의 바통을 이을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통령이 후계 구도를 설정해 가는 과정에서 김회장이 어떤 역할을 하리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질문 자체가 저와 무관한 만큼 제가 답변할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현철씨는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 자기의 말이 아버지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외부에 어떻게 비칠까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정치성을 띤 대목에서는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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