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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한두 명이 아니라 대다수 대법관이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추천되어야 할 것이다.”
기우에 지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의 여성 대법관 추천이 이른바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토큰주의(tokenism)로 끝나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토큰주의란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변화 없이 한두 명, 혹은 많아야 두서너 명을 어떤 자리에 임명하고는 바로 그 몇 개의 토큰을 가지고 생색만 내고 마는 것을 말한다.
여성해방운동이나 인권운동의 일반적 대의말고도 여기서 우리가 토큰주의를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최근 정치권의 쓸모없는 논쟁 때문이기도 하다. 이 논쟁은 보수 야당 및 일부 언론이 일련의 개혁에 대해 벌이는 딴죽 걸기에 불과한 것인데, 결국 과거의 이념적 색깔 논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 ‘국가 정체성’이라는 생경하고도 거창한 외피를 쓰고 전개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을 문제 삼는 이들은 최근 일련의 개혁적 흐름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방과 군대 문제에 관한 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문민 통제다. 문민 통제의 정반대 쪽에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의 군사 독재 체제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북한 함정의 NLL 침범 사태에서 일부 군 간부의 보고 누락 및 정보 유출 사건은 문민 통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건이다. 반면에 이 사건의 처리 결과는 전형적인 태산명동에 서일필이 되었다. 군의 사기를 고려한다는 취지로 경고 수준에서 적당히 봉합하고 말았다. 반면에, 조작된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된 이를 무조건 ‘간첩’이라고 딱지 붙이는 것도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일일 뿐더러 ‘사상의 자유 시장’을 위협하는 심각한 행태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시대에 무척이나 뒤떨어진 낡은 악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법정에 선 피의자는 그의 혐의가 살인이든 간첩이든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에서 대법원은 한국에서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선고했다. 나는 이 판결 보도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40여 년 전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자유들은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며, 이 기본권적 자유가 보장되는 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성립하는 것이라고 내내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냐, 혹은 시장 경제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자유민주주의냐, 그리고 어떠한 시장 경제냐 하는 것이다. 나는 기본권적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를 원한다. 나는 일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제 주체 모두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장 경제를 원한다. 국방의 의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외적 강제에 의해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내적 양심의 자유에 기초를 두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한에서만 제대로 수행될 수 있다.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두 명이 아니라 대다수 대법관이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추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