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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철 지음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보면서 고3인 아들 녀석의 무식을 타박하다가 역습을 당했다. 자기네는 세계사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계여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그렇지만 딴 이유가 있단다. ‘사회’로 통칭되는 열 몇가지 과목 가운데 ‘학교가 골라주는’ 네 과목을 선택 과목으로 배우는데, 거기에 세계사가 끼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교양을 기대하기란 아예 처음부터 그른 일일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서도 국내 학자들의 세계사 연구서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혹시 해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면 ‘목록’이라고 표현하기 민망할 만큼 국내 연구자들이 저술한 세계사 관련 읽을거리가 빈약하다. 세계화를 시대의 화두인 양 외쳐대지만, 우리에게 세계화란 영어 잘하는 세계화거나 관광의 세계화 정도지 싶다.

주명철 교수(한국교원대)의 신간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책세상 펴냄)는 그런 아쉬움을 상당 부분 달래준다. <바스티유의 금서><파리의 치마 밑><지옥에 간 작가들> 같은 전작에서 독자들에게 혁명을 전후한 프랑스 역사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톡톡히 선사했던 그의 솜씨가 이번에도 유감 없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루이 16세의 왕비로서 나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를, 일부 역사가들에 의해 프랑스 혁명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까지 평가받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을 통해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이 당시의 ‘여론’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온갖 소문과 억측, 중상과 비방이 허구냐 진실이냐를 가리는 것은 당면 목표가 아니다. 대신,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른바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로 수렴되고 확산되었는지(여론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더 주력한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개요는 비교적 간단하다. 이 사건은 왕비의 측근을 사칭하며 치부에 골몰한 백작 부인, 왕비의 환심을 사서 정치적 야망을 이루고 싶어했던 추기경, 모두 6백47개나 되는 다이아몬드를 엮어 만든 목걸이를 팔지 못해 안달하던 보석상, 백작 부인의 지시로 왕비로 변장해 추기경을 속인 창녀가 등장하는 희대의 사기극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목걸이 사건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여론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키고, 나아가 프랑스 혁명의 한 계기를 이룬 사건으로 기억된다.

왕비는 이 사건에서 시종일관 피해자였지 관련자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매 순간 그녀의 존재가 개입되지 않은 적도 없었다. 사건 관련자들이 왕비의 이름을 팔고 이름에 속아넘어갔을 뿐인데도, 여론은 왕비가 실제로 관련되었다고 믿었다. 왕비는 사치를 일삼아 프랑스를 말아먹은 ‘적자(赤字) 부인’이자, 추기경과 불륜을 저지른 색녀로 매도당했다.

저자에 따르면, 목걸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쏟아져나온 ‘사건 개요서’들이 그같은 여론 형성을 주도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변호사들이 자신의 의뢰인이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마다 사건 개요서를 인쇄해 대중에게 팔거나 거저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걸이 사건은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리는 바람에 사실의 전후와 인과 관계를 뒤죽박죽으로 재구성하고 해석한 사건 개요서가 속출했고, 그에 따라 여론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점점 불리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는 목걸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되고 있었다. 사건 개요서말고도 당시 프랑스에는 왕비를 조롱하는 각종 험담과 소문 들이 인쇄물로 만들어져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었고, 그 상당 부분은 왕비 자신의 책임이기도 했다. 베르사유 궁정의 역학 관계에서 발생하는 알력들을 비롯해 헤픈 씀씀이, 과도한 노름 취향과 빈번한 밤나들이, 모국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외교적 갈등에서 왕비가 취한 입장 들이 프랑스 민중으로 하여금 왕정 붕괴의 책임을 그녀가 뒤집어쓰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혁명을 불러온 앙시엥 레짐의 모든 상황을 샅샅이 살피지는 못하더라도, 혁명의 한 원인인 것은 분명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책 후반부에는 저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금서보관실에서 찾아낸 자료를 번역해 모았는데, 포르노그래피처럼 거칠고 노골적인 묘사를 읽다 보면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감이 얼마나 격렬했는가를 알 수 있다. 혁명 재판에서 그녀는 자기 아들과 동침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질문까지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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