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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설 나도는 조영길 국방부장관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월14일 오후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데서 비롯되었다. 합참은 당시 북한 경비정이 모두 네번에 걸친 우리 해군의 경고 방송에도 불구하고 계속 월선해 경고 사격을 가해 퇴각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합참의 이런 발표에는 현장에서 벌어진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누락되어 있었다. 북한 경비정이 세 차례 남측 경비정에 ‘한라산’을 부르며 송신했다는 것과, 해군이 군 지휘 계통을 통한 보고 과정에서 이를 삭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정보기관에 의해 즉각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보고 누락 과정에 대한 노대통령의 진상 조사 지시에 따라 정부 합동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승춘 합참 정보본부장이 현장 기록을 일부 언론에 넘겨 기밀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는 사태가 빚어졌다.
합동조사단은 지난 7월23일 ‘북한 경비정 무선 교신 보고 누락 사건 경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의도적 보고 누락이 아니라 단순한 과실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해군 작전사령관은 상부 보고를 하지 않았고, 정보융합처장은 임의로 관련 정보를 삭제했으며, 합참 정보 계통 일부 중간 간부들의 부주의한 근무 자세가 더해져 빚어진 결과라는 발표였다. 이에 따라 노대통령은 국방부가 중징계를 건의한 3명을 포함해 징계 대상 5명 전원을 상징적 수준으로 경징계 처리하는 선에서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이튿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보고 누락과 관련해 ‘부주의가 아니라 고의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뒤집어 파문은 다시 되살아났다. 북한 함정의 통신을 상부에 보고할 경우, 사격 중지를 명령할까 봐 고의로 누락했다는 것이다. 조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사태를 ‘작전 지휘 체계 유지에서 심각한 군기 위반’이라고 밝혀 사건의 조용한 마무리를 바라던 청와대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조국방의 발언은) 이미 대통령도 보고받은 내용이어서 별 문제될 것이 없다”라는 반응으로 조기 봉합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해 결국 조영길 장관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노대통령이 안보 라인 일부 인물들을 교체하더라도 문제가 바로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군 일각에서는 이번 보고 누락 파문이 1회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 특히 햇볕정책을 추구해온 지난 정부 이래 군 일각에서는 북한 관련 문제를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으려는 이상한 풍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군대의 특성상 북한에 대한 체감 불신도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 긴장 완화 조처에 불만?
군 개혁 작업 및 남북 긴장 완화 조처가 진전될수록 군내 일부 세력과의 마찰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남북한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된 양측 군대간 핫라인 개설이라든지 심리전 장비 철거 문제에 대해 해당 군 내부에서 은근히 불만을 표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대북 심리전 장비를 철거할 경우 그동안 여기에 투입된 각종 장비 관련 예산이 줄고, 나아가 국군심리전단이라는 부대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함으로써 군 내부 불만의 한 진앙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의 통수권 위기 사태를 뛰어넘어 군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군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