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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품질 면에서는 제일 낫다는 노회찬 당선자의 말은, 한국 언론이 지닌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인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인간성과 능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하란 법은 없다는 뜻이다. 기자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품성이 반듯하고 정의감이 넘친다고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취재원을 속이고 안면을 바꾸는 데만 능해도 곤란하다. 도덕성이 없으면 일류는 되기 어렵다.

우리 언론계에서는 두 번이나 대량으로 양심의 싹이 잘렸다. 1975년 유신 독재에 항거하던 동아일보 기자 1백33명과 조선일보 기자 33명이 해고되었으며, 1980년에는 전두환 쿠데타 세력이 전국의 기자 9백여 명을 길거리로 쫓아냈다.

1987년 6월항쟁이 끝난 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겨레신문 창간을 준비하고, 다른 해직 기자들이 각사로 속속 복직하면서 언론계에는 청신한 바람이 불었다. 국민의 모금으로 창간된 한겨레신문이 독재에 부역했던 기성 언론사들을 눌러 1등 신문이 되고, 도덕성과 명분을 갖춰 후배 기자들의 지지를 받는 해직 기자 출신이 각사의 편집국을 주도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예측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고 말았다. 한겨레의 독자 수는 창간 때에 비해 별로 늘어나지 않았으며, 해직 기자 출신들은 각사에서 대부분 도태되었다. 물론 자본력의 열세가 한겨레가 고전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독재에 굴복해 살아 남는 길을 택했던 각사의 사주나 편집국 선후배들이 해직 기자 출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해직 기자 출신들이 힘을 쓰지 못한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에게 짧게 7년, 길게 10여 년의 공백기는 뼈아팠다. 기자로서 현장에서 한창 뛸 시기를 밖에서 보낸 그들이 나이와 지위에 맞는 능력을 보여주기는 역부족이었다. 한국 언론의 비극은 도덕성이 있는 쪽은 실력이 부족하고 돈과 실력이 있는 쪽은 도덕성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간판 스타 노회찬 당선자가 조선일보 노조 초청 강연에서 조선일보가 품질 면에서는 제일 낫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몇몇 표현은 좀 거칠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고 본다. 조선일보를 극복하려면 적어도 조선일보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어차피 조선일보하고 도덕성을 놓고 다툴 일이야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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