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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 LG카드 사태 억지 봉합해 국민 부담 키워
현재 금융기관이 가계에 대출한 금액은 4백조원 가량. 국내총생산(GDP)의 83%나 된다. 이 가운데 30% 가량인 1백25조원이 부실 채권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탓에 신용불량자가 4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엄청난 잠재 부실을 국내 금융기관들이 떠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곳이 쓰러지면 다른 금융기관들이 줄지어 넘어진다. LG카드 위기가 도미노의 시작이라면 그 끝은 금융 시스템 붕괴다.
‘억지 춘향’으로 산업은행이 LG카드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대마(大馬)’가 쓰러질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등판하는 한국 금융의 이 마무리 투수는 이번에 5천6백74억원을 내야 했다. 16개 채권금융기관들이 LG카드에 총 3조6천5백억원을 출자 전환하면서 산업은행에 상당한 역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위탁 경영의 책임을 떠맡은 산업은행의 부담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LG카드 정상화를 위해 앞으로 소요될 자금 5천억원 가운데 25%인 1천2백50억원을 책임져야 한다. 나머지 75%인 3천7백50억원은 LG그룹이 책임진다.
산업은행 책임이 많아진다는 것은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민 혈세(공적 자금)를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에 쏟아 붓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금융 시스템 붕괴라는 위기 의식에 묻혀버렸다. 재경부는 LG카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시장 경제 원리에 충실한다는 정책 기조를 슬쩍 포기했다. 또 외환 위기 이후 정착되는가 싶었던 은행 자율경영 원칙의 근간도 훼손되었다. LG카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에 대해 LG그룹·채권단·재경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효곤 배인앤컴퍼니 이사는 “LG카드를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부도 처리해 주주·채권자·경영진이 경영 실패의 책임을 모두 진다는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원칙·무능력’이라고 욕먹고 있는 재경부에는 더 큰 고민이 있다. 4조원이나 들여 LG카드 사태를 봉인했지만, 봉인이 언제 풀릴지 모르고, 또 엉뚱한 곳에서 방아쇠가 당겨져 금융 위기로 파급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LG카드라는 불씨를 끄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매각이다. 산업은행은 LG카드를 1년 동안 위탁 경영하면서 새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하는데, LG카드가 부실을 더 안고 주저앉거나 사업 연관성이 큰 국내외 금융기관에 팔리지 않으면, 이번에 지원된 4조원을 고스란히 날리고 채권단은 더 큰 부실 채권을 떠안게 된다.
LG카드를 매각하려면 우선 경영 정상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LG카드는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두 차례나 현금 서비스를 중단해 신뢰성이 크게 떨어졌다. 그 후유증으로 지난 2개월 동안 우량 고객과 가맹점이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적자 규모는 1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금융업은 이미지가 한번 실추되면 회복하기가 힘들다. 산업은행은 가입자 1천2백만명으로 국내 1위 카드업체라는 LG카드 위치를 회복하고 연체율을 관리해 영업을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외환 위기 때 LG카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대우증권을 인수했으나 아직까지도 팔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은 LG카드 매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경영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헐값으로 팔아야 하고 아예 매각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