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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센린 지음 <우붕잡억>/한 지식인이 겪은 문화혁명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맨 마지막 장은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일종의 제사(題詞)처럼 나오면서, 바야흐로 밝혀질,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의 원인과 진상을 암시한다. ‘에크피로시스(ecpyrosis; 세계를 태울 만큼 큰불)가 터지고, 지나친 믿음이 지옥을 불러들인다.’ 이른바 미소 없는 진리, 혹은 광신이 살인의 비극을 연출한 가장 큰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1966년부터 10년 동안 중국 대륙을 광란에 빠트린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문화혁명)도 ‘지나친 믿음이 불러들인 지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문화혁명은 마오쩌둥의 정치적 계산으로 촉발되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전국 규모의 대중운동으로 확산하면서부터는 홍위병들의 극좌주의적 광신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같은 광신이 교묘하게 조종된 것일지라도.

중국 베이징 대학 부총장을 지낸 동방학의 세계적 권위자 지센린(季羨林)의 <우붕잡억>은 문화혁명에 대한 한 지식인의 회고를 담은 책이다. 제목의 ‘우붕(牛棚)’은 문화혁명 때 소귀신 뱀귀신(牛鬼蛇神)으로 몰린 지식인들이 수용되어 있던 헛간을 뜻하는 말로, 지식인에 대한 학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잡억(雜憶)’은 이런 저런 기억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화혁명의 원인이나 성격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기보다 그가 홍위병들의 광기에 휘둘리며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와 모멸, 배신 같은 개인적 체험을 기술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 역사로 전환되기를 바랐다. 그는 이 책이 “후세에 남겨줄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앙갚음이나 한풀이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거울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먼저 <우붕잡억>을 쓰게 된 구체적 이유를 밝힌 다음, 우붕에서 자행된 ‘천재적인’ 고문과 학대 들을 인도나 중국 불교의 지옥,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빗대면서 우붕과 같은 지옥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상세하게 밝혔다. 이어서 ‘수업은 없이 혁명으로 들끓고 있던’ 베이징 대학의 동방학부 주임이던 저자가 ‘자본주의파’ ‘반동학술권위’로 낙인 찍히는 과정을 기술했다.

2부는 한밤중에 각목을 들고 들이닥친 제자들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영웅들이 혁명하고 지나간 현장’에서 인도주의를 믿던 종래의 입장을 성악설로 ‘개종’했고, 제자들이 자신에게 저질렀던 고문과 신문 그리고 ‘비판투쟁’(‘죄수’를 공개적으로 욕보이는 대중집회·사진 참조)과 ‘노동 개조’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자살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자살은 사지로 몰린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 행위’였다. 그러나 수면제를 가득 들고 자살하러 나가려는 순간 홍위병들이 들이닥쳐 자살은 무위로 그쳤다. 그러고는, 비판 투쟁 때 흔히 동원되는 고문인 ‘제트식 앉는 법’(사진 참조)을 견디려고 집 베란다에서 다리 근력 훈련을 하는 등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다.

3부에는 요행히 처형되지 않고 살아 남아 우붕에 갇히면서 그곳에서 겪고 보게 된 학대와 억압의 참상이 그려졌다. 앞의 지옥론·자살론에 이어 저자는 우붕 생활의 경험에서 ‘학대론’을 이끌어냈다. ‘무엇과 누구에게 충성하며, 무슨무슨 노선을 옹호한다는 명분은 모두 허깨비 같은 말이다. 저들의 강령을 요약한다면, 오직 하나였다. 사람을 학대하라!’ 그에 따르면, 학대를 가하는 저들이나 학대를 당하면서 살아 남기만을 고대하며 꿈쩍 못하는 우리들이나 모두 ‘비인(非人)’이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과분하기 때문이다.

4부는 우붕에서 풀려난 이후의 이야기다. 저자는 감시와 교육이 지속되는 ‘반해방’의 과정에서도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원전을 번역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완전 해방’되어 문화혁명 이전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화혁명이 언젯적 일이었냐 싶게 세월이 흐른 뒤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들은 왜 그렇게 지식인을 학대했는가’라며 자문하지만, 자답은 내리지 않는다. 그에게 문화혁명은 ‘문화도 없고 혁명도 없는 10년 동안의 재앙’일 뿐이었다.

하지만 문화혁명에 대한 실사구시적 기록과 연구의 필요성만은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붕잡억>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한 인간의 내면적 고통을 기록한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미래 세대를 위한 노지식인의 헌사로도 읽힌다. 고문 투의 격조 있는 문장이면서도, 저들에 대한 냉소와 분노, 자신에 대한 연민 같은 감정들을 굳이 숨기지 않아 ‘피와 눈물로 쓴 책’이라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지센린이 우파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은 데 반해, 좌파로 몰려 곤욕을 치른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읽어도 자기 이야기처럼 ‘필’이 꽂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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