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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박재삼 시인의 문학과 삶
고인의 명함에서 시인의 가난을 읽는 이도 있지만, 달관의 미덕을 돌이키는 이가 더 많다. 52년 피난지 부산에서 고인을 처음 만난 이래 고인의 절친한 친구였던 민 영 시인은 시와 삶을 동일시하는 해석은 통속적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가난 때문에 구차하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속깊은 정’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의 생애 자체를 가난이나 슬픔, 한(恨)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민씨는 말했다.
지난 6월8일 새벽, 지병으로 타계한 고 박재삼 시인(향년 64세)은 만해와 소월·미당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서정시의 ‘법통’을 이어받은 시인이었다.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5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고인의 시세계는, 우리 정서의 한 원형질인 ‘한의 시학’으로 일관했다.
빼어난 리듬으로 ‘미칠 일’ 표현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울음이 타는 가을江>에서 특히 그러하다.‘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로 시작되는 그 시는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에서 끝난다. 사랑의 전모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선연하게 드러나 있거니와, 그의 시의 한은 사랑 앞에서의 절망, 즉 ‘미칠 일’에서 발생한다. 그 미칠 일들은 빼어난 모국어와 시조에 가까운 리듬으로 변주되었다.
‘드디어 저승꽃이 피고 /모든 기운이 원천적으로 기울었으나’(<노래와 사랑에는> 중에서) 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쓰고자 했다. 일찍이 ‘천년의 바람’을 깨달은 바 있는 시인은 절망과 허무를 지나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고인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부터 펼쳐진‘박재삼 시인 돕기 운동’에 대한 문단의 호응이 컸고, 그의 장례는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성장했고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62년 첫 시집 <춘향의 마음> 이후 <천년의 바람> 등 시집을 열세 권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