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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권째 시집 출간… 한글 세대 시인의 모더니즘 꽃 피워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곧 2백권을 펴낸다. 78년 황동규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와 정현종의 <나는 별아저씨>에서 발원한 이 한국 현대시의 대하(大河)는 황동규의 시집 <외계인>에서 백아흔여섯 번째 물굽이를 친 다음, 백아흔아홉권인 김혜순의 <불쌍한 사랑 기계>를 거쳐 마침내 2백권을 맞는다.

문지 시인선이, <문학과 사회> 이번 호(97 여름)에서도 밝혔듯이 양이 질을 구축해 왔던 것은 아니다. 질과 양은 그동안 아름다운 정비례를 보여왔다. 곧 2백권 기념 시선집을 펴내는 이 시인선은 계간 <문학과 지성> 편집 동인이었던 평론가 김병익(현 대표)·김치수·김주연, 그리고 고 김 현씨의 기획이었다. 70년대 시문학의 젊고 새로운 흐름을 정돈하자는 취지에서 윤후명·신대철·장영수의 시집을 ‘젊은 시인선’으로 묶었는데, 이 시인선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이 젊은 시인선이 문지 시인선의 발원지였다.‘문지 4K’(편집 동인 네 사람의 성이 모두 김씨여서 붙여졌다)는 시인선 이름을 바꾸고 시인선 대상을 4·19세대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하석 김명인 김광규 문충성 이성복 최승자 김혜순 초하림 고정희 황지우 박남철 등의 시집을 펴내며 80년대를 통과해 왔다.

문지 시인선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창비 시선’ ‘오늘의 시인 총서’‘민음의 시’와 더불어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현재 백육십권까지 나온 ‘창비 시선’이 민중시와 전통적 의미의 서정시를 아울렀다면, 문지 시인선은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 총서’‘민음의 시’와 더불어 한글 세대 시인의 모더니즘을 품에 안았다. 즉 시가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법적 고민이라는 현대시의 한 지평을 열어 보인 것이다.

문지 시인선은 2백권까지 오는 동안, 단 한 권의 시집도 절판되지 않았으리만큼 시집 독자들을 끌어모았다. 시가 죽었다고 운위되던 시절에도 문지 시인선은 5천~만 명 가까운 독자들과 함께 문학의 위엄을 지켜왔다. 특히 황동규 황지우 이성복 유 하와 고 기형도의 시집은 오래 전부터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았다.

현재 30대 이하 젊은 시인들에게 문지 시인선은 교과서였다. 그들은 문학 청년 시절에 문지 시인선을 외우며 시의 길에 들어섰고, 시인이 된 뒤에는 문지 시인선에 포함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문지 시인선은 곧 그 시인의 문학적 평가와 직결되었던 것이다. 김광규 최승호 이성복 황지우 장석남 유 하의 시집이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어 온 것이 그 증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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