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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에서 엄숙함을 걷어버린 사람은 채희완 교수(부산대·미학)이다. 93년부터 한 해 걸러 한 번씩 열리는 이 굿의 총연출을 맡고 있는 그는 굿거리에 춤과 대중 가요, 시낭송, 마당극, 심지어 재즈 연주까지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켰다.
그는 공연 예술에 연희(演戱)라는 말 대신 연행(演行)이라는 말을 골라 쓴다. 어떤 예술 행위도, ‘지금, 이곳’의 삶을 담고 있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굿판은 그에게는 전통 정서가 현재의 삶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험하는 무대이다. 굿이라는 총체적 연행물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통하고 교감하는 통로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선은 춤·극·노래·굿 같은 몸짓을 어떻게 총체화할 것인가가 연행적 과제이다. 또 서양 문화나 신과학이 우리 정서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도 굿을 통해 풀어 나가야 할 암호이다. 아직은 실연(實演)을 통해 이를 미학으로 입론해 가는 과정이다. ”
그가 건너려는 통로 저편에는 원효가 있다. 대덕의 근엄을 벗어던지고 떨거지 광대의 모습으로 저자 거리로 걸어 들어간 원효는 채교수가 이 땅에 되살려 놓으려는 예술가 상이다. 그는 “스스로 민중이 되어 민중과 더불어 살아간 원효 스님의 무애가무행(無碍歌舞行)은, 바닥의 것이 거룩함을 일깨울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를 어떻게 이어받고 새롭게 창출할 것인가가 우리 미학의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역시 채교수가 총연출을 맡아 지난달 경주에서 두번째 마련한 원효 문예 대전은 이를 형상화한 작업이다. 1천3백 년 전 원효가 갔던 길을 따라 걸으며 풀어낸 몸짓과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원효행’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채교수는 80년 청주사범대학에서 처음 강단에 섰다. 요즈음의 개인적 고민은, 20년 가까이 걸어온 선비의 길과 굿판을 도는 광대라는 서로 다른 두 길을 어떻게 통합하고 안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시간에 쫓겨 숨이 가쁘다.
그러나 그는 오는 9월 과천시에서 열릴 ‘97 세계 마당극 큰잔치’의 예술 감독을 맡아 또 한 번 광대로 나서게 된다. 국내의 전통극 30편이 만나는 흔치 않은 무대다. 그는 “마당극은 어느 시대에든 현실과 의식을 가장 진보적으로 반영해 왔다. 이념과 형식을 넘어 신명을 통해 새 세기를 예측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의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