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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등 ‘교육 부조리’ 비판한 책 출간 활발…작은 학교·인성 교육 등 대안 제시

입시 정책이 갈지자걸음을 계속하는 와중에, 최근 ‘교육의 첫 단추’를 다시 검토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치열한 물음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교육이 지향할 바와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들이다.

조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가 쓴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와 박혜란 교수(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여성학)가 지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여성학자 오숙희씨(가족과성상담소 부소장)가 펴낸 <딸들에게 희망을> 같은 저서들이 그 앞에 서 있다. 세 저자는 이구동성으로 입시 제도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비판한다. 바람직한 사회인을 길러내지도 못할 뿐더러, 성적이라는 ‘낙인’으로 아이들에게 등급을 매겨 사회로 배출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성 개발이 곧 바른 교육

<학교를 거부하는…>(또하나의문화)에서 조혜정 교수(49)는 현행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명징하게 분석했다. 산업화·공업화 이후 각국의 교육은 국가 차원의 역군을 배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단순한 공장 노동을 14시간씩 묵묵히 해내는 노동자, 그들 위에 군림하는 관료, 전쟁의 정당성을 따져보기 이전에 울분에 차서 몸을 던지는 애국 청년을 기르는 데 교육 목적이 있었다’. 이른바 ‘국민 교육’이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자, 이번에는 고도의 창의력과 전문 능력을 갖춘 인력이 요구되었다. 선진 각국은 학제를 두 체계로 재편했다. 하나는, 서너 가지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각 분야의 ‘인터내셔널 엘리트’를 배출하는 전문가 교육이다. 인터내셔널 엘리트를 얼마나 배출하느냐가 경쟁 시대의 주도권을 좌우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임금(또는 수당)에 기대어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을 길러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국민 교육’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학교는 빈번하게 교체된 정권의 정당성 홍보를 맡으면서 ‘입시 컨베이어 벨트’를 가동하는 공장 구실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와중에 세대 사이의 간극은 심각하게 벌어졌다. 국민 교육을 받고 자란 교사·학부모 들이‘국가’‘민족’ 같은 전체주의적 개념에 매달리는 동안, 아이들은 위성 방송·인터넷과 만나 지구적 유흥 공간과 조우하며 자기만의 문화와 언어 체계를 만들어 침잠해 간다.

그런데도 정작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데 있다. “만약 입시 제도를 폐지한다면 나라 전체가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라고 조혜정 교수는 말한다. 교육부와 학교들, 교사, 입시산업 종사자는 물론 대다수 학부모의 생활이 입시 제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입시는 오히려 어른을 위한 제도인 셈이다. 아이들은 그 제도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재료이고….

<학교를 거부하는…>은 절반 가량을, 실험 교육과 대안 모색의 성과·한계·가능성에 관해 할애했다. 샛별초등학교(거창) 영훈초등학교(서울) 운현초등학교(서울) 교사운동·학부모운동 같은 여러 가지 실험이 초기에는 기대할 만한 성과를 내다가 차츰 한계에 부닥치는데, 모두 입시 제도 때문이라는 점이 매우 공교롭다. “이 시대착오적인 괴물이 도대체 정부·기업·학부모·아이, 누구에게 유익한가. 하루아침에 입시 제도를 걷어치우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새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라고 조교수는 주장한다.

초등 교육을 인성 개발에 할애하고, 기왕의 실험 성과를 적극 반영하는 것도 유력한 방안이다. 풀무학교(홍성)나 성지학교(영광) 간디농장(산청) 같은 실험 학교를 늘려 보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좀더 적극적인 대안으로 ‘작은 학교’가 있다. “5~10명 정도로 훌륭한 ‘기숙 학교’가 가능하다. 학생의 재능과 잠재력을 개발하는 교육에 치중하다가, 때가 되면 검정고시를 통해 제도 교육으로 편입할 수 있다. 이 개념의 요점은, 인생을 ‘입시 에스컬레이터’에 맡기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열어가는 다채로운 경험을 일찍부터 축적한다는 것이다.” 조혜정 교수의 확신 어린 설명이다.

박혜란 교수(51)도 입시 제도에 매달리는 국민적 광기를 비판한다. 박교수는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는데, 셋이 차례로 서울대에 진학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웅진출판)은 그 교육 비결을 캐자고 기획한 책이다. 박교수의 비결은 입시 열기로부터 멀리 달아나기였다. “한 번도 입시를 의식한 적이 없었다. 시험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언제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필요를 느끼면 공부도 스스로 좋아서 할 것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박교수의 비결은 조기 교육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조기 교육이란 후련하게 노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박씨는 집안 정리를 포기하고 방과 거실을 놀이터로 내주었다. 그리고 어울려 뒹굴었다. 이 일체감이 안정된 정서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숨은 재능을 찾아내 주는 것이 박씨의 일이었고, 또 즐거움이었다. 인성 개발이 바른 교육임을 보여주는 산 증거인 셈이다.

“부모가 입시로 긴장해서 불안해 하는데, 자식이 어찌 안정될 수 있는가. 부모가 입시를 의식하고 아이를 대하는 순간 공부는 이미 아이에게 ‘재미’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여성학자 오숙희씨(38)의 삶은, 인성 교육의 장점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꽃피는지 실증한다. <딸들에게 희망을>(석필)은 오씨가 강단에서, 또 일상에서 느낀 교육에 대한 사유들을 생활사로 풀어 쓴 책이다.

입시, 주부들까지 파괴

대학 강단을 떠나 여성단체와 문화센터의 주부 강좌를 주무대로 삼은 오씨는, 입시가 주부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확인한다. 자녀가 입시를 치를 때까지 맹목적으로 몰입하는 것도 그렇지만, 입시가 끝난 뒤의 허탈감도 주부를 파괴하는 요인이다.

삶을 풍요하게 꾸려주는 것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따뜻하고 다감한 인성이다. 오씨는 인성을 밝고 건강하게 이끄는 것이 바른 교육임을 확신한다.

오씨는 경기도 김포의 고촌 마을에서 여자만 여섯인 대가족의 가장으로 살고 있다. 홀로 남은 어머니, 독신인 언니, 이혼한 본인과 두 딸. 이들이 빚는 소란과 촌극은 우스우면서도 건강하다.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어떤 교육 효과를 낳는지가 이 대가족의 일상을 통해 번번이 입증된다.

더욱이 둘째딸 희령이는 심한 발육 장애 상태이다. 그러나 장애도 불행의 싹이 되지 못한다. 딸의 장애로 인해 가족은 더 큰 공부를 하게 되고, 더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오씨는 최근 주부들에게 즐거움을 찾아주는 운동을 하고 있다. ‘포도송이 모임’이다. 일종의 정서 공동체인데, 자기 인생을 즐기고 또 자랑스럽게 만들어 보자는 활동이다. 올해 1월1일에는 ‘양희은 주부 팬클럽’을 결성했는데, 벌써 2백명이 모였다.

“삶을 즐겁고 밝게 만들자는 취지이다. 가정 교육이 따로 없다. 주부가 즐거우면 가정이 밝아지고 사회가 건강해진다. 입시병도 치유될 것이다.” 오씨의 엉뚱한 해법 뒤에, 교육병을 치유할 실마리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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