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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안보전략가 버넷 <펜타곤의 새 지도> 출간…‘테러와의 전쟁’ 배경 밝혀

미국은 왜 대량살상무기도 없고, 알 카에다와도 별 관계가 없는 이라크를 온갖 구실을 동원해 ‘선제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미국은 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정리’한 이후에도, 북한을 포함한 몇몇 ‘불량 국가’들을 상대로 단순히 혼내거나 겁주는 차원을 넘어 정권을 교체하는 강공법을 구사하겠다고 했을까.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가 출범할 무렵, 국제 정치 분야의 최대 관심사는 ‘떠오르는 용’(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었다. 부시 정부는 출범하기 전부터, ‘중국위협론’을 내세우며 ‘중국의 비위를 맞추었던’ 클린턴 정부를 비판했다. 장차 두 나라의 갈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뒤 미국은 ‘반테러 전쟁 공조’ 등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갑자기 둔해지거나 중국군 현대화 작업이 공식 중단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미국의 ‘중국위협론’이 슬그머니 ‘없던 일’로 수그러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반테러 국제 공조가 워낙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일까.

국가의 행위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뜻’이 있기 마련이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취해온 일련의 외교·군사 행위는 ‘세계 패권 유지’라는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 해석을 수용하고 있다고 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이 그려놓은 ‘전체 구도’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최근 이같은 의문에 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해줄 만한 책이 나왔다. 미국 해군대학에서 안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무렵 미국의 남성 대중지 <에스콰이어>에 이라크 선제 공격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글을 발표해 일약 스타가 된 토머스 P. M. 버넷이 최근 펴낸 <펜타곤의 새 지도(Pentagon’s New Map)>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2002년 3월 국방장관실에 불려가 반 테러 전쟁이 왜 미국에 긴요한 일인지 브리핑했고, 그후 국방장관 직속 전력전환국으로 출근하며 미국의 미래 전략을 다듬는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그 뒤 미국 국방부는 세계적으로 미국 군사력을 재검토하고 군사력을 재배치하는 거대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처럼 중대한 안보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버넷 교수의 브리핑 내용은 핵심적인 참고 자료였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부시 정부의 신 국가 안보 전략을 위한 로제타 스톤’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근거를 내세워 미국 안보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냈을까. 핵심은 그가 그린 세계 지도 한 장에 담겨 있다. 그는 ‘세계화 조류와의 결합 정도’를 기준으로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렸다. 그가 그린 세계 지도의 절반은 세계화와 결합된 ‘기능적 핵심(Functioning Core·이하 ‘코어’)’으로 표현된다. 이 지역에는 미국·일본과 유럽연합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인도가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절반은 세계화의 조류와 단절된 지역으로서 ‘비통합 격차 지역(Non-Integrating Gap·이하 ‘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중동과 아랍권 대부분, 그리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지도 참조).

버넷은 이렇게 지도를 그려놓고 ‘코어’는 선이요, ‘갭’은 악이라고 단정하고,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는 ‘만악의 근원’은 ‘세계화에 통합되지 않은 조건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과 세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갭을 적극 개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바로 이를 미국 안보 전략의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버넷이 ‘중국위협론’을 시대 착오적인 냉전 시대의 유물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중국이 옛 소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옛 소련은 미국이 만들어놓은 세계화의 규칙과는 다른 독자적인 규칙을 추구했지만, 중국은 개혁·개방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한 이래 그 어느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미국이 만든 세계화의 흐름에 적응하려 했다는 것이다.

버넷이 안보 위협 지역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이유도 동일하다. 그에 따르면, 세계화 시대의 위험은 ‘누구’가 아닌 ‘어디’인데, 러시아가 속한 지역은 위험 지역이 아니다. 반면 세계화에 통합되어 있지 않거나, 한사코 통합을 거부하는 갭 지역은 ‘위협’으로 간주된다. 버넷이 그리는 갭의 모습은 암울하다. 갭에 속한 지역은 대부분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갭의 삶은 또 매우 불안정하고 피곤하다. 갭 지역의 또 다른 공통점은 수명이 짧고 폭력적이며 인구 구성이 상대적으로 젊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네오콘 입맛에 딱 맞는 주장 펼쳐

미국의 ‘선제 공격’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는 영국의 정치 철학자 홉스의 이론을 빌려 갭 지역을 적극 개조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홉스의 정치 철학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하다. 전자는 흔히 무질서한 자연 상태와 동일시되며, 후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 계약과, 그 결과인 강력한 정부를 지칭한다. 버넷은 갭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현대의 리바이어던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 적극적·예방적으로 갭의 현실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버넷은 미국 국방부가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상정해온 주적 또는 잠재적 경쟁자 개념과, 이에 따른 ‘큰 전쟁’ 개념을 거부한다. 세계화를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적’ ‘작은 무기’ ‘작은 전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히 ‘작은 적’으로서 오사마 빈 라덴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거론하며 ‘이들이 세상에 없을 때 세계는 더 나은 곳이 되며, 이를 위해 선제 행동에 나서는 데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작은 적’의 개념은 포괄적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김정일, 한 사람이 아닌 세계화를 거부하는 모든 테러 집단과 독재자, 그리고 이들의 온상이 되고 있는 갭 지역을 의미한다. 현재 정권을 쥐고 있는 네오콘 입맛에 딱 맞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잠재적인 경쟁자’ 개념을 완전히 포기한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버넷이 제시한 미국의 세계 전략은 미국이 주도해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규칙을 만드는 것과,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서 ‘안보를 수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버넷은 특히 중국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는데, 결정적인 근거를 중국이 자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에너지와 직접 투자 등 핵심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앞으로 중국이 어느 정도로 독자성을 확보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버넷의 책에는 이밖에도 미국의 속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정보와 예화가 담겨 있다. 인구 추이, 이민 문제, 에너지 문제, 국제 분업화, 자금의 흐름과 미국 안보와의 상관 관계가 치밀하게 논구된다. 이 중에는 최근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이 왜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도 있다. 버넷의 설명에 따르면, 필리핀 노동자는 한국·미국·일본 등 코어 국가 15개국, 페르시아 만 연안국, 싱가포르 등지에 진출해 필리핀 한 해 국내 총생산의 10분의 1을 모국에 송금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인질범들의 이라크 철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해외 필리핀 노동자가 테러에 노출될 공산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경제 성장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철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버넷은 서문에서, 자신의 주장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에서 강연 요청이 폭주해 일일이 발품을 파는 데 한계를 느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를 찾았던 고객 중에는 미국의 전략가나 기업인들뿐 아니라, 영국 하원·싱가포르의 국방 관계자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가 지각 변동을 하고 있는 이 때, 그 진원지에서 중요한 주장을 하고 있는 토머스 버넷의 고객 명단에 한국인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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