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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세대 로봇 개발 열기…출생률 저하·고령화 해결할 ‘미래의 희망’

‘로봇과 앞으로의 가정-일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술.’ 일본 경제산업성의 외곽 단체인 기계산업기념사업재단(TEPIA)이 지난해 9월부터 열고 있는 장기 전시회 타이틀이다. 새로운 생활 양식을 창출하고 일본 경제를 활성화하는 기술을 일반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기획된 이 전시회는 현재 ‘신영역을 개척하는 최첨단 기술’을 테마로 한 제3부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오는 7월23일까지 이어질 이 전시회의 주인공은 로봇이다. 테마 별로 여든여덟 가지 로봇이 출연했다. 생산 현장에서 이미 일반화한 제조 분야 로봇뿐 아니라, 농업이나 개호(介護:곁에서 돌봐주기), 가사 등 비제조업 분야에서 쓰이는 로봇도 선보였다. 근육의 미세한 전류 움직임을 파악해 기계 손을 손가락처럼 움직이는 ‘SH-알파’, 손가락과 손바닥 8백59 곳에 촉각 센서를 부착해 인간의 손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한 ‘기푸 핸드 3’ 등이 그것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모듈 형태 로봇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로봇은 모터와 컴퓨터를 내장한 모듈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뱀처럼 구불구불 움직이는 작업을 실현해낸다. 형상 기억 합금을 이용한 금속계 인공 근육 ‘바이오 메탈’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퍼스널 로봇 파페로(NEC)나 감성 커뮤니케이션 로봇 이프봇(비즈니스디자인연구소) 등 음성이나 화상 인식 등을 통해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로봇은 일본에서 이미 시판중이다. 빈 집을 감시할 수 있는 로봇은 물론 촉각·지각·청각을 갖추고 인공 지능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흰 바다표범 봉제 인형 ‘파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에어컨이나 전자레인지를 작동하거나 냉장고의 수납물 관리를 할 수 있는 도시바의 아프리알파(ApriAlpha)는 물론, 노인의 식사를 거들어주는 ‘마이 스푼’과 같은 개호 로봇 등 생활 밀착형 로봇도 등장했다.

내년 ‘아이치 엑스포’ 앞두고 치열한 경쟁

일본에서 로봇은 인간의 벗이자 ‘미래의 희망’이다. 만화가 데쓰카 오사무가 창조한 로봇 소년 아톰에게 아이들은 친근감을 느낀다. 아톰에 대한 동경이 일본의 로봇 산업을 세계 제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요즘 일본이 거의 국가적 차원에서 로봇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년에 열릴 아이치 엑스포가 그것이다. 혼다·소니·도요타 등이 최첨단 로봇 테크놀로지를 선보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과학자들은 인공 지능을 가진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에 연간 5백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내놓으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지난해 8월에 발표된 이 프로젝트에도 만화가 데쓰가 오사무가 낳은 ‘아톰’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아톰 프로젝트’는 30년간 진행되는 장기 계획으로, 인간처럼 울거나 웃을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학자들이 아닌 뇌 과학 연구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인간 동작 스물네 가지를 할 수 있는 인형 로봇을 개발한 한 연구원은 “오늘날 로봇의 상당수는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동작한다. 5세 아이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가 활동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인간의 보행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는 ‘아시모’를 탄생시켰지만, 이 로봇은 아직 5세 아이의 지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로봇 개발 붐 이면에는 출생률 저하와 고령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일본은 그 탈출구를 ‘인간을 닮은’ 로봇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과학자들은 아톰 프로젝트가 결실을 거두면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손실을 보완해, 일본 경제를 부흥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올 연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로봇이 일반에게 판매될 예정이다. 가격은 50만 엔 정도. 벤처 기업 젯엠피(ZMP)와 스포츠용품 대기업 미즈노가 공동 개발한 ‘누보’가 그것이다. 혼다의 아시모, 소니의 큐리오 같은 보행 로봇이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기는 했지만,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모습을 드러낸 누보는 키 39cm, 몸무게 2.5kg. 전후좌우 마음대로 걸어다니고,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난다. 의사 소통에 기본이 되는 1천 단어를 기억할 수 있고, 인사를 하거나 춤을 출 수도 있다. 얼굴에 카메라를 내장하고 NTT도코모의 제3세대 휴대 전화를 사용하면, 원격 조작을 통해 초보적인 ‘경비 업무’까지 가능하다. 젯엠피와 미즈노는 누보를 3천대 이상 판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봇은 벌써부터 공장의 생산 라인 바깥으로 진출하고 있다. 최첨단 로봇 공학을 자랑하는 일본은 보행 로봇을 기업의 판촉 행사에 활용해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다. 혼다의 아시모는 지난해 8월 다케시마야 백화점 오사카점에서 프로야구팀 한신타이거즈의 응원가를 부르며 고객을 맞는 이벤트 행사를 가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아시모는 지난해 말 도쿄증권거래소의 폐장 행사에 초대되기도 했다.

현재 ‘로봇 노동자’ 출현을 학수고대하는 분야는 자동차 회사 등 대규모 생산 라인을 움직이는 제조업체들이다. 도요타 자동차는 내년 아이치 엑스포를 목표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 도요타는 트럼펫을 부는 로봇을 발표했다. 인간의 심폐 기능을 갖도록 설계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손가락으로 트럼펫을 불게 한 이 로봇은 혼다의 아시모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자동차 생산 라인의 용접 로봇을 실용화한 도요타 자동차는 아이치 엑스포를 계기로, 인공 지능 로봇은 물론 개호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인간과의 공존 대비해 법령 정비 작업

일본 경제산업성은 고령화 사회에 개호나 가사, 경비 등의 분야에서 차세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제하고, 로봇 산업 진흥에 대한 노력은 물론 올해 안으로 사람과 로봇의 공존을 전제로 한 법령 정비 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인간과 필연적으로 ‘공동 작업’할 것이 분명한 차세대 로봇이, 만약의 경우 야기할지 모르는 안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경제산업성의 다니카와 민생정보화추진 계장은 “로봇은 아직은 자동차와 같은 물건이다. 로봇이 안전 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가해자가 사용자인가 제조 회사인가 하는 문제 등을 사전에 조정하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차세대 로봇 관련 산업의 시장 규모가 2025년까지 7조 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로봇 관련 기술 개발이 전제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아이치 엑스포에서 차세대 로봇을 선보이기 위해 일본 정부는 예산에 31억 엔을 편성했다.

도쿄의 일본 과학미래관에는 혼다의 아시모가 안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시모가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이곳을 방문하는 어린이들을 흥분시키지만, 어린이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붉은 테이프는 아직은 로봇과의 만남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의 로봇은 ‘꿈’과 ‘우려’의 경계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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