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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 위주로는 성장에 한계’ 지적 잇달아…활로 찾기 분주

지난해 하반기 홍콩의 새 수장으로 선출된 동건화 내각수반은 오는 7월1일 주권이 중국에 넘어갈 홍콩의 밝은 내일을 위해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거기에는 쇠퇴 일로인 제조업을 진작하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12월 그는 한 연설에서, 정부가 적절히 지도한다면 기업가들은 새로운 감각을 갖고 제조업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발언이 나온 뒤, 급속도로 탈산업화 과정을 밟고 있는 홍콩의 미래에 관해 열띤 논쟁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홍콩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장난감 수출로 유명한 과거의 홍콩이 아니다. 오늘날 홍콩에서 공장은 물론 육체 노동자는 거의 볼 수 없다. 지난 20년간 홍콩의 대다수 공장은 중국 본토로 옮겨갔고, 그 결과 한때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24%를 차지했던 제조업 비율도 10%로 줄었다. 오늘의 홍콩 경제는 관광과 은행 등 서비스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첨단 산업으로 전환해선 안돼” 반론도

홍콩이 이처럼 서비스업 중심의 국가로 탈바꿈함에 따라 산업 생산 능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동건화 수반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홍콩이 하루빨리 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홍콩 정부의 용역을 받아 미국 MIT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9개월에 걸쳐 홍콩의 3백50개 기업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은 장차 산업을 크게 일으킬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인력 자원 개발에 좀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수잔 버거씨는 홍콩이 지금과 같은 서비스업 위주의 길을 계속 걸어서는 안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콩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황젠하 총재 같은 이는 기업들이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도와야 한다고 촉구한다.

물론 홍콩이 종전처럼 가격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계속 생산하고 서비스업을 더욱 발전시켜야지, 첨단 산업과 같은 미개척 분야에 관심을 돌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콩 폴리테크닉 대학 하워드 데이비드 교수는 홍콩 정부가 인위적으로 현재의 서비스 산업 구조를 비효율적인 첨단 산업 구조로 전환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산성 측면에서 싱가포르는 전세계 1백18개국 중 63위이지만 홍콩은 6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의 경쟁국들은 막대한 노동력과 자본을 제조업에 쏟아부어 괄목할 성장을 이룩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제조업 부활을 둘러싼 이같은 논쟁은 주권 반환 뒤 홍콩이 어떤 산업 모델을 택해야 하느냐는 문제와 맞물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사실 홍콩이 과거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할 때만 해도 별다른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70년대 말 섬유·전자·완구 등 제조업 분야 기업가들은 늘어나는 생산비와 외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었다. 이들은 홍콩의 산업 시설을 노동력이 싸고 풍부한 중국 남부로 이주시킴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홍콩은 운도 좋았다. 공장을 중국으로 이주할 즈음 중국 정부는 때마침 대외 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중국 정부는 홍콩에 적합한 산업 부지를 제공했고, 반대 급부로 홍콩을 중개 무역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내 홍콩 제조업체들은 기술과 값싼 노동력을 결합해 낮은 가격으로 양질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비드 교수는 “홍콩의 공장이 중국으로 이동함으로써 남아도는 중국 노동력이 대거 동원됐고, 산업 생산력도 크게 개선됐다”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홍콩은 중국 내에 3백만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남부 경제 특구인 광동에 몰려 있다. 광동 지역에는 90년 68만명이던 사무직 근로자가 근래 83만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주로 교통·금융·품질 관리·디자인 작업 같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불과 20년 만에 홍콩은 스웨터나 만들던 조그만 제조업 국가에서 은행가들과 회사 중역, 기타 전문직들이 지배하는 고부가 가치 산업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경기 부진에서 볼 수 있듯, 홍콩의 놀랄 만한 경제적 변신도 이제 그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경제학자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홍콩 UBS 증권사 리처드 리건씨에 따르면, 80년대 홍콩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연평균 6.9%씩 늘어났지만 90년 이후 95년 초까지 고작 5.3%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비슷한 경제 구조에 비슷한 국내총생산 규모를 가진 싱가포르는 홍콩과 같은 시기에 각각 7%와 8.3%씩 실질 성장률을 기록했다. 리건씨에 따르면, 홍콩의 실질 성장률은 장기적으로 매년 5% 이하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동아시아의 다른 경쟁국 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다.

서비스 부문도 중국 대도시에 밀릴 가능성 커

이처럼 낮은 성장률은 접어두고라도, 앞으로 제조업 분야는 물론 서비스 분야마저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미 중국은 홍콩의 중개 무역 역할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가고 있다. 오늘날은 홍콩을 단순히 상품을 선적하는 항구로만 이용할 따름이다. 그 결과 홍콩에서 선적되는 물동량이 94년과 95년 각각 41%와 30%씩 늘어났다.

중개 무역항으로서 홍콩에 대한 중국의 의존이 감소함에 따라 홍콩의 무역 통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즉 홍콩의 상품 교역 적자 폭은 91년 1백30억 홍콩달러에서 95년에는 1천4백70억 홍콩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금융·보험·컨설팅 같은 고부가 가치 서비스업의 매출액이 상품 교역에서의 적자 폭을 메워줄 만큼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의 서비스 수출 가운데 고부가 가치 서비스는 고작 15%인데, 이는 최근 몇 년 새 변함 없는 수치라는 것이 UBS증권 리건씨의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해 오던 서비스 부문이 이처럼 낮은 수준에 머무르면 앞으로 홍콩의 상품 교역 적자를 메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서 개인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마크 페이버씨는, 홍콩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교 우위를 갖고 있는 서비스 부문마저 상해·천진·북경·대련 등 중국의 대도시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도시들은 유리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앞으로 홍콩을 대신해 선적 및 항공 운송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에 주권이 이양되든 안되든 홍콩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개방 및 현대화 정책에 따라 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물론 페이버씨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상해 같은 대도시가 아직 제2의 홍콩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일부 경제학자가 최근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중국의 대표적 대도시인 상해도 계획 경제와 불완전한 경제 개혁에 따른 심각한 규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선적과 금융 분야에서 비교 우위를 자랑하는 상해 같은 대도시도 외국과 경쟁하는 체제에 놓이게 되면 생존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지금까지 홍콩의 경제적 변신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수공업 경제에서 ‘지식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홍콩은 부가 가치가 별로 없는 노동 집약 산업을 중국 본토와 여타 지역으로 옮기는 대신 제조업과 관련된 고부가 가치 지식 산업을 진작하는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런 변화를 주도해 나갈 사람은 동건화 내각수반과 그의 보좌진이다. 홍콩 특별 행정구가 앞으로 성공할지 여부는 정부의 긍정적인 개입을 통한 새로운 경제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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