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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건설지 인근에 유흥 시설 갖춰 외화벌이 계획… 금강산 잇는 관광 명소로 활용 가능성
경수로가 들어설 신포시 금호리 일대는 백여 호의 민가로 이루어진 한적한 어촌이다. 이곳에서 1.5㎞ 떨어진 곳에 동해가 있고, 주변에 남대천이 흘러 경수로에 필요한 냉각수 공급이 가능하고, 또 양화라는 항구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유리한 입지 조건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지층 조건 등이 이 한적한 어촌의 미래를 바꿔놓았다. 2000년대가 되면 신포시 금호리는 한국의 고리·영광·울진에 이어 또 하나의 원자력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 신포 지역에 대해 경수로가 들어설 곳 정도로만 인식해 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 당국이 이곳에 원전 도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초 신포시를 북한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개방 특구 지역으로 개발할 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유력 인사와의 전화 통화에 의해 확인되었다. 중국 공산당에서 고위 직을 지낸 이 조선족 인사는 현재도 중국과 북한의 지도층을 연결하는 막후 채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북한측 인사들로부터 북한 지도부의 신포 개발 계획을 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북한 정무원은 지난 1월 신포 지역을 새로운 개방 특구로 개발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확정했다. 정무원의 계획안은 당 중앙위원회에 상정되어 심의를 거쳤다. 이 계획안을 검토한 중앙위 위원들은 이에 대해 거의 대부분 원칙적인 동의를 표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일정은 경수로 건설을 둘러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 간의 협상 추이 및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완화 시점 등 주변 정세 변화를 보아 가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이 조선족 인사는 신포 지역이 새로운 개방 특구로 지정될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했다. 당장 눈에 띄는 조건은 앞으로 10년간 이 지역에 엄청난 물류 유통이 이루어지리라는 점이다. 경수로 건설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50억달러에 이르는 유입 자금은 북한 처지에서는 막대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 기간에 한국 미국 캐나다 등 건설 인력들이 이곳에 뿌리고 갈 달러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8~10년 정도로 추정되는 건설 기간에 한국 및 서방의 대규모 건설 인력이 이곳에 상주하게 된다. 초기 1~2년간 약 3백명 수준에서 시작해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면 천명 단위로 껑충 뛰고, 착공 2년째부터 경수로 본체 공사가 시작되면 6천명쯤이 상주하게 된다. 이들이 사용할 일용품이나 잡화 중 일부는 한국이나 미국 등에서도 가져가겠지만 상당수는 현지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다. 또 건설 현장에서 고된 노역을 치를 근로자들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유흥 및 여가 시설이 필요하다.
지난 1월 9일 뉴욕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 간에 체결된 부지 의정서 및 서비스 의정서를 보면, 이미 이러한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지 의정서에 의하면, 부지 총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3배에 이르는 2백68만평이다. 이 중 건설 장비 하역 장소인 물량장(해면 부지) 약 백만평 정도를 빼도 1백60만평 정도가 남는다. 이 1백60만평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 하나가 경수로 본체가 들어설 경수로 부지이다. 또 하나는 건설 인력의 사택이 자리잡게 될 주택 부지로 규모는 70만~80만평 정도 된다. 마지막 세 번째, 관심의 초점이 되는 곳이 바로 경수로 부지와 주택 부지를 연결하는 ‘코리도(회랑) 부지’이다. 이 코리도 부지는 해안선을 따라 길게 나 있는데, 총길이 4.2㎞ 너비 2백m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 간의 뉴욕 실무 협상에 참여했던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코리도 지역을 누가 관할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당시 협상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주계약자인 한국전력측은 이 지역에 공원과 골프장 등 여가 시설을 조성한다는 독자적 개발 계획을 내 놓았었다. 결국 북한측과 줄다리기를 해 북한이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대신, 한국 및 서방 근로자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권한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원산 개방과 연동된 종합 개발 계획 일환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공사가 한창일 때면 건설 인력 약 6천명이 출퇴근하는 통로가 될 이 코리도 지역의 양측면에 이들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유흥 시설과 상가·여관 등 서비스 시설을 유치해 외화벌이에 나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용할 화폐는 달러에 국한하므로 엄격하게는 달러벌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측은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즉 북한측 경제 일꾼들이 연변 및 동북 3성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앞의 조선족 인사에 따르면, 북한 경제 일꾼들은 중국 기업이나 조선족 기업들에 이 지역에 필요한 물자 공급이나 시설 투자, 자본주의적 경영 기법 제공 등 공동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 사업가나 중국 사업가들 역시 이 지역 답사 방문 등을 통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재계의 소식통은 “약 6개월 전 재미 교포 한 사람이 이 지역 아파트 건설권을 북한 당국으로부터 확보했다고 하면서 국내 기업들에 공동 진출을 권유하고 다닌 사실도 있다”라고 전한다. 결국은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알게 모르게 이 지역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앞으로 관심사는 북한 수뇌부의 신포 개발 계획이 건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달러벌이에 국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들 중에는 북한이 외화벌이 창구로 이 지역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경수로가 들어선 이후에는 외화벌이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원전 시설 자체가 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일반인 출입이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개발 계획을 현재 북한 지도부가 구상하고 있는 북한 동북지역 개발 계획이라는 전체 구도에서 생각하면, 관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즉 신포 개발 계획은 단순히 신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근 지역 개발과 연동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앞의 조선족 인사는 올해 초 북한 정무원이 올린 계획안에 신포 지역 개발을 원산항 개발과 연동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신포 개발은 단순히 원전 건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원산 지역 개방과 연동된 종합 개발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 두 지역 개발이 서로 어떻게 연동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원산 지역이 북한 동해안의 대표적 공업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포에서 필요로 하는 주요 물자의 공급 루트로 원산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수로 건설이 끝난 뒤에는 이곳을 원산 인근 지역과 연동해 관광 명소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 지역 개발 구상에는 나진·선봉과 청진의 칠보산, 원산 인근의 금강산을 연결하는 관광권 개발 구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신포 원전 지역 역시 이
일대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부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월의 협상에서 한국측 실무 책임자로 활약한 경수로기획단의 고위 당국자 역시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는 “북한측은 협상 과정에서 우리 건설 인력을 위한 유흥 시설 제공은 물론이고 앞으로 주변 지역 일대에 대한 관광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수로가 완공된 이후에는 신포 지역 자체가 관광 명소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신포 지역을 대상으로 한 북한 수뇌부의 이같은 장밋빛 꿈에 대해서는 국내 북한 전문가들 역시 그 실현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민족통일연구원 오승렬 박사는 “우리 연구원에서도 신포 지역을 북한이 특구로 개발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는 지적이 나온 적이 있다. 경수로 공사가 본격화하면 신포는 북한에서도 가장 활기를 띠는 지역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 역시 이에 착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신포 지역은 북한이 아무 부담 없이 개방할 수 있는 지역이다. 앞으로 북한 동해안 지역 개발과 연동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